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11일 개봉되는 영화 ‘안티고네’는 시나리오 집필과 촬영을 직접 하는 소피 데라스페 감독의 5번째 장편이다. 그리스 신화의 가족을 위한 희생의 아이콘 안티고네와 인종차별 및 인권유린의 현실을 접목했는데 유려한 연출에 타이틀 롤 나에마 리치의 연기 솜씨의 도움이 더해 문제적 울림을 준다.

아프리카 이슬람 국가 알제리에서 처참하게 부모를 잃은 뒤 캐나다로 이민 온 17살 안티고네는 불어를 못 하는 할머니, 미장원에 취업한 언니 이스메네, 지역 축구단 선수면서 18살 오빠 폴리네이케스와 갱단에 소속된 큰오빠 에테오클레스 등과 함께 영주권을 얻어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장학금을 탈 정도로 수재인 안티고네는 모범적인 학교생활을 하는데 변호사 출신 거물 정치인 아버지를 둔 동급생 하이몬과 급격히 친해진다. 그런데 갱단원들과 어울리던 폴리네이케스가 경찰 폭행 혐의로 긴급 체포되고, 동생을 지키려던 에테오클레스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즉사한다.

안티고네 가족은 에테오클레스의 살해 문제를 강력하게 항의하지만 공권력은 이민 영주권자의 인권이나 생명에는 관심이 없고, 단지 폴리네이케스가 공권력에 대항했다는 점과 에테오클레스가 나쁜 짓을 일삼았다는 점만 강조한다. 이대로라면 폴리네이케스는 알제리로 강제 송환돼 거기서 죽을 터.

안티고네는 변장하고 면회를 가 자신과 오빠를 바꿔치기해 탈옥시킨다. 금세 정체가 들통난 그녀는 형사에게 오빠의 소재를 추궁당하지만 입을 굳게 다문다. 그새 그녀는 언론 보도로 스타가 되고, 변호사는 재판을 교묘하게 프로파간다의 무대로 활용해 검사 측으로부터 최소 구형 제안을 받지만.

안티고네는 BC 6~5세기 활약한 고대 그리스 3대 비극 시인 중 아이스킬로스만 제외한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가 썼고, 그 이후 숱한 예술 작품의 소재가 됐을 정도로 의미심장한 인물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만든 프로이트가 돈과 명성을 얻는 데 공헌한 테바이 왕 오이디푸스의 딸이다.

오이디푸스 가족사는 그리스 신화의 대표적인 비극이다. 그는 신탁이 두려운 아버지에 의해 버려지지만 살아남아 아버지를 죽이고 엄마와 결혼해 2남 2녀를 낳지만 모든 진실을 안 뒤 스스로 눈을 도려낸 뒤 추방당한다. 안티고네는 아티카까지 아버지를 따라가 죽음을 확인한 뒤 테바이로 돌아온다.

에테오클레스가 왕위에 올랐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은 폴리네이케스가 펠로폰네소스반도의 아르고스 용병을 이끌고 돌아와 공격한다. 결국 두 형제는 결투 끝에 동귀어진하고, 에테오클레스의 어린 아들 라도다마스를 대신해 삼촌 크레온이 섭정에 올라 에테오클레스의 장례식만 성대하게 치러 준다.

그는 폴리네이케스를 외국 군대를 이끌고 조국을 공격한 반역자로 규정해 매장을 불허하지만 안티고네는 죽은 가족의 매장은 신들이 부여한 신성한 의무라며 오빠의 시신에 모래를 뿌려 장례의식을 한다. 크레온이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하자 그의 아들이자 안티고네의 약혼자인 하이몬이 변호한다.

크레온이 요지부동이자 산 채로 매장된 안티고네는 아사 대신 목을 매는 걸 선택하고, 하이몬 역시 그녀의 뒤를 따른다. 감독은 크리스티앙만 빼면 주인공들의 이름을 신화에서 그대로 따왔다. 그런데 신화의 크레온은 악역이지만 크리스티앙은 다르다. 안티고네는 카빌리아의 봄 축제를 거론한다.

그녀는 카빌리아 베르베르인이고, 하이몬은 전형적인 퀘백 백인이다. 알제리도 퀘백도 프랑스 문화권이지만 핏줄, 식민지와 개척지란 ‘출신성분’에서 큰 차이가 난다. 백인 경찰의 무차별적 흑인 사살이란 시대착오적이고 천인공노할 사건이 버젓이 발생되고도 그냥 무마되는 데 대한 감독의 분노.

크리스티앙은 하이몬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은 법정 사건에 개입하면 안 된다”며 애써 외면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하지만 경찰이 비무장한 에테오클레스를 이유 없이 총살한 데 대해선 정치인이라면 마땅히 나서야 하지 않을까? 만약 법에 문제 있다면 개정하든, 제정하든 해야 정치인이다.

민주주의 시대라지만 빈부의 계급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래서 그 층위에 따른 차별이 만연된 사실상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이 시대에 대한 감독의 문제의식은 시퀀스 곳곳에 담겨있다. 구치소에 수용된 안티고네는 수감자들의 인권유린에 대해서도 할 말을 다 하는 실천주의로써 동료들을 고무한다.

법정에서 판사와 검사의 서슬 퍼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안티고네는 “오빠를 도우라고 내 심장이 시켰다. 난 언제든 법을 어길 것”이라고 포효한다. 이 영화는 묻는다. 법은 만인을 위해 평등하게 입법됐는지. 에테오클레스가 미국 밀입국을 위해 타는 버스에 오이디푸스를 써 붙인 감독의 유머 센스!

안티고네는 신(종교)적 계명과 인간적 규준(법) 사이의 갈등을 뜻한다. 인간에겐 현실적인 법이 명석판명하고 공통적인 기준이지만 시대(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란 의미다. 그런데 이 인식론적 대결은 외형일 뿐 사실은 가족애, 평등, 박애, 희생이라는 본능적 순수이성이 이 영화의 참 주제다.

SNS로 안티고네가 유명해지는 과정이 마치 힙합 뮤직비디오, 다큐멘터리, 스마트폰 화면 같은 형식으로 삽입됐다. 다큐 출신답다. 마지막 시퀀스에서의 어린 시절의 자신 같은 소녀를 바라보는 안티코네의 시선이 내내 가슴 시린 여운으로 남는다. 올해 여성영화 중 앞줄에 놓이기에 손색이 없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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