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세스 그레이엄-스미스는 영화 ‘링컨: 뱀파이어 헌터’의 원작 소설 ‘뱀파이어 헌터, 에이브러험 링컨’의 원작자이자 영화 ‘다크 섀도우’의 각본가이기도 하다. 또 제인 오스틴의 고전 ‘오만과 편견’에서 영감을 얻어 ‘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를 썼는데 버 스티어스 감독이 동명으로 영화화했다(2016).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으로 인해 죽은 자들이 좀비로 되살아나 사람들의 뇌를 먹고사는 19세기 영국. 베넷 가문의 제인, 리즈, 키티, 샬럿, 리디아 등 다섯 딸들은 소림사에서 무술을 익힌 뒤 좀비 퇴치에 앞장서는데 엄마는 돈 많은 집안에 시집보내기 위해 혈안이 돼있고 아버지는 방관한다.

엄마는 특히 제인과 리즈의 결혼을 위해 파티에 동석하고, 거기서 좀비 퇴치로 돈과 명예를 거머쥔 친구 사이인 다아시 대령과 빙리 대위를 만난다. 빙리는 제인에게 첫눈에 반해 춤을 청한다. 다아시와 리즈는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만 오만과 편견을 가진 건방진 다아시에게 리즈는 자존심을 세운다.

빙리는 파티에 제인을 초대하고 자매들과 엄마까지 참석한다. 엄마는 이제 빙리를 확실하게 사로잡았다는 생각을 서슴없이 떠들어대고 이를 우연히 다아시가 듣는다. 사촌 콜린스 목사가 청혼하지만 리즈는 거절하고 엄마는 크게 화를 낸다. 리즈는 파티에서 우연히 만난 위컴 중위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는 제 아버지가 다아시 집안의 집사였는데 일찍 죽어 다아시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 유산 상속까지 약속받았지만 다아시는 아버지가 전염병으로 죽자 그 유산을 다른 데로 빼돌렸다고, 또 빙리에게 제인을 이간질했다고 폭로한다. 다아시가 청혼하자 더욱 분노한 리즈는 그와 격하게 싸운다.

위컴은 꼭 보여줄 곳이 있다며 리즈를 성 나사로 교회로 데려가는데 전 신도가 좀비다. 위컴은 첫 감염된 후 돼지 뇌만 먹어 인성을 유지하는 안전한 ‘사람’이라며 리즈를 안심시킨 뒤 다아시의 숙모이자 전설적인 전사인 캐서린을 만나 그들과 타협할 것을 제안하지만 다아시에게 무시당하는데.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제국주의를 팽창해 근대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의 하나인 대영 제국을 형성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조건에 의한 결혼을 강요당하는 성적인 편견과 억압에 시달리던 가부장적인 열악한 환경에서 살았다. 다섯 자매가 전사인 건 그에 대한 풍자.

영국에서 가장 강하면서도 최고 갑부로 캐서린을 설정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동양 무술을 배우는데 부를 좇는 사람은 일본을, 지혜를 좇는 사람은 중국을 배운다. 빙리의 집에서 리즈가 ‘손자병법’과 소림사로써 다아시와 일본 추종자에게 한방 먹이는 시퀀스는 왠지 통쾌하다.

확실히 영국인과 일본인은 상대방 나라에 대해 동상이몽인 듯하다. 일본은 영국처럼 차량이 우측통행을 한다. 하지만 영국은 본차이나를 자랑한다. 한때 홍콩 등 중국 땅을 접수했던 영국에겐 중국이 만만하고 친근하다. 리즈는 “소림사에서 불편을 견디는 법을 배웠다”라며 중국의 사상을 신봉한다.

베넷이 딸들을 괜찮은 남자와 만나게 하려고 몸부림치는 이유는 별로 크지 않은 집이지만 그나마 딸들에게 지켜주기 위함이다. 여자에겐 상속이 안 되는 악법 때문. 베넷 부인은 “춤은 교양”이라고 칭송하지만 다아시는 “좀비도 춤을 출 줄 안다”며 기성세대의 편견과 성적인 차별에 대해 공격한다.

파티장은 유흥을 즐기는 장소가 아니라 돈 많은 신랑감에게 어필하기 위한 인간시장 같다. 기독교적 기반에서 스토리를 펼쳐나가는 건 확실하다. 그러나 반드시 포교적인 건 아니다. 여자들은 한결같지만 남자들에겐 각자의 반전이 있기에 페미니즘을 떠나 여성 주도 영화로서의 값어치는 분명하다.

다아시는 오만한 미남이다. 용기만큼이나 뛰어난 전투력을 지녀 좀비와의 전쟁에서 매번 승리한 영웅이고, 그만큼 돈도 벌었다. 웬만한 여자가 눈에 들어올 리 없고, 사랑이나 결혼보다는 영국을 구한다는 대의명분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는 데서 위버멘시와 ‘권력에의 의지’의 니체 색채가 매우 짙다.

편견이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인간의 양면성을 대표적으로 그려낸 캐릭터이기에 그럼에도 당시의 남성 우월주의에 반대했고 여권에 관심이 있었다.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 차있던 그가 변하게 된 계기는 당당하고 매력투성이인 리즈에 대한 사랑을 인정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그녀에게 감동했기 때문.

그처럼 군인으로서 큰돈을 번 빙리는 의외로 나약한 인물이고, 한없이 친절하고 선한 인물인 줄 알았던 위컴은 의외의 반전의 주인공이다. 나사로는 예수가 부활시켜준 ‘절친’인데 가난한 그와 달리 부자였던 동명이인도 있었다. 그는 죽어서 지옥에 간다. 좀비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악한 인격의 비유.

유대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영향을 끼쳤지만 이스라엘만의 종교다. 고대 유대인은 스토아철학의 계율을 지키면서도 노예에게 친절하지 말 것을 명령했고 딸을 큰 근심의 근원으로 지목할 만큼 성적 편견이 심했다. 자식들과 놀지 말고 복종하게 만들라고 했다. 베넷 부인은 그에 대한 노골적 조롱.

콜린스는 “모든 성직자는 결혼해서 교구의 본이 돼야 한다. 더 이상 정절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라고 외치는 재미있는 캐릭터. ‘내로남불’에 대한 비판. 캐서린은 전사로서의 용기와 여자로서의 지조는 다르지 않다는 의미. 마지막 시퀀스는 세상은 지옥이란 의미일까? 비유와 풍자가 넘치는 B급 영화다.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