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졸업>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 칼럼=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영화는 벤자민이 공항 무빙워크에 서있는 모습으로 시작하는데, 마치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옮겨지는 부품처럼 보인다. 대학을 졸업하고 집으로 돌아온 벤자민은 시간과 돈을 낭비하며 지낸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 친구 사업가는 플라스틱 산업의 전망이 좋으니 잘 생각해 보라는 조언을 한다. 플라스틱은 외력에 의해 이런저런 모습으로 바뀔 수 있는 물체다. 실제로 벤자민은 자발성이 없는 플라스틱처럼 유부녀의 유혹에 넘어간다.

로빈슨 부인은 출생과 죽음의 양면성을 가진 ‘모성 콤플렉스’의 상징이다. 이런 콤플렉스는 흔히 마초(macho) 적인 아버지와 수동-공격적인 어머니의 아들에게서 발견된다. 그 아버지는 너무 강하여 아들이 닮을 수도 맞설 수도 없는 상대다. 반면 그 어머니는 희생적으로 아들을 키우지만, 모호한 의사소통으로 아들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이렇게 자란 아들은 예민한 감수성과 동시에 소영웅 심리를 갖는다. 또 남자들 집단에 소속되는 것을 불편해하고 오히려 여자들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자기 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 어떤 목표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살아가기 쉽다. 영화는 이런 벤자민을 수족관을 배경으로 비춰준다.

벤자민은 로빈슨 부부의 딸 일레인에게 반하지만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일레인은 벤자민의 프러포즈를 기다리다가 실망한다. 일레인은 부모가 권하는 대로 좋은 직업을 가진 남자와 결혼하기로 한다. 벤자민은 일레인의 결혼식장에 난입하여 일레인을 데리고 나와 달아난다.

▲ 영화 <졸업> 스틸 이미지

불륜 상대의 딸과 결혼하려는 막장 스토리지만, 심리학적으로 살펴보자. 일레인은 모성 콤플렉스의 화신인 로빈슨 부인의 딸이다. 사실 일레인도 벤자민만큼이나 명확한 주관이 없는, 예쁘고 젊은 여자일 뿐이다. 이는 모성 콤플렉스를 가진 남자는 그 아니마(anima) 역시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미성숙한 소녀는 남들의 말에 쉽게 넘어간다. 착해서 사랑받으며 잘 살 거라고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받던 여성이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들 부부도 한때는 서로를 사랑했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심리 내적 상태는 전쟁놀이나 소꿉장난을 재미있어하는 어린아이라서 현실 생활은 제대로 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망 나온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는다. 그리고 잠시 후 나란히 앞을 바라본다.

이 둘은 과연 끝까지 행복하게 잘 살까?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벤자민이 모성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또 미성숙한 아니마를 발전시켜야 한다. 일상에서 주어지는 과제들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 그 답이다. 매일 수고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서로를 위로하는 일 말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졸업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한다. 영화의 제목 ‘졸업’은 주인공 벤자민이 대학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때가 아니라, 아버지가 사 준 고급차 대신 버스에 타서 일레인과 웃음을 거두고 정면을 보는 때를 의미한다.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