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김권제의 생활어원 및 상식] 이집트하면 최근 영화 등의 부각 때문에 클레오파트라가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파라오’이다. 파라오란 누구인가? 파라오는 고대 이집트의 정치적, 종교적 절대자로 '두 땅의 지배자(Lord of the Two Lands)'와 '모든 신전의 장(High Priest of Every Temple)'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다. 두 땅은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를 가리키는 말로 파라오는 이들 지역의 모든 권한을 갖는 동시에 두 지역을 외부로부터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모든 신전의 장’은 파라오가 신의 대리인이란 뜻으로 그는 모든 신전의 건립 및 제사를 주관했다. 그렇기 때문에 파라오는 왕권과 성직자인 신권을 모두 가진 최고의 절대자였다. 파라오는 5대 왕조부터 ‘호루스’, ‘황금의 호루스’, ‘두 여신의 보호자’, ‘상하 이집트의 왕’, ‘라신의 아들’ 등 5개의 이름을 가졌는데 이들은 5개의 직위를 의미한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 왕조는 B.C 3,500년경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 메네스 왕의 초기 왕조에서 시작하여 B.C 30년까지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로 이어졌다. B.C 30년경 알렉산더 대왕의 발아래 놓이기까지 약 3,500년 정도의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파라오는 제18왕조의 12대 파라오인 투탕카멘이다. 19세에 급사했다고 알려진 그는 통치적으로는 잘 알려진 업적을 쌓지는 못했지만 화려한 그의 황금가면 때문에 가장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파라오가 전지전능한 힘이있는 신이라 여긴 이집트인들은 그를 하늘의 신 호루스와 태양신인 라와 아몬 및 아톤과 동일시했다. 그래서 사후에도 파라오는 신과 동일시되어 호루스의 아버지이며 망자들의 신인 오시리스로 변형되었다. 그의 왕관에 부착된 코브라 모양의 우라에우스는 전쟁에서 적에게 불을 뿜으며 파라오는 수천 명의 적을 몰살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전지전능하기에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대자연의 생산력을 지배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또한 최고 권위를 지닌 나라의 질서 수호자이며 국토의 대부분의 주인으로서 토지의 사용법을 알려주고 국민과 신하의 모든 것을 책임지며 통치했다.

파라오는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았는데 모든 사람들은 파라오를 신성한 왕으로 추대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그래서 파라오 근처에서는 바닦에 납작 엎드렸고 왕이 죽으면 내세에서도 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도록 성대한 장례를 치렀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가 행한 업적에 따라서 비판을 받고 권력투쟁의 희생양으로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 왕의 칭호인 파라오(pharaoh)는 원래 왕궁을 지칭하는 ‘큰 집(Great House)’을 뜻하는 말이었으나 2중간기 동안의 Hyksos의 외국 통치 후 신왕조인 ThutmoseⅢ(B.C 1479~1425)의 통치기간 중에 왕이나 ‘Ra’신의 아들에 대한 존칭이 되었다. 모든 파라오의 아버지인 이집트 태양신 ‘Ra’는 지구의 피라미드 형태의 산에서 창조되었으며 모든 다른 신을 창조했다고 여겨진다.

파라오는 12왕조 이후 왕궁인 큰집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람에게는 사용되지 않았으나 신왕국시대(제18왕조~B.C 1539~1292)에는 이집트 왕과 동의어로 쓰이며 통치자를 경건하게 언급할 때 사용되었다. 제22왕조(B.C 945경~730경) 때는 이미 왕에 대한 존경을 나타내는 형용어구로 사용되었다. 그후 파라오는 고대 이집트의 모든 왕을 일컫는 총칭으로 바뀌었다. B.C 5세기에는 왕의 이름 앞에 파라오가 타이틀로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고대 이집트의 절대자 왕의 칭호인 ‘파라오(pharaoh)’의 어원은 어디에서 왔을까?

‘파라오(pharaoh)’는 왕궁 등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pr(집)’와 ’aa(기둥)’의 합성어인 이집트어 ‘페르오(peraa)’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말이 고대 그리스어 ‘phara’가 되면서 다시 라틴어로 유입이 되었고 영어권으로 와서 ‘Pharaoh’가 되었다.

[김권제 칼럼니스트]
고려대학교 영어교육학과 졸업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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