[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E. M. 포스터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해 1992년 영국 아카데미 작품상과 미국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에마 톰슨)을 수상한 뒤 이듬해 국내 개봉됐던 ‘하워즈 엔드’(제임스 아이보리 감독)가 3일 재개봉된다. 20세기 초 보수와 진보의 대립, 계층 간의 경제적 갈등을 비교적 어둡지 않게 긍정적으로 풀었다.

마거릿, 헬렌, 티비의 슐레겔 가문 3남매는 교양적이지만 인습에 구애받지 않는다. 보수적이고 부유한 윌콕스 가문과 교류하던 중 헬렌이 헨리의 찰스, 이비, 폴 3남매 중 막내인 폴과 사랑에 빠져 교외에 위치한 헨리의 아내 루스 소유의 집 하워즈 엔드에 머물더니 폴과 결혼하겠다고 엽서를 보낸다.

그러나 무능해 제 재산이 없는 폴은 나이지리아로 취업차 나가야 할 상황이라 결혼은 무산되고 두 가문은 연을 끊는다. 게다가 결혼한 찰스가 그들의 집 바로 앞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더욱 불편하다. 그러던 중 마거릿은 헬렌과 폴이 인연을 맺기 전부터 알던 루스를 우연히 만나 말동무가 돼준다.

헬렌은 ‘음악과 의미’ 강연장에 갔다가 옆자리의 바스트의 우산을 제 것인 줄 착각해 집으로 가져온다. 바스트는 집까지 찾아오고 마거릿의 명함을 받고 집으로 돌아간다. 다소 천박한 재키와 결혼을 앞두고 동거하며 보험회사에 다니고 있는 그는 자매와 친해지고 특히 헬렌과 각별한 우정을 나눈다.

지병으로 투병 중인 루스는 어릴 적 추억이 큰 하워즈 엔드를 그리워해 마거릿과 함께 가려 했지만 끝내 못 가고 숨진다. 윌콕스 가족에게 간호부장으로부터 루스의 유언이 담긴 메모지 한 장이 배달된다. 죽기 직전 연필로 러프하게 쓴 그 글에는 하워즈 엔드를 마거릿에게 상속한다고 적혀있는데.

인트로는 집 앞 숲을 걷는 루스의 뒷모습을 핸드헬드로 따른다. 이내 루스는 창밖에서 시끌벅적한 집안을 들여다보며 상념에 잠긴다. 제목과 이 시퀀스는 시골의 화려하지도, 그렇다고 초라하지도 않은 적당한 공간과 자연환경을 지닌 집을 통해 영국, 혹은 유럽의 사회적 상황을 덤덤하게 그린다.

그 축은 상류층인 윌콕스, 중류층인 독일 출신 슐레겔, 그리고 하류층인 바스트라는 확연한 계층의 구분이다. 헨리는 자상한 아버지고 배려심 많은 남편인 듯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아내가 아프기 전에 이미 미성년자인 재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는데 필요 없어지자 그녀를 헌신짝처럼 내쳤다.

자신에게 비교적 순종적인 찰스와 이비에겐 조금씩 재산도 물려주고 살 길도 마련해 줬지만 폴은 어리고 무능하다는 이유로 손끝만큼의 혜택도 주지 않았다. 스스로 양심적인 척하지만 아내의 마지막 소원을 무시했고, 바스트의 회사가 곧 망할 거라며 이직을 강권해 결국 그를 실업자로 만들었다.

루스 사망 후 우연이 인연이 된 마거릿에게 청혼하고, 허울만 좋은 과거의 귀족인 마거릿은 흔쾌히 승낙한다. 하지만 헬렌은 바스트를 실업자로 만든 책임을 지라며 헨리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마거릿의 바스트 취업 부탁에 헨리는 이번 만이라며 받아들이지만 재키의 돌발 출현으로 취소한다.

찰스와 아내 돌리, 이비는 천박한 물질만능주의자다. 그들은 아버지의 행복 따윈 관심 없고 오직 부모의 재산을 지켜 온전히 물려받는 게 목적이다. 재산 중 비교적 크지 않은 하워즈 엔드마저 사수하려 한다. 헬렌은 개혁적이고 공격적이다. 헨리와 잘 타협하면 떡고물이라도 얻을 텐데 안 그런다.

헨리가 바스트의 취업 부탁을 외면하자 헬렌은 자기라도 돕겠다며 전 재산 5000파운드를 티비를 통해 바스트의 계좌에 입금해 줄 정도다. 그녀는 급진 개혁주의자다. 바스트는 가난한 인텔리겐치아이자, 지적인 프롤레타리아다. 재키의 과거를 알면서도 결혼했을 만큼 책임감이 있는 박애주의자다.

헨리의 충고에 이직했다 해고된 후 계속 취업하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해 형제에게 급전을 구걸하는 그는 그러나 헬렌의 도움은 단호히 거부하고 돌려보낸다. 인연이 된 ‘음악과 의미’ 강연회는 부자들이 저녁 식사 후 지적인 허영심을 발산하는 자리일 뿐 그들처럼 현실이 팍팍한 이들과는 거리가 멀다.

재키를 사랑하지 않지만 책임감 때문에 불행한 결혼생활을 잇던 바스트는 재키의 술주정으로 헨리가 후원 약속을 번복하자 분노하고 낙담한 헬렌과 충동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그걸 계기로 헬렌은 독일로 떠났다 수개월 만에 배가 부른 채 마거릿 앞에 나타난다. 하지만 헬렌은 남 탓을 안 한다.

주인공인 마거릿은 허식에 찬 지식인도, 급진주의자도 아니다. “참정권이 없기에 투표하러 갈 일이 없으니 좋다”는 루스에게 여성의 권리를 슬며시 가르치지만 헨리의 청혼을 받아들일 만큼 현실적이고, 타협적이다. 그녀가 최근 읽는 책은 헬레나 블라바츠키의 ‘신지학’. 은근한 철학과 종교의 타협.

신의 초월적 근원을 깨우치려는 신비주의 학문인 신지학이 추구하는 지성은 관찰지-명석지-철학지로 단계를 밟아 초자연적으로 간다. 주인공들이 대부분 자신의 욕심이나 사상 등에 집착해 평행선을 달린다(바스트의 집이 ‘기찻길 옆 오막살이’다)는 건 그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기관차’란 의미다.

그런 관찰지에 머무는 이들과 달리 마거릿은 명석지의 단계에 있다. 3남매는 모두 대학을 졸업한 지식인이지만 티비는 냉소적이라 판단력과 사회성이 떨어지고, 헬렌은 독선적이다. 이에 비해 마거릿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용적이다. 실망시키지 않는 고전과 그에 걸맞은 연출의 수작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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