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사랑은 구속이 아니라 자유라는 ‘와호장룡’의 연장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0.09.04l수정2020.09.04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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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저멀리 산봉우리엔 만년설이 덮여있고, 눈앞에 펼쳐진 너른 초원 위엔 수천 마리의 양 떼가 노니는 8월의 브로크백 마운틴. 이 양 떼 방목장에서 여름 한 철 함께 일하게 된 스물 안팎의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은 자연에 동화돼 오랜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다가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

방목철이 끝나자 둘은 그들의 감정의 근본을 채 깨닫지도 못한 채 헤어진다. 에니스는 연인 알마와 결혼해 딸을 낳는다. 잭은 로데오를 하며 살다 부잣집 딸 루린을 만나 결혼한 뒤 그녀와 함께 장인의 사업을 돕는다. 4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예전의 감정이 충동이 아닌 순수한 사랑임을 깨닫는다.

그렇게 1년에 서너 번씩 만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야영을 하며 사랑을 나누게 된다. 잭은 자주 못 만나는 불만을 터뜨리고, 에니스는 자신은 잭과 달리 가난하기 때문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응수한다. 그러는 사이 알마는 둘의 관계를 알고 에니스를 경멸하다 결국 이혼한다.

마초맨에 가까운 에니스와 달리 잭은 소심하다. 돈 많은 장인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에니스와의 관계가 퇴보하자 자제력을 상실하고 멕시코로 넘어가 남창을 사기도 하고, 장인에게 대놓고 대들기도 한다. 이혼 뒤의 에니스의 삶은 더 퍽퍽하다. 자기 생활비와 딸 양육비를 벌어야 하기 때문.

리앙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2006)에 대해 그냥 쉽게 말하려는 자들은 ‘게이 웨스턴’이라고 평하지만 2시간 넘는 영화 한 편을 텍스트 몇 자로 재단하는 건 위험하다. 혹자는 리의 ‘와호장룡’(2000)을 더 걸작으로 손꼽기도 하지만 어쨌든 두 작품 모두 어느 걸 내세워도 이견이 없을 명작이다.

1960년대의 미국이라고 현재의 우리처럼 개방적이진 않았다. 에니스는 어릴 때 게이 한 명이 폭행을 당한 뒤 남근이 뽑힌 채 죽어있는 걸 아버지를 통해서 봤다고 한다. 살인자는 아버지인 것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그들이 사랑놀이하는 걸 양 목장 주인이 본 뒤 다음 해 일거리를 안 준다.

잭과 헤어진 뒤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비로소 억눌렀던 슬픔을 토해내는 에니스는 지나가던 행인이 쳐다보자 ‘뭘 보냐’며 마치 때릴 듯이 달려든다. 두 사람 모두 사회적 시선이 두렵다. 루린은 매번 잭이 에니스의 집으로 찾아갈 뿐 에니스는 단 한 번도 자기 집에 안 오는 게 이상하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에니스는 터프해 보이면서도 사회적 편견에 대해 노골적으로 두려움을 갖고 있다. 다소 연약해 보이는 잭은 그러나 에니스와의 사랑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듯하지만 사실 그 역시 더욱 조심스럽다. 그래서 자기네 집 근처에 에니스를 절대 부르지 않는 것이다. 장인이 제일 무섭다.

무대와 주인공, 시나리오만 다를 뿐 ‘와호장룡’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크다. ‘와호장룡’의 주제는 자유와 사랑, 그리고 그걸 통한 해탈의 경지다. 리무바이와 수련은 사형과 사매라는 관계 때문에 감정을 억눌러왔다. 그러나 대척점에 선 용의 자유로운 사랑을 보고 자제와 발현의 적용 방법을 배운다.

귀족인 용은 깡패 무리의 두목 호와 감정과 욕망만이 지배하는 자유분방한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 사랑을 탐미할수록 호가 자신을 얽매려는 걸 깨닫고 자신이 원하는 자유를 찾아 산꼭대기에서 몸을 던짐으로써 해탈한다. 독극물에 죽어가는 리무바이가 사랑을 고백하고 해탈하는 것과 같은 맥락.

아름다운 풍광에 그 어떤 구속도 편견도 없는 브로크백 마운틴은 그 자체가 자유다. 그 안에서 캠핑을 하는 두 사람이 도시에서의 찌든 모습과 달리 절정의 행복을 느끼는 표정인 건 자유를 만끽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구속과 인습적 체면에 얽매일 필요가 없이 직관적, 직각적, 본능적이면 되니까.

국내에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유행가가 있긴 하지만 그건 남녀 간의 얘기고, 그게 남남이나 여여 사이의 얘기라면 차원이 달라진다. 최소한 에니스와 잭의 관계는 사랑과 우정 사이가 아니라 사랑과 우정 모두다. 그리스 신화와 플라톤은 제우스가 둘로 갈라놓기 전의 제3의 성, 남녀추니를 말한다.

두 사람이 한 몸이 된 그 둥그런 존재는 남녀의 조합일 수도 있지만, 남남, 여여의 조합일 수도 있다. 지금이야 엄벌에 처할 악질 범죄지만 고대 그리스의 귀족 사회엔 파이데라스티아(소년애)가 보편화됐었으니 그들의 ‘제3의 성’ 이론은 그럴듯한 근거다. 사랑에 성별이 중요하냐는 영화의 주제다.

에니스와 잭의 사랑과 우정은 니체가 말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들의 우정’이다. 니체의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은 “‘친구들이여, 친구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죽어가는 현자가 이렇게 외쳤다. ‘친구들이여, 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어리석은 자, 나는 외친다”라고 썼다.

니체와 바그너는 서로 존경했고, 남다른 끈끈한 우정을 나눴지만 뒤에 완전히 등을 돌렸다. 그리고 나서야 니체는 참된 우정을 깨닫게 된다. 에니스는 루린과의 전화 통화로 잭이 39살에 사고사 했다는 소식을 듣지만 타살 혹은 자살임을 직감한다. 그리고 잭의 부모 집을 찾아 그의 셔츠를 꺼낸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사진이 걸린 옷장에 있는 자신의 셔츠와 겹친 그의 셔츠를 어루만지며 ‘맹세해’라고 잭을 향한 마지막 약속을 한다. 그건 ‘너와의 사랑을 영원히 간직할게’, ‘너와의 사랑을 긍정할게’, ‘너를, 나를, 우리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을게’ 등이다. 부끄럽지 않은 사랑은 자유이자 해탈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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