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병규 변호사의 법(法)이야기] 임차인이 특정 목적으로 부동산을 임차하였으나, 나중에 보니 그러한 목적으로 임차 부동산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 임차인은 계약한 임대차 계약을 원점으로 돌릴 수 있을까요?

최근 한의사가 병원 개설을 위해 건물을 임차하면서 임대인에게 "병원 개설을 위한 소방시설 등을 구비해달라"고 요청했더라도, 일반인인 임대인이 '병원'과 '의원'의 개설 요건 차이 등을 알기 힘들어 임대인이 병원급 의료시설 개설을 보장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아, 계약 무효를 주장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와, 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한의사 A는 2015년 7월 진주시 소재 이 사건 건물에 대한 임대광고를 보고 B를 만나, 2015년 8월 위 건물의 2~4층에 대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계약 당시 임차인 A는 임대인 B에게 '병원을 개설하기 위해 정화조와 소방시설 부분을 병원 용도에 적합하게 B가 책임지고 설치하거나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고, B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 건물은 설계상 '의원급' 의료기관은 개설이 가능하지만, '병원급' 의료시설은 개설이 불가능하였습니다.

이를 알게된 A는 같은 해 9월 "임대차 계약은 '병원급' 의료기관을 개설하기 위해 체결한 것이기 때문에 계약은 원시적으로 불능"이라면서 계약무효를 주장하며 "이미 지급한 보증금 1억 50,00만원과 월 임대료 300만원을 반환하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1심 법원은 "의료인이 아닌 B가 계약 체결 당시까지 의료법상 '의원급 의료기관'과 '병원급 의료기관'의 구분 의미와 허가 절차 차이 등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아 원고 패소 판결을 했습니다.

하지만 2심 법원은 "계약 체결 당시부터 병원 개설 허가를 받을 수 없었으므로 임대차계약은 원시적 이행불능으로 무효이기에 B가 임대차계약 이후 시행한 철거공사대금 등을 제외한 8,300만원을 A에게 돌려주라"는 취지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습니다.

대법원 민사1부는 한의사인 A가 건물주 B를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반환청구소송(2019다201785)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패소 취지로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겠습니다.

재판부는 "의료인 또는 관련 전문가가 아닌 이상 '병원'과 '의원'의 의미나 개설 요건 등의 차이를 바르게 이해하거나 인식해 사용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전제한 후,

“임대차 목적물 전부를 ‘병원급 의료기관’으로 개설·사용할 수는 없지만, 일부는 병원급 의료기관을 개설 사용할 수 있었고, 의원급 의료기관으로는 임대차 목적물 전부를 개설·사용할 수 있었다"고 판단한 후,

"A는 계약 당시 구체적으로 임대차물을 '병원급 의료기관'으로만 개설·허가받아 사용할 것이라고 고지하지 않았다. A는 이를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B에게도 구체적으로 물어보거나 상의하지 않았다.

A와 B 사이에 계약 당시 'A가 임대차 목적물 전부를 의료법상 병원급 의료기관으로만 개설 허가받아 사용한다'거나 '그러한 사용이 가능하도록 임대인인 B가 책임지고 보장하거나 이행한다'는 점에 관해 의사의 합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아,

"임대차계약이 원시적 불능이어서 무효라고 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원시적 불능이란 후발적 불능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계약성립 당시부터 이행이 불가능한 것을 말합니다. 예를들어 소실된 가옥의 매매계약은 원시적 불능이고, 반면 매매계약 후 가옥이 소실된 경우는 후발적 불능인 것입니다.

이 사건의 쟁점은 이 사건 임대차계약이 계약 성립 당시부터 불능, 즉 원시적 불능이어서 무효인지 여부입니다. 원시적 불능이라면 한의사인 원고 A가 승소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불능의 기준이 되는 계약의 내용입니다. 즉, '병원급' 의료기관을 개설이 계약의 내용이었는지 여부가 문제되는 것입니다.

'병원급' 의료기관을 개설이 이 사건 임대차 계약의 내용으로 인정된다면, 소위 원시적 불능의 계약으로 무효가 될 것이나, 인정되지 않는다면, 원시적 불능으로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2심 법원은 계약 체결 당시부터 ‘병원’ 개설 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고 보아 원고 승소 취지의 판결을 하였습니다.

반면 1심 법원과 대법원은 의료인이 아닌 B가 계약 체결 당시까지 의료법상 '의원급 의료기관'과 '병원급 의료기관'의 구분 의미와 허가 절차 차이 등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볼 증거가 부족기에 ‘병원’ 개설 허가가 계약의 내용이 아니라고 보아 원고 패소 취지의 판결을 한 것입니다.

한의사 A가 임대차 계약 체결 때 임대인에게 "병원 개설을 위한 소방시설 등을 구비해달라"고 요청했더라도, 일반인인 임대인이 '병원'과 '의원'의 개설 요건 차이 등을 알기 힘들어 임대인이 병원급 의료시설 개설을 보장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소송을 업으로 하는 본 변호사로서는, 위 소송에서 '병원급 의료기관' 개설을 목적으로 한 임대차임을 임대인 B측이 알 수 있었음을 입증할 증거들에 대한 수집, 제출에 조금 더 공력을 기울였다면, 다른 판결이 나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타산지석의 마음으로 해봅니다.

▲ 박병규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박병규 변호사]
서울대학교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제37기 사법연수원 수료
굿옥션 고문변호사
현대해상화재보험 고문변호사
대한자산관리실무학회 부회장
대한행정사협회 고문변호사
서울법률학원 대표
현) 법무법인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서 : 채권실무총론(상,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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