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매드맥스> 스틸 이미지

[미디어파인 칼럼=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핵 전쟁으로 생존이 불가능해진 22세기.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독재자 임모탄이 지배하는 시타델에서 비참한 삶을 연명하고 있다. 임모탄은 몇 명의 젊은 여성들을 출산의 도구로 독차지하면서, 자신을 숭배하는 워보이(war boy)들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통치하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 퓨리오사는 그런 워보이들의 총사령관이다.

물은 생명 자체라고 할 수 있으며 석유는 에너지의 근원이다. 또한 미래를 이어갈 새 생명은 여성의 몸을 통해서만 태어날 수 있다. 이처럼 중요한 물과 석유, 그리고 여성을 임모탄이 독차지하고 있는 상황은 전통적 가부장제 가족과 사회 문화를 상징한다.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명분으로 성립된 가부장제는 인간을 도구화한다. 가부장적 전제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가치는 생식과 위안의 기능으로 평가된다. 그렇지 못한 여성은 값싼 노동 수단이 되거나 빈민으로 살게 된다.​

희생을 강요당하는 것은 여성 만이 아니다. 남성도 개성을 상실한 채 집단의 구성원으로 살게 된다. 워보이들의 민머리와 벗은 상체, 그리고 회칠한 얼굴은 집단성과 몰개성을 상징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신들이 도구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의 비논리와 야만성을 오히려 일종의 특권처럼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 영화 <매드맥스> 스틸 이미지

이들이 부끄러운 줄 모르고 즐겨 쓰는 말들은 다음과 같다. “남들에게 다 물어봐,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우리는 그렇게 해 왔어, 그러니까 너도 그렇게 해, 시키는 대로 하면 되잖아, 웬 말이 그리 많아”, “그래도 나나 되니까 이 정도인 줄 알아, 남들은 더 심해”, “내가 열받은 건 다 너 때문이야,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건드려, 겁 대가리 없이…”

퓨리오사는 현재의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 여성성을 버리고 남성 집단 문화에 순응하며 살아왔다. 어쩌면 그녀는 주어진 역할을 하고 그에 맞는 대접을 받으면서 편하게 살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임모탄의 통치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여, 임모탄의 여성들과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

영화를 가부장적 가정 상황으로 보면, 임모탄은 퓨리오사의 욕심 많고 늙은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그 아버지는 딸이 자신에게 순종하는 한 모든 것을 제공해 주지만, 자신의 뜻에서 벗어나는 것은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다. 조신한 복장과 행동거지, 좋은 학교와 직장, 그리고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결혼, 그리고 현모양처로 이어지는 삶… 그 아버지는 딸을 이렇게 살게 하는 것이 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고 책임이라고 믿으며, 딸에게는 자신이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고 가르친다.

▲ 영화 <매드맥스> 스틸 이미지

그렇게 주어진 소위 제도권 안에서 살면서 행복해할 여성들도 분명히 있다. 물론 이들도 어느 순간에는 작은 반항을 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인격적 결단이 동반되지 않은 짧은 반발은 별 대수롭지 않는 사춘기 현상처럼 쉽게 진압되고 만다. 또 이런 일탈적 시도를 한 여성들은 모처럼의 모험을 철없던 시절의 실수로 자인하고 기존 질서 가치관을 더욱 내면화하면서 스스로를 길들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낡은 틀을 벗어나기를 결심하는 여성들도 있다. 걸을 수 있는 아이에게 유모차, 아빠만큼 다리가 길어졌는데 세발자전거, 날개가 돋아 높게 날고 싶은데도 두 발로 걸어야 하는 ‘앙시앵 레짐’(ancien régime, 구 제도)처럼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획일적으로 강요된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고 싶은 본능의 발현, 이것이 ‘자아 분화’ 또는 ‘개성화 과정’의 시작이다.​

▲ 영화 <매드맥스> 스틸 이미지

이들이 자아 독립을 얻기 위해서 맨 처음 해야 할 일은 ‘여성성’의 획득이다. 퓨리오사가 임모탄의 여성들과 함께 탈출한 것은 그동안 억눌렸던 자신의 여성성의 회복과 동시에 성적 도구로 전락한 여성 동료에 대한 연대를 의미한다. 하지만 기득 세력은 남성 중심의 권력 질서를 어지럽히는 짓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때로는 달콤한 회유로, 때로는 엄청난 폭력으로 이들의 결단을 무력화시키려 한다.

퓨리오사는 맥스라는 남자의 도움을 얻어 임모탄 부대의 추격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퓨리오사가 동료 여성과 함께 찾아가려 했던 곳은 ‘어머니의 땅’이다. 그러나 그곳은 늙은 여성들 몇 명만 살고 있는, 이미 황폐화되어 더 이상 살 수 없는 곳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기존의 불평등과 억압에서는 벗어났지만, 출산 능력 즉 생명력을 잃은 존재들이다.

익숙하고 편안한 삶을 벗어나려 했던 그녀의 결심이 고작 예정된 죽음을 향한 것이었던가? 목숨을 건 탈출에는 성공했으나 갈 곳이 없어진 상황에서 퓨리오사는 낙담한다.

▲ 영화 <매드맥스> 스틸 이미지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여성은 동년배뿐 아니라 이전 세대의 여성들과의 연대 과정이 필요하다. 남성적 전제 질서의 비인간성과 여성 일반에 대한 역사와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의 결단이 옳은 것이었음을 확인하며, 자존감을 세워야 한다. 여기까지도 결코 쉽지 않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 후에 삶의 방향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면 소위 불순 세력의 단순한 반발로 마무리될 위기를 맞게 된다.​

여성에게 있어서 여성성이란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것이지만, 삶에서 겪게 되는 많은 과제들을 해결하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여성성은, 모든 자연이 그렇듯 옳거나 그른, 혹은 좋거나 나쁜 것과 같은 가치나 판단 기준이 아니라 그저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해방과 독립을 찾아 나선 이들은 여성들만의 왕국, 즉 예정된 불모지로 향할 것인가? 모든 인간이 존중받으며 평화롭게 사는 세상은 정말 철없는 환상이었을까?(다음편에 계속...)

▲ 박수룡 라온부부가족상담센터 원장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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