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윌리스와 호모 마스크스 [유진모 칼럼]

유진모l승인2021.01.14l수정2021.01.1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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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10 미니츠 곤' 스틸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할리우드 톱스타 브루스 윌리스(65)는 최근 미국 LA의 한 대형 약국에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채 입장했다. 이를 본 약국 직원은 그에게 목에 걸고 있는 스카프로 입과 코를 가려 줄 것을 요청했으나 그는 이를 거부했고, 결국 쫓겨났다.

그러나 윌리스는 곧바로 이에 대해 “잘못된 판단이었다. 모두 마스크를 씁시다. 그리고 안전하게 지냅시다”라고 사과했다고 14일(한국 시각) 미국 다수의 언론이 보도했다. 비록 시작은 큰 잘못이었지만 이내 그걸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서 이런 사소한 부주의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커다란 위험과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렸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윌리스의 사례는 분명히 많은 사람들에게 타인을 생각하는 사회적 배려심에 대한 계몽의 계기로 작용할 듯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 한 해는 그야말로 전 세계가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만 해도 수많은 소상공인들이 수입의 대폭 감소로 폐업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거나 폐업을 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극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터. 그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대인관계가 무너져 허무감과 공허감이 쌓이는 탓에 삶의 수준이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

결국 이를 해결할 첫 번째 길은 모든 나라의 전 국민이 자신을 위한 이기심과 타인을 위한 이타심을 동시에 발휘해 일단 마스크가 최선의 백신임을 되새기며 일상생활에서 마스크 착용을 최대화해야 하는 것이다. 방역 당국의 지침과 계도를 숙지하고 잘 따름으로써 하루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는 데 모든 사람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협조해야 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당면 과제라고 하겠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기심과 무지를 마치 자신만의 특장점인 양 착각한 채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일부 교회와 요양 시설, 그리고 사적인 모임 등에서 드러난 것처럼 ‘내로남불’ 심리로 ‘자기들만의 리그’를 가졌다가 집단 감염이라는 참담한 결과로써 방역 당국과 일선 의료진의 노력, 그리고 다수의 희생에 찬물을 끼얹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

그런 맥락에서 미국과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 어디에서나 이름과 얼굴이 쉽게 통용되는 슈퍼스타 윌리스의 이번 결례와 사과는 아주 좋은 반면교사의 사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사소한 듯하지만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큰 실수를 저질렀고, 금세 이를 시인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교훈적 메시지를 전달했으므로 마치 예방주사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줬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유명 연예인의 대국민적 교육 효과는 매우 크다.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청소년 이하의 연령층엔 절대적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이번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에서 드러났듯 일부 정치인에 대한 ‘광신도’가 없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그들의 수준을 감안할 때 외려 아직 정신적 성숙기가 현재진행형인 연예인 숭배자에게 깨우침의 여지가 더 큰 듯해 보인다.

이는 많은 청소년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영화, 드라마, 음악 등 연예 콘텐츠의 패션과 트렌드 등을 흉내내는 현실을 통해 충분하게 입증된다. 그런데 긍정적인 건 그런 ‘따라 하기’가 일시적이어서 ‘성년’이 되면 자신의 개성과 정체성을 되찾는다는 데 근거가 있다.

그런데 이번 윌리스의 사례는 청소년 등 젊은 계층은 물론 나이 든 노년층에게까지 교육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먼저 젊은이들은 윌리스 정도로 유명하고 부유하며 사회적으로 오피니언 리더 계층인 데다 나이까지 지긋한 사람도 사소한 경계심 해제에서 의외로 크나큰 실수를 할 수 있다는 데서 경각심을 새삼스럽게 무장할 수 있다. “심각한 상황에서라면 저런 사람도 매사에 조심성을 장착하지 않고 ‘정신줄’을 놓을 수 있으니 나는 더 조심해야지”라고 정신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

중장년층이나 나이 지긋한 노인에게는 동등한 시선에서의 반성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윌리스 또래의, 혹은 그보다 더 나이 많은 나는 혹시 저런 타인들에게 누가 될 수 있는, 나잇값도 제대로 못 하는 실수를 저지르지나 않았을까”라며 가까운 과거를 회상하는 반성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것.

물론 ‘나 몰라라’라는 심정으로 클럽을 드나들며 ‘부비부비’를 일삼는 젊은이나, 술에 취해 버스 기사를 폭행한 뒤 ‘기억이 안 난다’며 발뺌하는 여자 사회 초년생이나, 식당에서 마스크도 안 쓴 채 고성방가를 해댄 나이 지긋한 ‘민폐남’ 등은 이런 훈계에는 귀에 본유적 마개를 끼웠을 가능성이 높을 테지만.

공자는 ‘過而不改, 是謂過矣(과이불개, 시위과의)’(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 게 더 잘못)라고 말했다. 예수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라고 준엄하게 외쳤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칸트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라는 인간 이성에 대한 3대 질문을 던지고 ‘순수이성비판’ 등의 3대 비판서를 통해 해답을 제시했다. 동시대의 드니 디드로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아는 것이 힘’이라는 명제를 발전시켜 “아는 것은 단순히 진리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연에 대한 인간의 힘을 증대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것”이라는 입장으로 발전시켜 지식을 기술과 산업에 결합시킴으로써 삶의 질의 향상을 꾀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실수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철학계를 지배하는 플라톤조차 “태어나는 모든 아이를 부모로부터 분리시켜 공동 ‘사육장’에서 키우자”고 주장했을 정도니. 중요한 건 아는 것, 즉 공자, 예수, 칸트, 디드로에게서 보듯 깨닫는 것이다.

김윤석의 감독 데뷔작 ‘미성년’은 여고생인 주리와 윤아를 가리키는 동시에 그들 각자의 부모인 대원와 미희, 즉 나이만 먹었지 정신연령은 아직 어린 이들을 가리키는 중의적 의미다. 나이로 서열 등의 가치관을 가리는 유이한 나라가 중국과 대한민국이다. 태어나자마자 한 살 먹는 유일한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그것의 원조인 중국마저도 버린 악습을. 그런 것들은 케케묵은 오래전의 잘못된 관습이다. 나이를 먹는다고 다 어른이 되는 건 아니다.

윌리스는 1955년 3월 19일에 태어났다. 66살 생일을 앞두고 마스크 사건으로 그는 비로소 어른이 된 것이다. 독단적인 ‘논변’은 결국 ‘논리적 궤변’일 수밖에 없기에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나이라는, 혹은 어른이라는 독사(억견적 믿음) 혹은 도그마(교의) 혹은 독트린(교설)은 결국 에피스테메(참 지식)로 가는 하나의 과정일 뿐 종착역은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호모 마스크스化 역시 그 과정 중의 하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유진모  ybacch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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