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소오강호’(1990)는 무려 ‘대취협’의 후진취안, ‘동방불패’와 ‘천녀유혼’의 청샤오둥, ‘스턴트우먼’의 쉬안화가 감독하고 쉬커가 제작했으니 중국 무협 영화 중 마스터피스다. 명나라 13대 왕 신종 때. 황궁의 장서를 보관하고 있는 내승운고에 괴한이 침입해 최고의 무공이 수록된 규화보전을 훔친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질까 두려운 관리 책임자인 동창의 내시 총관은 심복 천호(장쉐여우)를 앞세워 최근 사직한 황궁의 금위무사 임진남의 집 염포방을 포위한다. 이때 사부 악불군의 명을 받은 화산파 수제자 영호충(쉬관제)이 사매 영산(입퉁)과 포위망을 뚫고 진남을 찾아와 이 사건에 휘말린다.

동창의 움직임을 라이벌 서창이 눈치챌 걸 우려한 총관은 은밀하게 고수인 오악맹주 좌냉선을 염포방에 투입하고, 그는 진남과 전 가족을 몰살한다. 아들 평지의 죽음을 모르는 진남은 죽기 전 호충에게 규화보전의 행방을 평지에게 전해달라 당부하고 총관은 사건을 일월신교의 만행으로 조작한다.

화산으로 향하던 호충은 은퇴해 강호를 떠나려는 순풍당 당주와 그의 친구인 일월교의 곡양을 만나 함께 배를 타고 두 사람이 젊은 시절에 만든 소오강호를 부르며 우정을 쌓는다. 그러나 호충 일행을 추적한 냉선이 당주와 노곡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히고, 곡양은 탄금을 호충에게 주며 죽는다.

총관의 공격을 받은 일월신교 교주 임영영(장만)은 심복 남봉황(옌킷잉)과 함께 묘족들을 단결시키고 그들의 객잔에 호충과 영산, 그리고 평지로 위장한 천호가 입장한다. 여정에서 호충은 화산파 선대 장문인 풍청양으로부터 독고구검을 배웠다. 청양은 호충에게 불군을 조심하라고 충고한 바 있다.

불군은 호충에게 진남이 죽기 전에 남긴 말이 뭐냐고 묻고, 호충은 율법에 어긋난다며 평지로 위장한 천호에게 규화보전의 행방을 알려 준다. 천호는 염포방으로 가 규화보전을 찾아내지만 얼굴을 가린 불군과 총관까지 등장하며 서로 정체를 모르는 세 사람 사이에서 규화보전 탈취전이 벌어진다.

진룽의 원작 소설이 워낙 유명하고 내용이 복잡하지만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시나리오를 잘 정리했기에 팝콘무비로서 손색이 없다. 중국 무협 특유의 과장이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면. 호충은 영산과 어려서부터 함께 자랐기에 그에게서 여성을 못 느낀다. 영산도 그 앞에서 스스럼없이 목욕할 정도.

영산은 화산파 사형제들과 자랐기 때문에 다소 왈패 같기는 하지만 천성이 여자임은 숨길 수 없어서 어느덧 호충에게 연정을 느낀다. 봉황은 타고난 ‘남자 밝힘증’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는다. 남장을 한 영산이 남자인 줄 알고 ‘그’에게 술을 먹인 뒤 겁탈하려 하지만 정체를 알고 난 뒤 실망할 정도.

단정하지 못한 봉황을 영영은 못마땅해 하지만 천호에 의해 독에 중독된 호충을 치료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와 입을 맞추면서 원초적 본능을 인정하게 된다. 얼핏 코미디와 버무린 단순한 무협지 같지만 파고들수록 의외로 심오하다. 큰 얼개는 욕심과 관습적인 질서의 허망함과 자유의 소중함.

총관, 불군, 천호, 진남 등은 모두 사리사욕의 화신이다. 최고의 무공을 익히겠다는 것은 최고의 권력(부)과 허울 좋은 명예를 잡겠다는 야욕일 뿐이다. 게다가 그들은 정파와 사파를 구분해 일월신교도를 이교도로, 묘족을 미개인으로 무시한다. 과연 정과 사, 문명인과 미개인의 경계와 기준은 뭘까?

그건 다수가 진지한 고민과 회의주의 없이 습관적으로 받아들이는 기존의 질서에 있다. 시대에 따라 인식론과 이념과 기준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고루한 사람들은 정형화된 인식론을 그대로 답습하는 버릇에 길들여져 있다. 게다가 100년도 못 사는 인생인데 웬 욕심은 그리 많아 아등바등하는지.

호충과 그 친구들은 낭만주의자다. 호충은 규화보전엔 관심이 없고 외려 곡양이 물려준 소오강호 악보를 더욱 소중하게 여긴다. 그에겐 탄금과 소오강호만 있으면 인생이 즐겁다. 세속적인 욕심 때문에 복잡한 다툼에 휘말리는 건 이 짧은 인생에서 무의미하다. 그저 ‘아모르파티’로 사는 게 이롭다.

그의 천성이기도 하지만 곡양에게서 배우기도 했다. 냉선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곡양과 당주는 배에서 호충과 소오강호를 부른다. 당주가 먼저 죽자 곡양은 탄금과 악보를 호충에게 물려준 뒤 배에 불을 지른다. 그건 부정적 선택이 아닌 친구와의 우정이자 차안을 떠나 피안에 이르는 열반이다.

소오강호는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강호를 떠돌며 웃고 지낸다는 뜻으로 도가의 철학이 다분하다. 호충은 다소 가벼워 보이지만 그 어떤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노자의 도가를 설파한다. 불군처럼 정파와 사파를 구분하는 게 아니라 일월신교와 자연스럽게 친분을 쌓으며 자유를 희구한다.

그는 “우리는 강물, 조정은 우물물”이라며 속세의 이권다툼에 얽히지 않을 것을 천명한다. 도가는 사회적 규범과 권위를 탈피한 각자의 자발성에 주목했고, 삼라만상의 이치를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볼 것을 주문했다. ‘원래’와 ‘절대’는 없다는 뜻이다. 모든 일엔 탄력성과 융통성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노자는 ‘만물은 도로 인해 무에서 유로, 다시 무로 돌아가기를 반복하는 실체 없는 것이고, 도는 그 모든 생성과 변화의 과정인 무’라고 했다. 허무주의가 아닌, 무념 무욕의 사상이다. 묘족의 수입원이 소금이다. 얼마나 소박하면서도 소중한 음식인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무협 영화계의 소금!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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