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앙상블’(정형석 감독)은 전주에 사는 세 커플의 에피소드로 펼쳐지다 마지막에 여섯 주인공이 한자리에 모여 매조지는 옴니버스 형식의 인생 얘기다. 첫 번째 에피소드. 연극 연출가 영로는 아내와 헤어진 뒤 외아들 우동과 함께 누나네 집에서 10년째 외롭게 살고 있는 40대 중반의 중늙은이다.

한때 영로의 조연출이었지만 이젠 그보다 더 성장한 30대 세영은 영로의 새 작품에서 기꺼이 조연출을 맡고 있다. 세영은 대놓고 영로를 책임지겠다고 프러포즈하지만 영로는 젊고 아름다우며 전도양양한 그녀에게 미안해 그 마음을 물리친다. 영로는 누나의 강권에 못 이겨 선을 봤다 씁쓸해진다.

세영은 영로에게 이제 포기할 테니 우동까지 셋이 딱 하루만 놀아달라고 제안하고 그렇게 세 사람은 행복한 듯, 공허한 하루를 보낸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도 세영은 또 “딱 하루만 놀아 달라”는 제안을 하고 영로는 어이없어 한다. 두 번째. 연습실 사무직 20대 주영은 거리의 악사 민우를 짝사랑한다.

민우는 사귀던 연인에게 배신당한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가 하는 일은 전 연인의 인스타그램을 뒤지고, 그녀의 집 앞에 숨어서 그녀가 현 연인과 헤어지는 걸 훔쳐보는 것 따위다. 주영은 카메라로 그런 민우를 일일이 촬영하는 게 일과다. 주영은 일방적으로 희생적이고, 민우는 그저 무관심하다.

세 번째. 연극의 주연배우 만식은 후배 배우 혜영과 결혼했지만 혜영이 공연 중 유산을 한 데다 경제적으로 어려워 별거 중이다. 어느 날 혜영이 밥을 먹자고 불러낸 뒤 이혼 서류를 건넨다. 두 사람의 사랑은 아직 안 변했음에도. 혜영은 가정법원 앞에서 만식을 기다리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는데.

세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공통의 주제는 인생에 대한 숙명론 혹은 운명론이다. 그리고 존재론, 시간, 인간관계 등이 부차적 주제로 펼쳐진다. 숙명론, 운명론, 기계론은 유비적이지만 차이는 있다. 기계론은 신 혹은 우주적 원리에 의해 모든 게 기계적으로 설계돼있다는, 이름과 달리 판타지적인 논리다.

숙명론은 세상만사는 시작과 끝이 원래부터 정해져있기에 바뀔 수 없다는 인과론적 기계론이다. 운명론은 숙명론과 비슷하지만 인간의 강한 의지에 의해 바뀔 수도 있다는 게 다르다. 세영은 영로와의 관계가 인연이라고 생각한다. 주영은 민우에게 첫눈에 반한 뒤 그가 자신의 운명이라고 믿는다.

두 사람은 숙명론자다. 세영은 낭만주의자이기도 하다. 이 시대는 운명을 믿지 않아서 낭만이 없기에 싫다고 한다. 나이도 많고, 가난하며, 애까지 딸린 영로를 좋아하는 건 숙명적 인연이고, 그를 향한 자신의 사랑에 낭만이 담겼기에 합당하고 아름답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시간을 즐기는 존재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사유하고 모든 유기체는 죽는 존재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게 된 이후 사는 동안 행복에 치중하자는 인생관을 정립했다. 영로를 조건으로 재단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연정을 품은 데 대한 합리론이다. 영로는 그녀가 싫지 않다.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란 논리로 밀어낸다.

도대체 뭐가 아닌 것이란 말일까? 그는 자신에게 노안이 온 데 대해 기함한다. 하지만 “겉이 젊으면 뭐해? 속이 젊어야지”라는 대사에 그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그는 ‘꼰대’다. 세영은 ‘운명은 제 갈 길 따라간다’고 한다. 주영은 민우의 전 연인에 대한 복수에 대해 ‘바보 같다’라며 부정적이다.

그녀는 ‘복수는 운명을 거스르는 것’이란 신념을 갖고 있다. 그녀가 모든 일상을 카메라에 담는 이유는 인간은 우주에서 먼지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말속엔 아무도 인정하지 않지만 모든 이들의 생은 그들에겐 소중한 것이니 스스로 포장하고 가꿔서 행복해져 기록으로 남기자는 것이다.

세영이 영로를 향한 집착을 버리겠다는 조건으로 ‘하루만 놀아 달라’고 제안해 하루 놀고도 뻔뻔스럽게 또 제안하는 이유는 행복한 시간을 반복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그녀는 스스로 주문을 걸어 타임 루프에 빠진다. 그리고 그걸 영로에게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고백한다. 주영의 아버지는 죽었다.

그런데 그녀는 살아남은 지인들이 망자를 기억해 주는 만큼 살 수 있기에 영혼에도 수명이 있다고 믿고 있다. 혜영은 만식에게 첫눈에 반했다. 만식보다 혜영이 더 많이 사랑했다. 그들의 결혼생활은 행복했다. 그런데 왜 이혼의 수순을 밟을까? 만식은 머리는 되는데 마음이 회복이 안 된다고 한다.

혜영에겐 재결합을 위해선 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빚으로 채권추심 법정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 ‘지지리 궁상’이라고 말한다. 남편과 이혼한 뒤 개 4마리와 사는 게 행복하다는 여자와 맞선을 보던 영로는 갑자기 그녀가 개들이 아프다며 그 자리를 뜨자 개만도 못한 데 대해 낭패감을 느낀다.

만식은 제일 싫은 게 연극이라고 토로한다. 플라톤은 교육에서 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공격성의 폐해는 음악으로 극복한다고 주장했다. 대신 그는 연극에 부정적이었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매사에 그랬던 것처럼 스승에 반기를 들고 연극을 옹호했다. 예술적 형상화의 미메시스(모방이론).

결국 이 작품은 운명의 여신 모이라이, 헤라클레이토스, 플라톤 등을 따르면서도 세 커플의 운명을 연극으로 승화시키는 재치를 발휘한다. 민우와 주영이 항상 버스 맨 뒤 좌석 양 끝에 앉는 것처럼 우리는 저마다 운명을 개척하려 하지만 결국 우주가 연출하는 숙명적 연극판이라는. 내달 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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