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한의사 홍무석의 일사일침(一事一針)]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사랑의 이야기 담뿍 담은 편지/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 하늘이 푸른지 마음이 밝은지...(중략)...나성에 가면 소식을 전해줘요/안녕 안녕 내사랑“

3인조 혼성그룹 세샘트리오가 1978년 발표한 노래 ‘나성에 가면’의 가사 일부다. 여기에서 나오는 나성은 어딜까. 중국에 있는 어떤 성(省 또는 城) 이름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있었다는데 ‘나성(羅城)’은 미국 LA(로스앤젤레스)다. 발음을 따와 한문(漢文)으로 표현한 것이다.

세샘트리오의 보컬 권성희 씨는 2015년 언론 인터뷰에서 “작사·작곡자인 길옥윤 선생님이 원래 붙인 제목은 ‘LA에 가면’인데, 당시 영어를 못 쓰게 하는 규정 때문에 ‘나성’으로 고쳐 재녹음했다”고 했다. 어쨌든 나성이 LA라는 것을 알고 나면 조금 허탈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때 신문 제목과 기사에도 음차 한문을 볼 수 있었다. 싱가포르는 성항(星港), 홍콩은 향항(香港), 인도네시아는 인도니서아(印度尼西亞)에서 줄인 인니(印尼), 불란서(佛蘭西), 이태리(伊太利), 유럽의 음차인 구라파(歐羅巴), 스페인의 서반아(西班牙). 포르투갈의 포도아(葡萄牙)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 종로에 미도파(美都波)백화점이 있었고, 지금은 세종문화회관 근처에 사무실로 사용되는 미도파빌딩이 있는데, 미도파도 음차 한문이다. 뉴욕 런던 등과 같이 행정구역을 초월해 광역지역에 걸쳐 형성된 도시라는 의미의 메트로폴리탄(metropolitan)의 한문 표현이다.

기독교(基督敎)는 메시아, 구원자를 뜻하는 크라이스트(Christ)의 음차이고, 태풍(颱風)은 타이푼(typhoon)의 음차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가 마치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음차를 이해하면 꼭 그렇지만 않은 셈이다.

미국의 외교전략 가운데 1823년에는 ‘먼로 독트린’이 발표됐다. 미국 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Monroe)가 유럽에 외교간섭을 말라고 주장한 원칙이다. 단재 신채호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에서 ‘신성한 문라(文羅)주의’했는데 문라는 먼로의 음차다.

소리가 아닌 의미로 외국 도시를 표현하는 한문도 있다. 인천공항 출발·도착 안내판에도 나오는 구금산(舊金山)은 미국 샌프란시스코다. 19세기 중반 미국의 골드러시 때 많은 중국인 건너갔던 샌프란시스코를 금산로 표현했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호주 멜버른에서도 금광이 발견돼, 먼저 개발된 샌프란시스코에 구(舊)를 붙였다고 한다.

한방 침구학에 아시혈(阿是穴)이라고 있는데, 이때는 소리와 의미를 동시에 따온 한문표현을 우리 소리대로 읽는 것으로 봐야 할 거 같다. 혈은 침이나 뜸을 놓는 자리를 뜻하고, 아시는 ‘아! 맞다’라는 의미다. 시는 나는 학생이다(我是學生), 또는 질문에 맞다고 할 때 중국어(是)와 같은 뜻이다.

그러니 아시혈은 ‘바로, 그 자리’라고 할 수 있다. 통증이 있는 부위에 침을 놓으면 그 해당하는 자리가 곧바로 편해지거나 혹은 환자가 아픔을 느끼고, “네, 거기예요”라고 말하는 곳이다. 대증요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침을 아시혈에만 찌르지는 않는다. 눈에 다래끼가 났는데 발가락 끝을 찌르기도 하고, 발목이 삐었는데 눈썹 밑의 혈을 이용해서 치료하기도 한다. 인체 내의 원격치료여서, 그럴 때 침은 마치 리모콘 역할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침의 두 얼굴인 셈이다.

▲ 한의사 홍무석

[홍무석 한의사]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 졸업
로담한의원 강남점 대표원장
대한한방피부 미용학과 정회원
대한약침학회 정회원
대한통증제형학회 정회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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