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몽키즈’, 자연과 시간을 보호하자는 결정론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1.01.06l수정2021.01.06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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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서기 2035년. 1996년 말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해 인류의 99%가 멸망한 이후 나머지 생존자들은 지상에서의 생활을 포기한 채 지하 세계에서 살고, 지상은 동물들의 세상이 됐다. 감옥에 수감된 제임스(브루스 윌리스)는 곤충 샘플 체취 임무를 띠고 지상에 갔다 ‘12 몽키즈’란 단체의 마크를 본다.

그는 과거로 시간 여행을 떠나 바이러스 전파를 막아 인류가 지상으로 나갈 기회를 준다면 사면해 주겠다는 과학자들의 제안을 받아 1996년으로 보내지지만 오작동으로 1990년에 떨어진다. 경찰과 시비가 붙은 그는 정신 병원에 수감되고 아버지가 바이러스 박사인 제프리(브래드 피트)를 만난다.

제임스의 담당 의사인 캐서린(매들린 스토우)은 그를 치료하면서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을 느낀다. 미래로 소환된 제임스는 과학자들이 제시한 자료를 통해 제프리가 12 몽키즈라는 단체의 주요 인물임을 알아내고 다시 1996년으로 보내지지만 실수로 제1차 세계대전의 프랑스 전쟁터에 떨어진다.

위기의 순간 1996년으로 이동된 제임스는 캐서린을 만나고 그를 믿지 않았던 그녀는 그의 다리에 박힌 총알이 1910년대의 것임을 확인하고 믿게 된다. 경찰은 제임스가 캐서린을 납치했다고 판단해 추격하고, 두 사람은 제프리가 12 몽키즈의 리더고 동물 보호를 핑계로 음모를 꾸민다고 생각하는데.

영화 ‘12 몽키즈’(테리 길리엄 감독, 1995)는 브루스 윌리스와 브래드 피트가 등장하지만 액션이 아닌, SF다. 어쩌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인류가 고통을 받는 가운데 환경 보호와 동물 사랑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만 가는 이 즈음에 교훈적 테제와 명제를 던져주는 문제의식이 꽤 강한 작품이다.

제임스는 권위에 대항한 죄로 2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장기수다. 그는 자신이 10살쯤으로 되돌아간 시점에서 부모와 함께 공항을 찾았다 총격 사건을 목격하는 꿈을 자주 꾼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고 어디서 본 듯한 여인이 등장한다. 사건의 원인도 배경도 알 수 없다.

그의 시대는 인류 멸종의 위기를 맞았다. 설령 가까스로 생존하더라도 바이러스가 창궐한 지상으로 나갈 수 없기에 지하에서의 생활이 몇 세대가 흐르다 보면 아마 외형도, 생활 방식도 모두 바뀌어 부정적인 신인류로 재편될 것이다. 인류는 큰 위기를 겪었지만 독재와 압제가 심해졌다는 암시.

제프리는 부유한 환경에서 나고 자랐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아버지는 스타다. 하지만 그는 동물실험에 앞장섰고, 동물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그것을 위해선 인류가 멸종돼야 한다는 종말론을 지녔다. 그런 아버지를 신처럼 떠받들며 살았던 제프리는 동물보호단체와 교류하면서 인식의 눈을 뜬다.

아버지는 인류에게는 물론 동물에게조차 적이었다는 걸. 그래서 그는 내면의 광기를 주체하지 못하게 된다. 캐서린은 ‘바른생활’의 전형이었다. 모든 면에서 모범적이었지만 정신병자(?)인 제임스에게 납치돼 스톡홀름 신드롬에 홀린 듯 그에게 동화되더니 결국 그의 횡설수설이 사실이었음을 깨닫는다.

외려 헷갈리는 건 제임스. 그는 계속해서 바이러스의 창궐을 알리며 이를 막지 못하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고 캐서린을 설득하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과거를 바꾸기 힘들다는 것을 깨달아갈수록 캐서린의 ‘꿈에서 깨라’는 주문에 홀리게 된다. 제프리의 아버지의 조수는 가장 극단적인 종말론자다.

그는 캐서린에게 카산드라 콤플렉스를 지녔다고 비꼬지만 사실 그 심리는 제임스에게서 강하게 드러난다. 미래를 뻔히 아는 그는 과거의 사람들에게 계속 경고하고 계몽하지만 자신이 미친놈 취급을 받자 되레 그들의 말을 믿고 자신이 아는 경험을 부정하려 든다. 살짝 므두셀라 증후군도 보인다.

한때 제임스와 제프리가 강제 억류됐던 정신병원에서 제프리는 “여기 진짜 정신병자는 별로 없다”며 철창을 보고 “외부인도 똑같이 미치광이인데 도대체 누굴 보호한다는 건지”라며 혀를 끌끌 찬다. 또 “미쳤다는 건 다수의 개념”이라며 “세상이 뒤틀렸기 때문”이라고 비뚤어져가는 세상을 비꼰다.

미래의 세계에서 방호복을 입고 지상으로 올라간 제임스는 건물 꼭대기에서 포효하는 사자를 본다. 인류는 문명이란 이름 하에 자연을 훼손하고 그곳에 웅장한 건물을 건립했지만 결국 라이프니츠의 단자 같은 바이러스에 의해 멸종 위기에 처한 뒤 주인인 양 뽐냈던 ‘정복지’를 동물에게 빼앗겼다.

과학자들에게 지상의 곤충 샘플을 가져오란 명을 받은 제임스는 그러나 그럴 상황이 안 되자 거미를 입으로 삼킨다. 이 그로테스크한 시퀀스는 자연을 사랑하자는 물아일체론이다. 물질과 자신, 객관과 주관, 육체와 정신 등의 이분법이 아닌 모든 자연과 인류가 하나가 된다는, 자연과의 합일이다.

제프리는 계속해서 한탄한다. “사람은 아무것도 안 하고 전부 기계가 일한다. 제멜바이스가 19세기에 바이러스를 발견하지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병균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고. 그러자 변화한 캐서린은 상관에게 “정신의학은 신흥종교”라고 쓴소리를 내뱉는다. 사이비 종교의 위험은 도처에 깔렸다.

12 몽키즈는 12 제자고 종말론자들은 적그리스도다. 제임스의 꿈이 밝혀질 즈음 감독의 평행우주론을 부인한 단일우주론이 재확인된다. 시간여행이 가능해질 경우 과거를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일우주에서 그럴 경우 그 이후의 시간은 어그러진다. 결국 섭리를 거역할 수 없다는 결정론!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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