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로버트 드 니로라고 하면 ‘성난 황소’와 ‘택시 드라이버’가 먼저 떠오르지만 ‘코미디의 왕’(1983)도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들 콤비의 마스터피스다. 스타의 사인받는 게 전부인 34살 무직자 펍킨(로버트 드 니로)은 스스로 타고난 코미디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배우 지망생이다.

자신의 이름을 건 전국 대상 방송 쇼를 진행하는 제리 랭포드(제리 루이스)는 최고의 코미디언이다. 어느 날 퇴근하려다가 갑자기 승용차에 난입한 마샤 때문에 곤란을 겪는데 펍킨이 수습해 준다. 펍킨은 제 잠재력을 떠들며 데뷔의 기회를 달라고 하고 제리는 무심결에 전화 한 번 하라고 말한다.

루퍼트는 짝사랑하는 리타가 일하는 바에 가 15년 만에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그렇게 식당에 마주 앉는다. 그는 제리가 자신을 도와주기로 했다며 곧 성공할 테니 결혼해 달라고 프러포즈하지만 그녀는 “변한 게 없다"며 심드렁할 뿐이다. 루퍼트는 제리에게 계속 전화하지만 연결이 안 된다.

애간장이 탄 루퍼트는 제리의 회사를 찾아가고 비서 캐시를 만나 자신의 쇼를 담은 데모 테이프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녀의 답은 “잠재력은 있지만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사실상 퇴짜. 과대망상인지 허세인지 루퍼트는 휴가를 보내겠다며 리타를 데리고 제리의 별장에 당당히 들어간다.

당황한 집사의 전화를 받고 나타난 제리는 망신을 주며 쫓아낸다. 루퍼트는 자신 이상으로 제리를 스토킹하는 마샤와 공모해 제리를 납치해 그녀의 집에 억류한 뒤 제작자인 버트에게 전화를 걸게 한다. 그는 버트에게 제리의 목숨을 담보로 자신을 출연시키라고 협박하고 드디어 카메라 앞에 서는데.

홀어머니와 단둘이 사는 루퍼트는 지하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꾸며놓고 하루 종일 쇼를 만들며 스타 등신대와 대화를 나눈다. 영화는 현실인지 그의 환상인지 헷갈릴 만큼 두 가지 현상을 교차 편집한다. 특히 그와 리타가 천연덕스럽게 제리의 별장에 짐을 풀고 집안을 둘러보는 시퀀스는 그럴듯하다.

루퍼트는 특별한 능력을 지녔거나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위대한 인물이라고 착각하는 과대망상증 환자다. “수줍음을 극복하라. 연예계는 일반 사회와 다르다”라는 제리의 조언을 한쪽 귀로 흘리면서 자신은 타고난 코미디언이지만 기회를 못 잡았을 따름이라고 자신감을 피력하는 게 전형적이다.

그런 이들은 자신의 착각에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능력 이외의 무모한 행동을 저지르기 마련이다. 루퍼트가 제리에게 호기롭게 밥을 사겠다고 한다든가, 은밀한 시간을 갖겠다며 야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나 와인병을 따더니 결국 성관계를 갖자며 제리의 결박을 풀어주는 마샤의 돌발 행동이 그렇다.

그들은 결국 자신의 패배가 드러나면 열등감과 불안감에 따른 보상심리로 상식 이하의 행동을 보이는 게 일반적이다. 납치가 그렇다. 루퍼트의 이런 증상은 사회적 성공에 대한 압박의 결과물이다. 재산도, 스펙도, 특별한 기술도 없는 그로선 TV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연기가 매우 쉬워 보였을 것이다.

현실 시퀀스 사이에 삽입된 환상의 인서트에서 그는 제리보다 더 유명한 스타다. 이른바 나르시시즘. 그는 리타에게 자랑스럽게 자신이 스타들에게 받은 사인북을 보여준다. 그중 가장 난해한 사인을 보여주며 “유명한 스타일수록 갈겨쓴다. 누구 것 같냐"고 묻는다. 그건 바로 자신의 사인이었다.

나르시스는 자아도취가 지나치게 심해 결국 물속에 빠졌지만 영리한 스콜세지는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는 결과를 유도한다. 그건 현대 연예 산업에 얼마나 거품이 끼었는지, 아니면 대중이 얼마나 연예 스타를 신처럼 떠받드는지에 대한 조소, 경멸, 계도다. 또 못 가진 자에 대한 희망의 복음이다.

그래서 루퍼트의 입을 빌려 “대중을 우습게 여기는 스타들은 비뚤어진 냉소주의자.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비아냥거린다. “너무 오래 기다려서 뭘 기다렸는지 잊어버리는 사람도 있다”는 루퍼트의 자조는 이 사회가 평등, 균등, 공평무사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기회만큼은 공정해야 하지 않을까?

루퍼트와 마샤의 부정적인 조현병 증세의 이면을 보면 ‘감각적 확실성에서 출발해 절대적인 앎에 이르기까지의 의식의 발전 과정’이라는 헤겔의 현상학과 더불어 ‘의식에 나타난 현상을 사변적 구성을 떠나 충실히 포착하고, 그 본질을 직관에 의해 파악한다’는 헤겔의 현상학이 다분히 엿보인다.

제리는 연예계의 생리 운운하며 사변적 시각에서 접근할 것을 충고하지만 마샤는 본능에 의해, 루퍼트는 선험적이고 직관적인 본유성에 의해 신념을 펼치고 의지를 행동한다. 그건 후반부의 제리의 “나도 결점투성이인 인간에 불과하다”라는 방백이 증명한다. 결국 루퍼트는 방송 출연에 성공한다.

그러나 그는 만천하에 알려진 유명 연예인 납치·살해 협박범이다. 여기서 감독은 루퍼트의 행위에 대해 인식론의 숙제를 던진다. 결국 피해를 본 사람은 고작 몇 시간 공포에 떤 제리 한 명 외엔 없다. 호아킨 피닉스의 신들린 연기가 빛나는 ‘조커’가 거론될 때마다 비견되는 이유가 있는 작품이다.

임팩트 있는 연기를 하는 건 베테랑이라면 외려 쉽다. 하지만 표면상으로 커다란 감정의 출렁임 없이 잔잔하게 내면의 소용돌이를 연기하는 게 제일 어렵다는 면에서 드 니로의 연기 솜씨 하나만큼은 평생 회자될 작품이다. “평생 바보로 살기보단 하루라도 왕이 되고 싶었다"는 정말 눈물겨운 대사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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