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마틴 에덴’은 피에트로 마르첼로(44)가 왜 현재 이탈리아에서 가장 주목받는 젊은 감독 중 한 명인지 증명해 주는 철학의 보고다. 20세기 중반 이탈리아 나폴리. 선박 노동자 마틴은 주먹이 세고 외모도 뛰어나 여성에게 인기가 좋아 카페 웨이트리스인 마르게리타와 만나자마자 하룻밤을 보낸다.

마틴은 깡패에게 폭행당하는 부잣집 아들 아르투로를 구해주고 그의 집에 초대된다. 그리고 그의 여동생 엘레나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그녀는 미술, 음악, 문학 등 모든 지적인 분야에서 뛰어난 수준을 보이고 마틴은 그녀처럼 되기 위해 미친 듯이 독서에 빠진다. 하지만 그는 초등학교 중퇴자다.

그는 누나 집에 얹혀사는데 배를 안 타고 독서에 파묻혀 있기에 집세를 못 내 매형에게 무시당한다. 주머니를 털어 책과 낡은 타자기를 산 그는 집세를 아끼기 위해 교외 싱글맘 마리아의 집에서 하숙을 하며 글을 쓴다. 미친 듯이 글을 써 잡지사와 출판사에 보내지만 매번 원고는 반송될 뿐이다.

엘레나와의 사랑을 확인한 그는 그녀에게 2년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 긍정의 답을 받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아 식료품점에 외상값이 밀리자 배를 타기도 한다. 그러던 중 엘레나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받아 죽은 마리아 남편의 양복을 입고 참석하지만 엘레나를 노리는 판사에게 모욕만 당한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부자 노인 루소와 친구가 돼 꽤 도움을 받는다. 특히 마틴은 사상적으로 진보적인 루소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엘레나는 마틴의 글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마틴은 엘레나를 자신이 살던 빈민촌으로 데려간다. 그러자 엘레나는 그에게 실망해 이별을 선언한다.

이 영화는 그냥 허버트 스펜서 그 자체고 보들레르로 매조진다. 마틴이 아르투로의 집에서 엘레나와 마주치기 직전에 본 책이 보들레르다. 그래서 시인이 되고자 하는 것. 그런데 정작 그의 삶은 보들레르에 근접할 환경은 아니었다. 결국 그의 사상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게 스펜서의 ‘제일원리’.

스펜서는 그 책의 첫 머리에 ‘나쁜 것들 속에 친절한 영혼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오류 속에 진리의 정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고 썼다. 그 종교관은 마틴에겐 엘레나였다. 무식한 고아로서 거친 삶을 사는 그는 엘레나를 통해 지성에 눈을 뜨면서 진흙탕 속에서 희망을 본 것이다.

스펜서는 공리주의, 개인주의, 진화론, 기계론, 그리고 사회주의 반대론으로 유명하다. 마틴은 노동조합원들이 파업한 채 시위를 하고, 토론회를 통해 사회주의로 갈 것을 외치자 그 연단에 서서 사회주의를 반대하고 개인주의를 찬양한다. 그에게 중요한 건 진화의 법칙이고 그건 곧 우주의 법칙이다.

엘레나의 아버지와 판사는 “스펜서가 요즘 젊은이들을 죄다 망쳤다”고 혀를 끌끌 찬다. 그렇다. 스펜서는 말년에 기득권자들에게는 무정부주의 때문에, 노동자들에게는 보수주의 때문에 배척당했다. 마틴의 괴로움은 그런 스펜서의 안티노미 때문이 아니었을까? 신념이 ‘마야의 베일’(착각)이었다는?

엘레나는 처음부터 마틴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녀는 사랑의 경험이 없다고 한다. 그저 잘생긴 마틴의 외모만 보고 반한 것이다. 그건 마르게리타도 마찬가지. 하지만 두 여자의 결과는 다르다. 먼저 마틴은 마르게리타를 가벼운 여자로 취급하되 엘레나는 자신의 이상형, 심지어 우상으로 떠받든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엘레나의 눈에 비친 마틴은 제 주제를 모르는 막무가내의 이상주의자다. 아버지뻘 판사에게 시집보내려는 엄마에게 반항하지만 그렇다고 피폐해질 게 뻔한 마틴과의 낭만주의로 가고 싶지도 않다. 결국 작가로서 성공한 마틴에게 돌아와 사랑을 고백하는 엘레나는 천박하다.

오귀스트 콩트는 사랑에 빠진 이후 감정을 개혁의 힘으로 봐 지성보다 우위에 뒀다. 누가 봐도 스펜서는 콩트와 다윈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그건 마틴에게서 오롯이 드러난다. 그는 엘레나의 제자가, 심지어 개가 되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가 지성을 갖추려는 이유가 개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니!

그 개는 견유학파 디오게네스의 개가 아닌 진화론적인 면의 개다. 마틴에게 진화의 법칙은 금과옥조다. 그가 그걸 우주의 법칙이라고 주장하는 배경은 스펜서의 기계론이다. 모든 세상은 완벽한 기계처럼 설계됐고, 그렇게 움직이는 것이라고. 그러니 사회주의는 필요 없고 오로지 개인주의에 충실해라!

그저 단순히 제자나 개로서의 작가가 되려 했던 마틴은 루스에 의해 눈을 뜨게 된다. 진짜 스펜서, 콩트, 다윈 그리고 보들레르를 알게 되는 것. 루스는 돈도 있고 글재주도 있지만 성경 안에 권총을 감춰놓고 있다가 어느 날 자신의 머리에 쏜다. 웬만한 건 다 갖춘 것 같지만 가족이 없기 때문이다.

그건 곧 희망이 없다는 뜻이다. 마틴은 그림을 보고 “멀리서 보면 멋진데 가까이서 보면 얼룩투성이”라고 촌평한다. 스펜서는 단호한 현실주의자로서 시적 감각이나 예술 정신은 없었다. 즉 애초부터 마틴은 스펜서가 될 수 없었던 보들레르였던 것이다. 그 증거는 마지막 시퀀스에 극명하게 담겼다.

심지어 “인생은 역겹다”고 말한다. 이렇게 루스의 영향을 받은 마틴은 결국 개인주의를 버리고 노동조합원들에게 자금을 대준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답게 현사실적 기법을 삽입했다. 실제 자료 등의 흑백 필름 인서트가 대표적. 트레몰로 기타 등 칸초네의 향연이 펼쳐지는 음악도 좋다. 2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