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2016년 콩쿠르 상을 수상한 레일라 슬리마니의 소설 ‘달콤한 노래’를 원작으로 한 ‘퍼펙트 내니’(루시 보리튜, 2019)는 여성의 각본, 연출, 주연으로 완성된 영화다. 뮤지션 폴(앙투안 라이나르츠)과 결혼한 변호사 출신 전업주부 미리암(레일라 벡티)은 아이 둘 키우기 힘들어 재취업을 결심한다.

5살 딸 밀라와 11개월 아들 아담을 키워 줄 보모를 물색한 끝에 남편과 사별하고 외동딸을 독립시킨 뒤 줄곧 보모 일을 해온 50대 루이즈(카린 비아즈)를 낙점한다. 루이즈는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듯하다. 게다가 집안 청소와 각종 요리까지 만능으로 해 줘 미리암은 모처럼 자유를 만끽한다.

집 앞 식료품점 사장은 루이즈가 밀라에겐 엄하고 아담에겐 자상하다고 칭찬한다. 미리암은 어느 날 유통기한이 지난 요거트를 밀라에게 먹인 것을 알고 루이즈에게 어필한다. 미리암은 폴과 파티에도 가는 등 일과 여가를 모두 즐긴다. 루이즈는 일찍 출근하고 초과 근무도 싫은 기색 없이 해낸다.

루이즈가 마음에 드는 부부는 휴가마저 그녀와 동행한다. 그런데 물놀이를 하자는 밀라를 루이즈가 매몰차게 밀어내자 부모는 놀란다. 알고 보니 그녀는 수영을 못 한다. 어느 날 할머니 실비가 갑자기 찾아와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집으로 가자 미리암은 루이즈에게 유급 휴가를 줄 테니 쉬라고 한다.

폴 가족이 실비의 집에서 며칠 쉬는 동안 루이즈는 그 집에 들어와 청소를 한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미리암은 감격한다. 하지만 루이즈는 실비가 아이들을 챙길 때마다 그녀가 탐탁지 않고, 아이들이 없으면 무기력증을 느낀다. 루이즈는 밀라에게 부모한테 셋째를 낳아 달라고 부탁하라고 부추긴다.

루이즈의 동료 보모가 밀라와 아담이 크면 뭘 할 거냐 묻는다. 루이즈는 부부가 셋째를 낳을 것이고, 당연히 자신에게 맡길 것이니 아무런 걱정이 없다고 자신한다. 그리곤 남자는 성가시다며 관심이 없다고 자신한다. 폴은 왠지 어두운 루이즈가 내내 못마땅해 애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아이가 있거나 가질 계획이 있는 부부라면 필독서다. 특히 남자는. 미리암은 “하는 일도 없는 데 피곤하다”고 말한다. 폴은 “왜 없어? 육아가 얼마나 힘든데”라고 위로한다. 미리암은 “아이들에게 얽매이기 싫다”고 말하고, 실비는 “일 좀 줄여. 그럴 거면 뭐 하러 둘씩 낳았어”라고 못마땅해 한다.

아무리 아이를 좋아할지라도 제 자식과 남의 자식을 키우는 건 매우 다른 상황이다. 육아는 어느 나라건 큰 숙제다. 정부는 영혼 없이 출산 장려 캠페인만 할 게 아니라 책임감이 밑받침되는 정책과 병행해서 독려할 일이다. 무서운 장면 하나 없이 내내 긴장하게 만드는 감독의 연출력은 대단하다.

배경 음악과 주연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솜씨가 연출력을 탄탄하게 보조한다. 짐작하겠지만 루이즈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사실 그녀는 거짓말을 했다. 남편은 그냥 죽은 게 아니라 이혼했을 가능성이 높다. 딸은 이미 오래전에 시댁에 빼앗겼다. 남자가 싫은 게 아니라 남자가 그녀를 싫어할 것이다.

텅 빈 폴의 집 침대에서 뒹굴고 시트의 냄새를 맡는다. 집에선 딸의 것이었을 장난감을 끌어안고 애절한 표정을 짓는다. 부부 앞에선 완벽한 보모인 듯 행동하지만 사실 상실의 아픔과 그리움의 고통을 감내하며 살았다. 딸을 빼앗긴 상처는 타인의 아이를 키우며 대리만족을 간구하지만 흡족과 멀다.

루이즈는 밀라와 소꿉놀이를 하며 아이 변기에 소변을 본다. 밀라마저 유치하고 지루하다고 마다하는 그 소꿉놀이에 루이즈가 천착하는 이유는 아마 어린 시절의 추억과 낭만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미쳐가는 것은 광기가 탱천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딸의 상실 때문.

불행에 닥치면 그걸 부정하고 싶은 유혹과 삶을 포기하고 싶은 절망의 기로에 서게 마련인데 루이즈는 전자다. 소유를 포기하면 상실을 피하고 사유를 선택하면 상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 닭뼈가 드러날 즈음부터 이 영화의 공포는 급상승하며 본색을 드러낸다. 결과는 정말 참담하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