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 칼럼=김주혁 주필의 성평등 보이스] 이 영화는 1988년 9월 10일 경북 영양군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다룬 실화다. 어린 아들을 둔 32세 주부(원미경)가 한밤 귀갓길에 20대 청년 2명에게 성폭력을 당하면서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성폭력범 중 1명(김민종)의 혀를 깨물어 자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치한은 적반하장격으로 자신의 혀를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피해 여성을 상해죄로 고소한다. 그러자 이 여성도 치한들을 강간죄로 맞고소한다. 둘 다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는다.

그녀는 정당방위라고 주장하지만 상대편 변호사(이경영)는 인격적으로 모욕을 주며 피해자를 궁지로 몰아간다. 피해자의 사건 당일 음주량, 이혼 과정의 사생활 등 사건과는 상관이 없는 불행했던 과거를 들추며 그녀를 부도덕한 여자로 몰아세운다. 결국 그녀는 가해자와 함께 유죄판결을 받는다. 이 여성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과잉방어라는 이유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은 것. 이 판결은 정당방위와 과잉방어의 경계선이 어디인지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집행유예로 풀려났으나 주위사람들이 눈총을 주며 나쁜 소문을 퍼뜨릴 뿐 아니라 재혼한 남편(이영하)마저 불신하자 그녀는 견디기 힘든 나머지 자살을 시도한다.

천신만고 끝에 목숨을 건진 그녀는 여성의 인권 회복을 위해서라도 항소하라는 한 변호사(손숙)의 설득을 받아들여 끈질긴 법정투쟁을 벌인다.

피해자는 최후변론에서 이렇게 말해 법정을 숙연케 했다. “세상의 모든 진실이 예, 아니오로만 답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재판장님, 만일 또 다시 이런 사건이 제게 닥친다면 순순히 당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겠습니다. 여자들한테 말하겠습니다. 반항하는 것은 안 된다고, 얘기하는 것도 안 된다고, 재판을 받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말입니다.”

▲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스틸 이미지

변호사의 발언도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건이 일어나던 때에 이미 그녀는 여자로서 죽었고, 현장 검증에서는 그 모욕과 수치 속에서 한 인권을 가진 그녀가 죽었고, 법정에서는 그녀의 과거와 현재가 송두리째 까발려지면서 한 가정의 주부인 그녀가 죽었습니다. …우리는 즐겼습니다. 그녀의 처참했던 과거를 즐겼고, 치욕적인 현재를 즐겼으며, 이제 결정되지 않은 미래까지 즐기려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유죄입니다.”

그녀는 결국 정당방위로 무죄판결을 받는다. 가해자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이 영화는 국내 주요 영화제의 남녀주연상과 감독상을 휩쓸었고 국제영화제에도 여러 곳 출품됐다.

이 영화는 가부장적 사회와 법정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이 이중 삼중으로 고통을 당하는 현실을 잘 보여 준다. 성폭력 책임이 전적으로 가해자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에게 책임이 있는 것처럼 허점을 까발려서 자책감을 증폭시키는 우리사회의 잘못된 문화는 이제 바로잡혀야 한다. 피해자에 대해 쑥덕공론을 펴는 것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다. 가족을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의 위로와 지지가 중요하다. “많이 힘들지.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힘내!” 물론 재발 방지를 위해 가해자 처벌도 강화돼야 한다.

▲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김주혁 미디어파인 주필]
가족남녀행복연구소장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양성평등․폭력예방교육 전문강사
전 서울신문 선임기자,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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