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영화 ‘버든: 세상을 바꾸는 힘’(앤드류 헤클러 감독)은 1996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로렌스 카운티가 배경이지만 백인 경찰이 무고한 흑인에게 거리낌 없이 총질을 해대는 현재와 별다를 바 없다. 영화 ‘그린 북’(2019)에서 보듯 남부는 노예 제도를 고집했던, 인종차별이 굉장히 심한 지역이다.

청년 버든은 가전제품 대여업체에서 일하면서 탐이 이끄는 KKK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고아인 버든에게 탐은 아버지와 다름없는 인물. 버든은 대여료가 밀린 집에 가전제품을 회수하러 갔다 초등학생 아들 프랭클린과 사는 싱글맘 주디를 보고 첫눈에 반해 자신이 관련된 자동차 경주대회에 초대한다.

프랭클린이 자동차 경주대회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것. KKK단은 오래된 극장을 개조해 KKK단 박물관을 만들어 인종차별 의식을 고취한다. 침례교회 목사 케네디는 인종차별을 하는 백인들에 폭력으로 맞서는 일부 흑인들과 달리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를 예로 들어 비폭력으로 맞설 것을 호소한다.

탐은 ‘흑인 척결’에 앞장선 공로로 박물관을 버든의 명의로 바꿔준다. 버든은 탐의 도움으로 주디의 밀린 집세를 갚아준 뒤 동거를 시작한다. 케네디가 지지자들과 함께 박물관 앞에서 평화적 시위를 계속하고, 바쁘게 차로 이동하던 마이크는 제 차 앞에서 자신을 놀리는 한 흑인을 실컷 두들겨 팬다.

프랭클린의 친구는 흑인 클래런스의 아들 두에인. 버든은 프랭클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낚시에 두에인을 데려가는데 그게 흑인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된다. 일이 끝나자 프랭클린을 데리러 박물관에 간 주디는 탐이 아들에게 칼을 쥐여주고 흑인을 죽이라고 교육하는 걸 보고 경악한다.

주디와 버든의 갈등은 점점 더 깊어지고 결국 주디는 자신과 KKK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선언한다. 버든은 탐에게 탈퇴를 선언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에 탐은 손을 써 그들을 임대주택에서 쫓겨나게 만들고, 주디는 해고되게 한다. 졸지에 노숙자가 되자 버든은 구걸을 하다가 케네디를 만나는데.

먼저 아직도 이런 영화가 제작되고, 거기에 매우 공감하는 이 현실이 답답할 것이다. 꼭 봐야 할 이유다. 비무장 흑인을 백인 경찰이 사살했다는 뉴스를 접하기 때문이다. 남부 특유의 서던 록부터 재즈와 블루스가 넘실대니 귀가 즐겁긴 하지만 내용은 마치 우리의 ‘태극기 VS 촛불’ 같아 답답하다.

KKK단과 흑인들이 무력충돌하면 경찰은 일단 모두 연행한다. 하지만 백인은 불기소 원칙이다. 공권력, 특히 경찰과 KKK단이 한패이기 때문이다. KKK단은 ‘순수 혈통과 조국과 하느님을 위해 싸운다’는 구호를 외친다. 도대체 어느 혈통이 순수한 걸까?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시작된 걸 애써 외면한다.

본래 하느님은 유대인과 무슬림의 신이다. 미국은 영국인(스코틀랜드-아일랜드 포함)과 프랑스인을 중심으로 한 유럽 백인 이민자들이 중심이 돼 개척하고 건국한 건 맞지만 유색인종과 인디언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는 다민족, 다인종 국가다. ‘엉큼한 중국인 조심해’라는 대사까지 한숨만 자아낸다.

요즘 사랑제일교회 등 일부 교회의 비상식적인 집단행동으로 인해 기독교의 이미지가 많이 훼손되긴 했지만 예수의 가르침을 바울과 그 뒤의 후손들이 잘 가다듬은 신약의 교리는 선하고 이성적이며 정의로운 건 사실이다. 케네디는 위클리프이고, 마르틴 루터이자, 장 칼뱅이다. 혁신적인 종교가다.

그는 과격파 신도들이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논리를 전개하자 “그건 구약”이라며 새 시대에는 새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고 설교한다. 그는 자신에게 총구를 겨눴고, 수많은 흑인을 괴롭힌 버든을 제 집에 묵게 하고 취업도 알선해 준다. 그럼에도 버든은 깜둥이라는 단어를 뱉어낸다.

케네디는 아들에게 “나도 그놈을 내쫓아버리고 싶다. 인간으로선”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렇게 못 하는 건 버든과 주디가 헤어지게 만들 경우 더 이상 설교를 못 할 것 같기 때문이야”라며 흐느낀다. 그는 번뇌하는 버든에게 “정녕 KKK를 떠나고 싶다면 과거의 행적을 인정해야 해”라고 충고한다.

KKK단이던 시절 입으로만 하느님을 읊조리며 아무 생각 없이 십자가에 불을 붙였던 버든은 드디어 침례를 받은 뒤 신도들 앞에서 과거의 자신의 악행을 고백하면서 잘못을 인정한다. 심지어 법정에서조차. 젊은 시절 방탕했고, 마니교에 심취했지만 결국 하느님의 교회로 온 성 아우구스티누스다.

그는 ‘악이란 감정에 제압된 이성, 혹은 무절제한 삶의 결과가 아니라 신에게서 멀어짐으로써 무능력해진 데서 기인한다’고 했다. KKK에 있을 때의 버든이 딱 그랬다. 선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경제적인 혜택을 준 탐의 도그마에 무조건적으로 충성하는 이교적 광신도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탐은 사이비종교 교주고, KKK단에서 가장 악랄했던 버든이 주디를 만남으로써 자신과 마주친 걸 ‘하느님의 계시’라고 받아들인 케네디는 진정한 신교 지도자다. 버든은 어릴 때 아빠랑 사냥을 갔다 만난 사슴에게 매료됐다. 그 마음을 알아준 사슴이 자신에게 다가왔지만 아빠 총에 죽었다.

주디와 갈등하던 때 숲속에서 그는 다가온 사슴에게 돌을 던져 쫓는다. 사냥 이후 친구가 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주디와 케네디를 통해 깨달았다. 그동안 탐의 개로서 살아온 과거를 완전히 청산하고 모든 생명체의 친구가 되기로. 교회 이름이 뉴 비기닝이다. 25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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