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이 많은 석모도에서 바라 본 섬 중의 섬_교동도

[미디어파인 칼럼=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서울에서 강화를 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명동성당 앞에서 차 타고 목멱산 터널을 들어간다. 목멱산도 소설이 지나니 울창한 나무숲이 낙엽으로 바뀌는 찰나다. 동트기 전 캄캄한 터널 속 등 하나에 의지하려니 더욱 어둡고 길다. 한남대교를 지나니 한강에 햇살이 너울거린다. 동호대교에 해가 떠오르고, 차들은 넓고 긴 올림픽 도로를 달린다. 만약 다리가 없었다면 배를 타고 한강 따라 느릿느릿 갔을까? 공산 소악루와 행주산성이 차창밖에 우뚝 서 있다. 그 옛날 적을 무찌르던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낚싯배를 보니 겸재 정선의 행호관어도가 겹쳐 보이는 잔잔한 한강이다. 강화 염하(鹽河)를 통해 바닷물이 양화진까지 들어오니 한강이 바다인지 바다가 한강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당시 행주산성 앞 한강 이름도 행호(杏湖)다. 창릉천 따라 행주산성 앞 낚싯배가 가득 한 큰 호수가 행호였다.

강화도 가는 길

행주산성을 빠르게 벗어나니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교하(交河)다. 임진강의 차오르는 물도 오두산성에서 지켜보며 적의 움직임을 살피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관미성으로도 불리었으니, 한강과 임진강은 강화로 가는 주요 관문이다. 지금도 파주와 김포 그리고 강화의 강물은 하나다. 초지진을 따라 올라오는 염하, 예성강의 물이 강화만을 넘어 한강 하류에 모인다. 이곳의 물은 과연 강물인가 바닷물인가? 강화도가 섬인지 육지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 이유다. 100여 년 전 찻길이 아닌 물길로 왔을 때 더욱 분간할 수 없었다. 신기하다. 이젠 올림픽 도로를 타고 김포 통진 지나 월곶에 다다른다. 김포 월곶에서 강화대교를 지나면 강화 갑곶이다.

강화도는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이 만난다

▲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이 만나는 강화도

다리를 건너면 고려산과 혈구산이 저 멀리 보인다. 이정표가 다리를 건너니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이곳은 강가에 꽃들이 만발한 강화(江華)다. 강화도는 섬이다. 강화는 1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5번째 큰 섬이다. 제주도와 거제도 진도와 남해도 다음으로 크다. 강화도는 역사 속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섬이었다. 강화도는 기원전 단군을 모시는 제단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의 군사적 요충지요, 고려시대 몽골과 39년간 항몽의 시간에 강화도성 안 궁궐과 도성 밖 홍릉도 강화에 있었다. 고려궁지는 흔적만 있을뿐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높고 아늑한 양지녘이다. 어디에 있을까?

한강 따라 김포 통진을 지나 염하 위 강화대교를 건너면 고려 궁궐터가 보인다. 다리가 없었던 고려시대에 예성강 따라 배를 타고 하구로 내려오면 강화도였다. 개경처럼 강화에서 북산 140m를 송악산(松嶽山)으로 이름 지으며, 남산 222m를 마주보고 궁과 궐을 짓고, 정문에 승평문(昇平門)이라 현판을 걸었다. 종각까지 만들었다. 1232년 고려 고종때 행궁과 수도를 옮긴 후 39년을 몽골에 버티며, 16년 간 팔만대장경도 만들어 민심을 모았다. 팔만대장경은 이후 가야산 해인사의 국보가 되었던 곳이다. 한마디로 지붕없는 박물관이 강화도다. 송악산에 있던 팔만대장경은 오자 하나 탈자 하나 없이 만들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가야산 합천 해인사까지 어떻게 옮겼을까? 강화대교와 초지대교가 없었던 때 한양도성에서 강화도성까지 어떻게 올 수 있었는지 궁금증을 찾아 나선다.

한양도성에서 강화도성까지 어떻게 갔을까

800년 전 개성과 강화도를 그려본다. 아니 500여 년 전 배를 타고 한양도성 밖 무계정사(武溪精舍) 안평대군의 귀양길을 떠올려본다. 한양도성 안 인왕산 수성동계곡 비해당에서 함께한 23명의 대신들 그리고 도성 밖 무계동 무계정사에서 몽유도원도를 그리며 꿈꾼 이상세계는 무엇일까? 수양대군에 의해 안평대군은 강화도까지 배를 타고 급류가 심한 강화도로 유배된다. 또다시 섬 속에 섬 교동도까지 이배 되어 8일만에 사약을 받는다. 왕과 왕족의 귀양처가 강화도요, 물길이 험하고 탈출이 어려운 섬이 교동도다. 연산군은 중종반정에 의해, 임해군과 능창대군은 광해군에 의해, 광해군은 인조반정에 의해 강화도로 교동도로 한강을 따라 조류에 밀리고 밀려 강화도까지 왔다.

강화도는 행궁지요, 교동도는 왕과 왕족의 유배지다

▲ 강화도성 안 고려궁터에서 강연하는 저자_최철호 소장

강화도는 가시적으로는 한양도성에서 배를 타고 내려오면 가까우나, 심리적으로는 멀고 먼 섬이다. 또한 돌아갈 수 없는 귀양지다. 한번 가면 돌아갈 수 없는 땅이요, 육지 밖 섬이었다. 역사 속 피난처 행궁지요, 살아서 돌아갈 수 없는 위리안치 귀양지다. 또한 임진왜란때 마니산 사고에서 전주사고로 조선왕조실록의 보관처요, 정족산 사고로 유명한 전등사가 있는 비밀공간이 강화도다. 반정 후 인조는 한양도성을 버리고 여러번 행궁한다. 반정 1년도 안되어 이괄의 난에 공산성으로, 정묘호란에 후금을 피해 강화도성으로 몸을 숨긴다. 형제의 맹약은 병자호란으로 강화도성이 함락되자 남한산성으로 행궁지를 급선회한다.

역사는 강물처럼 흐른다

역사는 돌고 또 강물처럼 흐른다. 정조의 고모이자 사도세자의 여동생인 화완공주가 강화도로 유배되고, 강화도령은 용흥궁에서 한강을 거슬러 한양도성의 주인이 되니 그가 철종이다. 하지만 고종때 병인양요로 초지진에서 전투가 이루어지니 역시 강화도다. 신미양요로 광성보에서 운요호사건으로 초지진과 영종진에서 전투 후 강화도조약을 맺은 곳도 바로 이곳이다. 그 당시에는 다리가 없었다. 초지진에서 염하를 거슬러 통진까지 전투를 한곳이 군사도시 강화요, 역사 도시 강화도다. 5진 7보 54돈대가 있어 가장 최전방에서 외적들과 첨예한 전투가 있었던 역사적 도시다. 가슴 아프지만 역사 속 현장이다.

수많은 시간속에 수많은 전투가 있었던 섬이 이제는 섬이 아니다. 강화는 한강과 임진강, 서해와 예성강이 인접한 곳이다. 김포와 강화가 1970년 다리가 놓여진 후 우리나라 최초로 섬 지위를 상실한 섬 같은 육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인돌과 민족의 영산이며, 명산인 마니산이 자리한 도시다. 하늘에 제를 지내는 472m 마니산을 간직한 역사 속 도시다. 또한 성화를 채화하고 곳곳이 유적과 유물로 가득한 문화도시다.

지붕없는 역사박물관 강화,
한반도의 목구멍 역할을 할 도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찰 전등사가 있는 문화도시 강화,
배를 타고 갈까요, 다리 건너 갈까요?

▲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서 :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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