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이 세상에는 전쟁과 질병이 아니라도 자살을 통해서 손 쉽게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 사회의 다른 한편에서는 굶주리거나 병에 걸렸거나 다쳤을지라도 살기 위해서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도 많다. 그 많큼 삶이란 소중한 것이라서 모든 것을 투자해서라도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누구는 ‘생과 사는 종이 한장의 차이’라고 말을 한다. 물론 옳은 말일 수도 있다. 또 누구는 죽음이란 항상 곁에 있기에 준비를 하고 있어야 된다고 말을 한다. 죽음도 여러 죽음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죽음은 우리가 나이가 듦으로써 몸의 생물학적 기능이 다하여 멈추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종교를 믿던 안믿던 우리는 죽으면 영혼은 육체와 분리되어서 이승에 머물거나 저승으로 간다고 믿는다. 아무튼 이 고달팠던 세상을 등지고 저 편안하고 행복한 생을 누릴 수 있는 곳을 저승으로 본다. 하지만 종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이 있어서 행복을 누리는 것도 선을 행한 자들의 몫이라고 본다.

인간은 생전에 명예와 권력을 잡기 위하여 해서는 않되는 일도 서슴없이 저지른다. ‘권력은 10년을 넘기지 못한다’라는 명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하다 믿으려 애를 쓴다. 하지만 조물주는 공평하다. 이 세상의 많은 것을 소유했던 소유하지 못했던 간에 사람이 죽어서 저 세상으로 갈 때는 아무것도 지닐 수 없게 만들었다. 즉 인간사의 모든 것을 버리거나 정화시키고 남은 최후의 것만 들어오도록 허락을 한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만 골라 먹고 발버둥을 친다고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아무튼 탄생도 인생의 한 과정이지만 죽음도 하나의 과정이기에 욕심을 부릴 필요없이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각자의 인생을 되돌아 보면서 반성을 해볼 일이다.

삶에서 인간을 가장 두렵고도 겸허하게 만드는 죽음이란 말은 어디에서 왔을까?

‘죽음(death)’은 인도-유럽 공통기어의 어근 ‘dheu-(과정, 행위, 죽음)’/ ‘dhówtus’ 가 게르만 조어 ‘dauþaz’/ ‘dauþuz’로 유입이 되었다. 이 말이 고대 영어 ‘deað’/ ‘dēaþ’로 차용되어서 중세 영어 ‘deeth’가 되었다가 최종 ‘death’로 정착을 하였다.

동사형인 ‘die(죽다)’는 인도-유럽 공통기어 ‘dhew-(죽다)’가 게르만 조어 ‘dawjaną(죽다)’로 유입이 되었고 이 말이 고대 영어 ‘dīġan/ dīeġan(죽다)’과 고 노르드어 ‘deyja(죽다)로 정착했다. 이 단어가 중세 영어 ‘dien/ deien’으로 변형이 되었다가 최종 ‘die’로 정착을 했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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