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18일 개봉될 영화 ‘마리 퀴리’는 2008년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애니메이션 ‘페르셰폴리스’의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의 작품으로 몽환적이면서도 현사실적이다. 마리는 1867년 3개국이 분할 지배하던 폴란드의 제정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바르샤바에서 태어나 압정을 겪으며 성장했다.

10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17살 때부터 가정교사 등을 하며 독학했지만 당시 폴란드와 독일에서는 여자가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기에 1891년 파리 소르본 대학에 유학했다. 수학, 물리학을 전공해 수석 졸업했을 만큼 천재성을 보였지만 타협을 모르는 성격 탓에 리프먼 교수의 연구실에서 쫓겨난다.

그녀는 우연히 파리 물리화학 학교의 실험주임인 피에르와 자꾸 마주치고, 피에르는 자신의 연구실을 보여주며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다. 1895년 피에르와 결혼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그녀는 남편과 함께 방사능 연구에 전념해 보헤미아에서 산출된 광물 피치블렌드에서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한다.

노벨상을 수상해 유명 인사가 되는 등 승승장구하지만 피에르가 마차 사고로 죽는다. 마리는 연구를 계속해 남편 후임으로 여성으로서 최초로 소르본대학 교수가 된다. 외롭던 그녀는 피에르의 동료였던 폴과 부적절한 관계가 된다. 언론이 이를 물어뜯고, 동네 주민들은 그녀의 집 앞에서 시위를 한다.

피에르와의 사이에서 이렌과 이브 두 딸을 낳았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다 자란 이렌은 엄마에게 전쟁의 참상을 알리며 함께 부상자 치료에 나서자고 제안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팝콘무비를 원하는 관객은 피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지적인 사치를 누리고픈 영화광이라면 ‘무조건’이다.

감독이 마리라는 진보적 개혁 성향의 천재를 통해 웅변하고자 하는 내용은 크게 4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먼저 여성주의. 당시 폴란드는 동부 유럽의 패권을 다투는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의 분할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여전히 여성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마리가 다툴 이유다.

그녀는 남편의 조력자나 내조자로서가 아닌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었다. 또 남편 사후 유부남인 폴과 사귄 것조차 여성도 주도적으로 섹스를 즐길 권리가 있다는 걸 널리 알리기 위함이었음을 부각시킨다. 피에르는 “참는 법을 배워”라고 충고하지만 결국 “당신은 이기적이지 않다”라고 인정한다.

그는 “다만 자기 것 빼앗기는 걸 싫어할 뿐”이라며 “당신을 내 여자라 생각하지 않고 내 삶과 함께 가는 사람”으로 인정할 것이라며 프러포즈한다. 언니의 “넌 냉소적”이라는 지적에 마리는 “아니, 현실적”이라고 대응한다. 그러니 리프먼에게 사과하라는 언니의 타협안을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다.

다음은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 피에르는 엉뚱하게도 갑자기 마리를 교령회에 데려간다. 철저한 주체적 현실주의자인 마리는 이 상황에 당황하지만 나중에 불륜 탓에 자신에게 비난이 쏟아지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강령회장에 간다. 한 회원으로부터 영매자가 이미 사망했다는 말을 듣고 절망한다.

인류가 문명과 문화를 갖게 된 이래 모든 논쟁과 이론의 첫째 화두는 관념론과 유물론의 충돌이었다. 퀴리 부부는 과학자다. 그들은 “한때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과학을 했다”라고 비아냥거릴 정도로 첨단을 지향하는 과학자다. 그러나 과학자 이전에 사람인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마리는 강령회 회원에게 “나 좀 도와줘. 남편이 나타나게 도와줘”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그녀는 “과학적인 삶과 사적인 삶의 구분은 어려운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관념론과 유물론 그 어떤 한 쪽의 손을 결코 들어줄 수 없다며 칸트를 바라본다. 합리론과 경험론의 절충 혹은 결합으로 간다.

부부가 최첨단 과학자이면서 교령회와 밀접한 건 과학과 신학은 대립할 게 아니라 서로 화합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플라톤은 윤회론을 주창한 신비주의자 피타고라스를 계승해 영혼불멸설을 주창했고, 기독교는 그 플라톤의 영향을 받았다. 고대 그리스의 최초의 철학자 탈레스는 과학자이기도 했다.

다수의 유물론자-대표적으로 마르크스-들은 무신론자다. 유물론의 기초가 된 원자론의 창시자 데모크리토스 역시 철저한 유물론자다. 심지어 그는 영혼을 원자들의 모임으로, 사유를 물리적인 과정으로 여겼다. 과학자-대표적으로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거의 대부분 무신론자다.

과학적으로 봤을 때 신은 없고, 천지창조론은 창작이니 종교 대신 차라리 라이프니츠에서 종교만 뺀 채 예정조화론이나 아예 ‘세상에 우연은 없다. 엄격한 결정론에 의해 미리 정해져 있다’는 데모크리토스를 믿는 게 속 편하다. 그렇지만 동화가 없이 교과서만 가득한 삶은 너무 메마르지 않을까?

다음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 역시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 같은 이원론의 연장인데 방사능이 대표적이다. 부부는 인류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방사능을 발견했다. 하지만 둘은 그로 인해 죽음이 앞당겨졌다.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1961년 네바다 원폭 실험,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인서트다.

결국 결론은 자연과 잘 타협하라는 자연주의다. “자연의 비밀을 아는 게 득이 될 것인가?”라는 대사는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에 대한 회의주의와 낙관주의의 충돌 지점이다. 집시의 춤 같은 ‘불의 춤’ 등 다양한 인서트와 Samaritaine(사마리아 여인)이란 미장센 등 다크 판타지 요소들이 매우 인상깊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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