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로부부' 홈페이지 갈무리.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지난 7일 방송된 채널A 관찰 예능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애로부부’에 등장한 조지환-박혜민 부부는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개그우먼 조혜련의 동생인 조지환은 32시간마다 ‘부부관계’를 요구해 박혜민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는 얘기로 하루아침에 ‘국민 변강쇠’로 떠오르며 이름값을 떨치고 있는 것.

관찰 예능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유명인 부부를 관찰하는 포맷의 프로가 주류로 떠올랐는데 아무리 ‘19 금’이라는 딱지를 붙였을지라도 모든 연령층에 고루 노출될 수밖에 없는 안방극장에서 과연 그 수위가 허락이 가능한 건지, 바람직한 방송 콘텐츠인지에 대한 의문부호를 남기고 있다.

현재 온-에어 중인 부부 관찰 예능은 SBS ‘동상이몽 2-너는 내 운명’, TV조선 ‘아내의 맛’, 채널A ‘애로부부’, JTBC ‘1호가 될 순 없어’ 등이다. ‘동상이몽 2’는 두 번째 시즌을 맞이할 만큼 안정세를 유지 중이다. 유사 경쟁 프로에 시청자를 빼앗기긴 했지만 최근 6%대의 시청률을 지키고 있다.

2018년 시작된 ‘아내의 맛’은 왠지 불쾌한 제목이 외려 더욱 호기심을 부채질하는 효과를 낳으며 한-중 커플인 함소원-천화 부부를 추자현-위쇼우광 커플 못지않은 유명 인사로 부각시키고 있다. 10%대의 시청률로 TV조선에서 ‘미스터 트롯’ 못지않은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각 프로그램마다 저마다의 ‘존재의 이유’를 앞장세워 당위성을 외치고 있지만 사실 그 저변의 의도는 모두 시청률이다. 관찰 예능은 인간의 훔쳐보기 심리와 이를 뒷받침하는 에로스가 교묘하게 이인삼각 경주를 내달리는 데 아주 적합하다. 여기에 대상이 유명인 부부라니 더할 나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플랫폼이 아무나 리모컨만 작동시키면 시청이 가능한 안방극장이라는 데 있다. 케이블TV의 성인 채널은 따로 성인 인증을 받고 유료 가입을 해야 볼 수 있지만 지상파와 종합편성채널은 남녀노소를 차별하지 않고 완전히 개방적이다. ‘19 금’이란 타이틀을 허울 좋은 명목일 따름이다.

이들 프로그램들이 기치로 내세운 ‘부부 관계 솔루션’이란 슬로건 역시 그리 진정성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일반인들과는 다를 듯했던 유명인 부부 역시 신혼 초엔 뜨겁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섹스리스가 되고, 어느 부부는 바람, 도박 등으로 내홍을 겪기도 하며, 이혼의 위기도 맞는다.

▲ JTBC 화면 갈무리.

결국 섹스가 됐건 섹스리스가 됐건 유명인들의 침실을 엿보는 은밀한 즐거움을 통해 시청자들을 유입시키고자 하는 저의는 확연하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의 천박스러운 변주다. 출연자들은 두 가지를 얻을 수 있다. 평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속내를 속 시원히 털어놓는 스트레스 해소다.

또 하나는 당연하지만 일과 돈을 얻을 수 있고, 이를 통해 다시 인기를 얻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시청자가 출연자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만약 내 은밀한 ‘부부관계’가 만천하에 까발려진다면? 유명인이 아니기에 전술한 두 가지 모두를 얻긴 힘든 대신 이웃과 친지에게 내 사생활은 폭로된다.

이 프로그램들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훔쳐보는 사람들의 즐거움과 상상력은 확장될 수 있지만 출연자들의 진정한 고통은 치유되기는커녕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 물론 유사한 사례를 겪는 시청자들에게도 해결책을 주기보다는 그저 가벼운 웃음이나 한숨밖에 못 준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1호가 될 순 없어’는 유독 개그맨 커플 중 ‘이혼 1호’가 나오지 않는 이유를 탐구한다는 기치는 가상하지만 내용은 궤를 달리해 발칙하다. 최양락-팽현숙 부부는 ‘쌍팔년도’ 학예회 같은 상황극을 펼친다. 심지어 김학래의 외도와 도박을 폭로한 임미숙 부부 편은 매우 불편했다.

남편의 그런 문제 때문에 공황장애를 앓았다는 임미숙은 예능에 출연할 게 아니라 먼저 병원을 찾아 심리 치료를 받은 뒤 결혼 생활을 뒤돌아보는 사유와 고뇌의 시간을 갖는 게 순서였다. 진정 그녀가 그토록 마음의 상처를 앓았다면. 게다가 시청자들은 유명인들의 고통을 위로할 만한 여유가 없다.

프로그램 중 동물 다큐멘터리를 볼라치면 사자의 교미 등이 심심찮게 그대로 노출된다. 성교육은 학교에서, 혹은 집에서 부모가 해 주는 게 더 바람직하다. 굳이 전 식구들이 함께 시청하는 초저녁 프로그램에서 가르칠 필요는 없다. ‘부부 관계’의 해결책 역시 애써 예능이 책임지려 나설 명분도 희박하다.

기원전 3~2세기 크게 유행한 스토아학파 철학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금욕주의와 윤리학이었다. 성욕, 물욕, 출세욕, 권력욕 등을 자제하는 이성이 최고의 가치관이었다. 그보다 살짝 앞선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창시한 에피쿠로스학파는 쾌락주의를 기치로 내걸었는데 그 쾌락은 육욕이 아닌 심리적 만족이다.

즉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이 풍족한 정신적 풍요로움의 위안과 자족이었다. 남녀추니의 존재를 믿었던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래서 성공한 유부남들이 미소년들과 사랑하는 걸 당연시했지만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는 그런 모든 욕망들을 떨치려 했다. 왜? 이성적인 ‘인간’을 추구했으니까.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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