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요르단 암만. 알살람이 이끄는 이슬람 과격 단체가 유럽 각지에서 테러를 저지르자 미국 CIA 호프만 국장(러셀 크로우)은 중동에 투입된 요원 페리스(리어너도 디키프리오)를 통해 그를 잡으려 한다. 페리스는 호프만은 싫어하지만 자신을 믿는 요르단 정보국장 하니(마크 스트롱)에게 협조를 청한다.

작전 수행 중 현지 정보원 바삼(오스카 아이작)이 희생되지만 미국은 그의 유족에게 아무런 보상도 해 주지 않는다. 광견병 개에게 물려 인근 병원을 찾은 페리스는 이란 출신 간호사 에이샤(골쉬프테 파라하니)에게 호감을 느껴 데이트를 시작한다. 그녀는 언니 칼라의 허락을 교제 조건으로 내건다.

호프만과 하니는 사사건건 부딪치고, 모든 걸 떠나 임무를 완수하고픈 페리스는 점점 하니 쪽으로 기울게 된다. 알살람의 정체나 위치가 오리무중인 건 그들이 절대로 휴대전화 등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않고 아날로그 방식으로 소통하기 때문. 페리스는 그들이 휴대전화를 열게끔 묘안을 짜낸다.

가상의 대형 테러단체를 주작하는 것. 두바이의 건축가 사디키에게 접근해 그의 컴퓨터를 해킹한 뒤 그를 우두머리로 한 단체를 만들자 그 단체가 미군 기지를 폭파했다는 게 보도된다. 그러자 드디어 알살람은 휴대전화를 열고 사디키에게 전화를 건다. 페리스에게 에이샤와 찍은 사진이 배달된다.

경악한 페리스는 그녀의 집을 방문하지만 아무도 없고 핏자국만 흥건하다. 그리고 그녀를 살리려면 어느 장소로 나오라는 전화가 걸려온다. 호프만은 본부에서 정찰기를 이용해 그의 위치를 추적한다. 그런데 허허벌판에서 페리스를 납치한 차량은 모두 5대. 결국 페리스의 추적을 포기하고 마는데.

리들리 스캇 감독의 ‘바디 오브 라이즈’(2008)다. 영국 출신 스캇은 ‘블랙 호크 다운’에서도 그랬듯 미국에 불만이다. 미국을 맹신하고 신봉하는 사람은 미국인을 제외하면 성조기를 흔드는 일부에 불과할 것이다. 미국은 고대의 로마 혹은 중세, 근세의 스페인이나 영국과 다름없는 제국주의이기 때문.

과격한 이슬람 세력을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미국이나 유럽의 기독교 우월주의가 타 종교에 대한 배타심과 편견을 쌓음으로써 특히 이슬람 국가와의 갈등을 부추기면서 불편하고 부당한 결과를 낳는 걸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의 가르침은 사랑과 화합이지 전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플롯의 얼개는 현장요원 페리스, 사무요원 호프만, 양수겸장의 하니, 그리고 알살람 조직이다. 전술한 세 캐릭터는 알살람을 잡고자 한다는 점에선 동패지만 속셈은 각각 다르다. 호프만은 미국의 이익을, 하니는 요르단의 이익을 각각 대변한다. 페리스는 CIA지만 무조건적인 복종과 거리를 둔다.

먼저 페리스와 호프만의 갈등. 호프만이 중동에 직접 나타나는 시퀀스는 단 한 번. 그것도 현지 미국 대사관이나 미군의 보호를 받는 지역에서 편하게 지낼 뿐 내내 그는 일상생활을 즐기며 그저 전화로 지시를 할 따름이다. 이에 반해 페리스는 중동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온몸으로 임무를 수행해낸다.

마치 블루컬러와 화이트컬러 같은 이들의 보직은 경험론와 관념론의 대립을 암시한다. 앞부분에서 페리스가 테러 조직원과 접촉할 때 CIA의 정찰기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로 접근하자 페리스는 “꺼져”라고 소리친다. 현장 경험 없이 논리적으로만 잘난 체하는 이론가들의 허장성세를 꼬집는 시퀀스.

페리스는 이혼 소송 중이고 호프만은 “현장요원 중 이혼 안 한 사람 있냐”고 뇌까린다. 그런데 마냥 평안하고 행복해 보이는 그의 일상생활에서 아내가 등장하지 않는다. 이혼했다는 설명은 없다. 그의 행복은 과장됐고, 그의 가정은 가장됐다. 그는 바로 국제사회에서의 가식적인 미국의 양면성이다.

‘블랙 호크 다운’에서 스텔스기의 불명예처럼 헬기가 추락하는 것으로 미국을 비판했다면 이번엔 아예 노골적이다. 호프만은 “중동 좋아하는 사람 없다”고 말하지만 페리스는 “그런 선입견이 CIA의 문제”라고 맞받아치며 요르단에 남겠다고 사표를 던진다. 편재되지 않은 중용과 인도주의가 빛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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