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프랑스 개봉 이후 13년여 만인 오는 24일 개봉되는 안나 가발다 원작의 ‘함께 있을 수 있다면’(클로드 베리 감독)은 크리스마스에 딱 어울리는 휴먼 로맨스다. 곧 27살이 되는 카미유는 화가 지망생이지만 생활비를 위해 청소 서비스 회사에서 일하며 다가구 주택의 꼭대기 다락방 같은 데서 산다.

같은 건물의 펜트하우스 같은 넓은 집을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필리베르는 식당 셰프인 친구 프랑크와 함께 살며 엽서 가게를 운영한다. 어느 날 작은 친절을 베풂으로써 필리베르와 친해진 카미유는 그에게 제 집에서 소소한 식사를 대접하고, 필리베르 역시 답례로 제 집에서 식사를 대접한다.

카미유는 어릴 때 부모가 이혼했는데 아버지는 안 보고 엄마는 가끔 만나지만 사이가 좋진 않다.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사생아로 태어난 프랑크는 엄마에게조차 버림받은 뒤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애완동물을 키우며 사는 외할머니가 갑자기 쓰러져 수술을 받자 프랑크는 요양원으로 보낸다.

지나치게 말라 허약해진 카미유는 심한 독감에 걸려 차가운 집안에서 신음하고, 마침 그녀를 만나러 온 필리베르가 발견해 제 집으로 데려온다. 그녀를 본 프랑크는 왠지 쌀쌀맞게 대한다. 아침 8시부터 자정까지 6일간 일하는데 휴일인 월요일마저도 외할머니 면회 때문에 못 쉬어 신경이 예민한 것.

필리베르는 소심한 탓에 말을 더듬지만 연극배우가 꿈이었다. 그는 가게에 손님으로 찾아온 상드린에 첫눈에 반하고, 그녀의 소개로 극단에 들어가 말더듬을 고치고 연기를 배운다. 필리베르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카미유와 프랑크가 마주치는 시간은 많아지고 갈등은 더욱더 깊어진다.

‘베티 블루 37.2’(장 자끄 베넥스 감독, 1986)의 하드고어적이고 하드코어적인 요소와 비극적인 결말을 지운 아름다운 로맨스와 훈훈한 인생 드라마라고 보면 쉽겠다. 카미유와 필리베르는 첫 만남 때 각자 사무실과 박물관에서 일한다고 거짓말을 했다가 이내 솔직하게 밝힌다. 꿈을 안 버렸다는 얘기다.

다만 프랑크는 다르다.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게 싫지만 현실 때문에 탈출을 못 하고, 그 대신 뭇 여성들과의 원 나이트 스탠딩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살아가는 그에게 꿈은 사치다. 외할머니의 사랑 외에는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못 겪었기 때문에 사랑을 하는 법도, 사랑을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는 꽤 실력 있는 셰프지만 정작 집에선 인스턴트식품만 먹는다. 무미건조한 정서에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을 하는 그는 십중팔구 기계론자였을 것이다. 필리베르는 용기는 없지만 꿈은 버리지 않고 살아간다. 스스로 노력하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면 바꿀 수도, 이길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는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 카미유를 보고 앙리 2세의 애첩 디안 드 푸아티에를 닮았다고 미모를 칭찬한다. 하지만 정작 교사 자격증 취득 시험에는 3번이나 낙방했다. 시험 전날에 매우 긴장해 잠을 못 자는 등 컨디션을 망쳤기 때문. 그러나 마음만큼은 따뜻한 인간미가 넘치고 친절하다.

카미유가 그를 식사에 초대한 이유가 그 큰 건물 안의 적막함을 못 견뎠기 때문이라고 말하자 그 역시 옆집 사람과 인사도 안 하고 사는 삭막한 현대의 삶이 견디기 힘들었다고 맞장구를 친다. 프랑크와 갈등이 더 심해져 카미유가 제 집으로 돌아갈 결심을 하는데 프랑크는 자신이 나가겠다고 한다.

“네가 나가면 필리베르가 상처를 입잖아”라며. 프랑크는 까칠했지만 사실 본성은 따뜻하고, 배려심이 강했었다. 프랑크가 여자와 농탕질을 하며 록 음악으로 소음 공해를 일으키자 카미유는 오디오를 창밖으로 던진다. 다음날 카미유가 새 오디오를 주자 프랑크 역시 외할머니가 뜬 목도리를 건넨다.

그렇게 두 사람은 요양원을 찾아가고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결국 그들은 한 침대에 드는 사이가 된다. 그러나 동상이몽이었다. 프랑크가 “미래를 위해”라고 건배사를 하자 카미유는 “현재를 위해”라고 다른 말을 한다. 그녀가 “섹스는 해도 사랑엔 빠지지 말자”고 말하자 프랑크의 표정이 공허해진다.

자유로운 성생활에 익숙했던 그는 외할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주는 카미유에게서 그토록 원망했던 엄마의 빈자리를 본 것이다. 이제야 사랑이란 것이 뭔가, 왜 사랑을 해야 하는가를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잠자리만 하자는 데 경악해 다시 예전처럼 마음의 문을 닫는다. 사랑은 참 어렵다.

카미유도 마찬가지. 부모의 사랑을 못 받고 자랐으며 빠듯한 경제 상황 탓에 사랑은커녕 그토록 꿈꾸던 화가에의 첫걸음을 떼지도 못한 채 그저 취미 수준의 습작만 해왔을 따름인 그녀이기에 프랑크에게 빠질수록 두려움도 더해갔다. 가진 게 없기에 사랑마저 다치면 치명적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삶이 퍽퍽해 포기하는 게 점점 늘어나는 요즘 대한민국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진지하고 따뜻한 드라마다. 왜 가족이 필요한지 강요하지 않고 종이에 물 스며들 듯 절로 느끼게 만드는 마취제다. 그 드라마를 더욱 드라마틱하게 만들어 주는 장치는 감미로운 왈츠와 미뉴에트부터 강렬한 록 음악.

소용돌이치는 예술, 배려심, 이타심 등의 분류는 감수성을 호소하던 장 자크 루소의 낭만주의고, 말라깽이였던 카미유가 인간다운 삶을 접한 뒤 육감적으로 변하는 건 ‘몸을 개체의 원초적 지각의 선험적 근거로서 발견한’ 메를로-퐁티의 실존주의다. 끝부분의 카미유의 “아기 낳고 싶어”는 희망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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