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무법인 정향 박건호 변호사

[미디어파인 시사칼럼] 많은 사람들은 변호사라는 직업을 떠올리면 말을 굉장히 잘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현장에서 화려한 언변으로 불리한 재판을 한 번에 뒤엎고, 결정적인 증인을 법정 현장에 데려와 재판결과를 바꾸는 드라마 장면을 보면 재판이라는 절차가 굉장히 극적으로 보이고 변호사의 언변이 변호사의 능력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법정드라마와 달리 실제 재판에서는 철저히 서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우리나라에서 변호사의 능력은 얼마나 화려한 언변으로 현장에서 재판을 진행하였는지가 아니라, 재판부에서 소명하라고 한 쟁점을 얼마나 철저히 사전에 서면에 기재하였는지에 따라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변호사로서 구술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증인신문절차 같은 경우, 드라마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극적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종종 있고, 본인이 파악한 쟁점에 대해 재판부에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 역시 변호사에게 필요한 능력 중 하나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미국과 같이 원칙적으로 배심원제도를 운영하고 있지 않은 우리나라에서는 재판 당일 날 법정에서의 변론이 재판전체에서 반영되는 요소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도 미국의 배심원제도와 유사한 국민참여재판이 2008년도부터 시행되고 있기는 하다. 우리나라의 국민참여재판은 배심원의 평결에 따라야 하는 미국의 배심원제도와 달리 재판부가 배심원의 평결에 구속될 필요가 없고 재판부가 배심원 평결과 다른 판결을 내릴 수 있으나, 여태까지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되었던 2008년부터 지금까지 배심원 평결을 존중하여 판결한 재판이 90퍼센트가 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배심원의 평결이 판결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볼 수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형사 합의부 관할 사건 가운데 몇몇 범죄를 제외하고는 피고인이 원하는 경우 에는 누구나 진행이 가능한 절차다. 형사 합의부 사건에서 재판을 시작하기에 앞서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국민참여재판절차 희망여부를 사전에 묻게 되어 있다. 그러나 국민참여재판이 시행된 때로부터 12년이 지난 현시점에도 국민참여재판이 열리는 비율은 일반 형사재판절차에 비교하면 극히 낮은 편이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참여재판의 비중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수개월에 걸쳐 쟁점을 정리해가며 서면을 중심으로 재판을 진행하는 일반 형사재판 절차에 비해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해 하루 종일 변론을 중심으로 재판을 주도적으로 진행해야 하는 국민참여재판 절차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솔직히 말해 이러한 이유로 익숙하지 않았던 국민참여재판절차를 희망하지 않았다.   

내가 국민참여재판절차를 처음으로 진행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로 요양보호사분과 요양원 원장의 업무상과실치사 사건을 맡게 되면서였다. 96세 어르신이 요양원 내에서 목에 프렌치 토스트 조각이 걸려 사망에 이르게 되면서 요양보호사와 요양원의 원장이 업무상과실치사로 검찰로부터 기소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의 쟁점은 결국 ‘요양보호사에게 사망에 대한 과실이 인정되는지 여부’ 였다. 변호사는 해당 사건과 가장 유사한 판례를 찾는 업무를 기본적으로 수행한다. 나 역시 해당 사건을 맡은 뒤 이와 비슷한 사례 중 무죄가 인정된 사례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찾아도 내가 맡은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놓이자, 나는 일반적인 형사공판절차로 진행할 경우 요양원에서의 업무상과실의 기준을 엄격하게 보는 기존 판결들과 다른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했다. 이에 재판부의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과실에 대한 기준을 판단 받는 걸 택했고, 결국 많은 생각 끝에 변호사로서 처음으로 국민참여재판절차를 신청했다. 

직접 경험해본 국민참여재판절차는 생각 이상으로 쉽지 않았다. 배심원을 선정하는 절차, 마이크를 들고 배심원 앞에서 모두 진술을 하는 것, 그리고 일어나서 배심원들 앞에서 최후진술을 하는 것 역시 처음 경험하는 일이었다.

국민참여재판에서의 모든 절차가 익숙하지 않았기에 긴장된 마음이 컸던 게 사실이지만, 나보다 훨씬 긴장되었을 의뢰인들을 생각하며, 진심으로 의뢰인의 무죄를 믿었기에 업무상 과실의 기준을 지나치게 높게 보는 판례가 해당 사건에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였지만 오로지 결과가 좋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손가락질하는 평가가 과연 정당한지 물었고, 사고 당시 요양보호사로서 의뢰인이 하였던 모든 업무를 강조하며 의뢰인 역시 예상하지 못한 죽음에 대한 책임을 의뢰인이 지는 것이 타당한지 물었다. 

오전 10시에 시작했던 국민참여재판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쉬지도 못한 상태에서 하루 종일 진행되었다. 검찰과 내 변론이 끝난 뒤 배심원들의 평결을 위한 회의가 3시간가량 추가적으로 진행되었고, 당일 저녁 11시 30분경이 되어서야 배심원들의 평결결과가 나왔다. 무죄의견 6명, 유죄의견 1명. 무죄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결국 이러한 평결결과를 참고하여 내 의뢰인들에게 모두 무죄가 선고되었다.

아직 많은 변호사들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겠지만 그렇지만 나는 국민참여재판이 계속해서 확대되었으면 좋겠다. 서면만으로 다 담지 못한 의뢰인들의 마음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대변했었던 그 순간은 아직까지도 생생할 정도로 마음에 남는다.(법무법인 정향 박건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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