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성경에 인간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있다. 조물주가 인간을 흙으로 만들었다는 믿음 때문에 그런 말이 생긴듯하다. 우리나라에는 고려말 나옹선사가 지었다는 부운(浮雲)’이라는 시에 “空手來 空手去 是人生(공수래 공수거 시인생 :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이것이 인생이다)”란 말이 있다. 참으로 멋이 있는데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양하다.

애기가 태어나서 울음을 터트리는 것도 혹자는 좋은 세상으로 와서 기뻐서 운다고 하고 혹자는 이 힘겨운 세상에 와서 슬퍼서 운다는 것이다. 아무튼 인간은 태어나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든 혹은 원치않는 삶을 살든 한 평생을 살다가 저 세상으로 가야 한다.

목표한 바를 이루고 자기를 이어갈 2세까지 남겼다면 그래도 후회는 없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회한이 남는 한 평생이 될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서 영생을 누리는 사람은 없다. 생물학자들은 동물이든 식물이든 성장기간의 6배를 산다고 한다. 인간이 20살까지 성장한다면 120세까지는 살아야 하는데 몸관리를 아무리 잘해도 100세를 넘기기는 힘들다.

수명은 인간마다 다 다르기에 “태어나는 순서는 있어도 저 세상으로 들어가는 순서는 없다”란 말이있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삶을 마감하고 들어가는 집이 바로 무덤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윤회를 생각하던 안하던 새로운 시작이라 보고 어떤 이는 영원한 종착의 안식이라 본다.

그렇지만 죽음을 받아들이고 매장을 하는 것도 다 다르다. 특히 불교 문화권에서는 화장을 하고 뼈가루를 산이나 강에 뿌리게 되는데 유교 문화권에서는 시신을 가능한 훼손되지 않도록 땅에 매장을 한다. 유목 민족들은 독수리 등이 시체를 먹도록 ‘풍장’을 한다. 내세를 위해서 그렇다고 한다. 서양이나 중국의 일부 지역, 그리고 동남아 일부에서는 지하 혹은 지하동굴이나 절벽에 관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고 마치 책장에 책을 놓듯이 관을 위치시킨다. 이 외에도 매장의 풍습은 매우 많다.

대학교때 들었던 재미있는 일화가 떠오른다. 서양에서는 매장을 해도 볼록하게 봉분을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외국에서 초청된 서양의 교수가 우리나라의 묘지를 보고는 한국에서는 관을 눞히지 않고 똑바로 세워서 매장을 하느냐고 물었다한다. 그는 관을 세워 뭍기에 봉분이 필요했다고 받아들인 것이다.

인간들은 무덤을 바라보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언젠가는 내가 들어가야 할 집이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듯이 바라본다. 아무튼 영혼은 모르겠지만 태어난 육신이 소멸되어 사라지는 정화의 집이기도 하다.

인간의 이승에서 종착역인 ‘무덤(tomb, grave, sepulture)’이란 말은 어디에서 유래가 되었을까?

‘tomb’은 고대 그리스어 ‘tumbos(무덤, sepulchral mound)’가 라틴어 ‘tumba’로 변형이 되면서 최종 ‘tomb’으로 정착을 했다.

‘grave’는 인도-유럽 공통 기어 ‘ghrābh-(파다, 긁다)’가 게르만 조어 ‘grabaną(파다)’가 되었다. 이 단어가 고대 영어로 유입이 되어서 ‘grafan(파다, 무덤, 새기다)’으로 변형이 되었고 다시 중세 영어 ‘graven’으로 되었다가 최종 ‘grave’로 정착을 하였다.

‘sepulture’는 라틴어 ‘sepulcrum(무덤, 매장터)’이 고대 프랑스어로 유입되어 ‘sepulcre’로 되었고 이 단어가 중세 영어 ‘sepulcre’로 차용되었다가 ‘sepulture’로 최종 정착이 되었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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