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창희의 건강한 삶을 위해] 오스트리아 비엔나 자연사 박물관에 가면 빌렌도르프 근교에서 발견된 2만 년 된 비너스상을 볼 수 있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고 불리는 11cm 크기의 인간 형상인데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비만한 모습이다. 짧고 통통한 다리에 부풀어 터질듯한 배와 수유에 적합한 풍만한 가슴을 가지고 있다. 엉덩이 역시 풍요를 누린 여성답게 커다랗게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인형의 머리는 굵은 실타래를 얹은 듯 단순하게 표현되어 이목구비는 확인할 수 없다.

먹을 게 없어 굶어 죽는 판에 얼굴이 뭔 소용이 있겠나. 오직 지방만이 흘러넘칠 듯 생동감 있게 묘사된 작은 인형은 그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정확히 알려 준다. 운 좋게 잘 먹어 지방이 넘치는 풍만한 몸을 가지면 최고라는 생각이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에 그대로 담겨있다.

상류층인 탓에 남보다 많이 먹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빈민 계층과 차별화된 몸을 가지기 위해 줄기차게 먹어대는 것이 권력의 상징인시대가 지겹도록 인류사에 길게 이어졌다. 동시에 인간은 노동력과 종족 보존의 핵심적 가치이므로 당시의 시대 상황은 여성에게 다산을 요구했다. 전쟁의 공포와 기아의 비참함 속에서 종족의 명맥을 이어나가기 위해 위대한 비만(?)을 달성한 여성의 몸이 부러움의 대상이 된 것이다.

잘 먹은 탓에 출산과 수유에 적합한 뚱뚱한 몸을 지닌 여성이 대우를 받음과 동시에 최고 미인의 자리에 등극한 이유다. 불과 몇백 년 전 까지도 마찬가지였다. 17세기에도 비만한 여성의 몸은 높은 지위와 더불어 여전히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그려지고 있다. 인류의 빈곤이 해결되지 않았다면 여전히 뚱뚱한 몸이 미의 기준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 여성의 절반은 미인의 칭호를 들을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일이 없다.

여성의 몸이 미인답기 위해선 시대의 요구를 반영하는 희소성의 원칙을 반드시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어 동그란 얼굴에 오동통한 몸을 가진 여성이 환영을 받았다. 몸이 넉넉하여 마음마저 후덕해 보이는 여성상이 맏며느리감이라 하여 대우받던 시절이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전쟁과 흉년 등으로 황폐해진 상황에서 부와 권력을 갖지 못한 자의 넉넉한 하루 3끼니는 요원한 꿈에 불과했다.

가난한 아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질 때 돈 있는 집 아이들은 미국에서 조달된 구호물자인 분유를 먹고 포동포동 살이 올랐다. 통통하게 살집이 올라 부티가 나는 아이들을 내세워 자사 분유의 광고 효과를 노린 우량아 선발대회는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었다. 이제 시대는 변해 맏며느리감이라는 표현은 미혼 여성의 하루를 망치기에 충분한 단어가 되었으며 소아 비만은 조기에 바로 잡아야 할 위협이 되었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빠르게 진행된 근대화는 상류층의 먹어대는 과시욕을 잠재우기 시작했다. 사회적 계층의 다양화와 물질의 풍요는 잘 먹을 수 있는 계층의 숫자를 무서운 속도로 불려 나갔고 잔뜩 굶주렸던 인류의 체중계는 급격히 올라갔다. 이를 지켜본 상류층은 그들과 차별된 식사를 통해 미식을 추구하며 날씬한 몸이 되어가기 시작한다.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 생선 등 몸에 유용한 것을 접하기 어려운 소외계층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며 열량이 높은 음식을 추구하게 되는데 그들이 할 일은 값싼 인스턴트 식품이나 패스트 푸드를 선택하는 것이다. 열량은 높고 영양가는 낮은 형편없는 식사로는 비만을 예방하기 어렵다. 비만은 정신과 신체를 피폐하게 만드는 무서운 질병임이 틀림없다.

이제 시대는 변해 뚱뚱한 몸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 아니라 빈곤의 대명사로 여겨지고 있다. 시대는 날씬하고 약간 마른듯한 여성의 몸을 선호하기 시작했는데 새로이 설정된 미의 기준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인류가 다시 굶주리는 시절로 돌아가지 않는 한 말이다.

▲ 박창희 다이어트 명강사

[다이어트 명강사 박창희]
한양대학교 체육학 학사 및 석사(동대학원 박사과정 중)
건강 및 다이어트 칼럼니스트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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