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위 워 솔저스’(랜들 월리스 감독, 2002)는 오락용 전쟁 영화로서는 꽤 흥미진진하다. 1965년 미국은 베트남과의 전면전을 펼치기 앞서 한국전쟁 참전 경험이 있는 하버드 석사 출신의 전략가 무어 중령(멜 깁슨)을 대대장으로 한 부대를 11년 전 프랑스 군대가 괴멸됐던 아이드랑 계곡으로 파병한다.

월맹군의 베이스캠프가 있는 산 아래의 그곳은 일명 죽음의 협곡이라 불릴 정도로 미군에게 불리한 곳이다. 무어는 395명의 전투 경험이 전혀 없는 어린 부하들을 이끌고 침투하지만 이 지역을 점령한 월맹군은 숫자가 아군보다 5배나 많은 정예요원이라 선발대 대부분이 희생되며 패색이 짙어진다.

UPI통신 기자 갤러웨이는 생생한 기사를 쓰기 위해 전장에 뛰어들지만 아군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자 카메라 대신 총을 들게 된다. 2박3일에 걸친 전투 끝에 본부는 작전의 실패를 인정하고 무어에게 귀환 명령을 내리지만 적진에 부하들을 남기고 갈 수 없는 무어는 결국 브로큰 애로우를 외친다.

브로큰 애로우는 아군의 생사에 상관 없이 무차별 폭격을 퍼붓는 가장 최후의 선택인 양패구상을 의미한다. 베트남전쟁이 얼마나 무의미했고, 미국에 일방적이었는지를 잘 알려 주는 단어다.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이나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 수준은 아니지만 균형은 맞추려 한다.

출전 직전 무어는 “적들도 기도를 하겠죠. 하나 저의 기도는 들어 주시고 적들의 기도는 듣지 마소서”라고 기도를 올린다. 신의 입장에선 다소 황당할 수 있는 논리지만 끝의 “우린 국가나 성조기가 아닌 서로를 위해 싸웠다”는 대사가 해명이 된다. 전쟁에 합리나 논리가 있을 수 없다. 오직 생존뿐.

그런 면에서 야스퍼스의 유신론적 실존주의가 강하다. 그의 실존은 고립돼 있지 않고 다른 실존과의 관련 속에서만 존재한다. 신을 믿음으로써 ‘자신에 관계되는 동시에 초월자(신)와 관계되는’ 실존으로 생존하려는 의지다. 지나치게 미국의 시각에서 바라본 편향적인 시각이란 일부의 비판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시선 자체가 편파적일 수도 있다. 스톤이나 코폴라처럼 비판적인 사람이 있다면 중간자적 관점도 있을 수 있는 것. 카메라를 미군의 시선에서만 바라본 게 아니라 월맹군에게도 비교적 공평하게 제공한 게 그 증거. 특히 “전쟁이 더 계속된다면 그건 얼마나 더 죽느냐의 문제”라는 대사다.

막내딸의 “전쟁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무어는 “일어나선 안 되는 것이지만 일어나는 일. 그래서 아빠 같은 군인이 전쟁을 막는 일을 한다”라고 답한다. 국가가 아닌 전우를 위해 싸웠다는 대사와 같은 맥락이다. 군인은 오로지 가족과 전우를 지키기 위해 싸울 뿐 정치적 목적이 없어야 마땅하다는.

그는 또 “난 적진에 제일 먼저 발을 디딜 것이고, 가장 늦게 전장에서 나올 것이며, 내 뒤엔 아무도 남겨두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한다. 가장 멋진 대사다. 그의 아내 역시 택시 기사가 전사 전보를 각 가정에 전달하자 제게 모두 달라고 부탁한다. 전사자와 유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미국.

“난 결코 나를 용서하지 못할 것. 내 부하들은 목숨을 던졌지만 난 살아있기 때문에”라는 무어의 대사는 마치 윌러드 대위나 커츠 대령(‘지옥의 묵시록’)의 고해성사 같다. 베트남은 프랑스와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1946~54)을 통해 독립했지만 미국과 소련의 지원을 각각 받은 남과 북으로 나뉜다.

어디선가 많이 본 구도가 아닌가! 북베트남 정부의 지원을 받은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은 베트남의 완전한 독립(통일)을 위해 미국의 지원을 받은 남베트남 정부와 싸웠고, 미국은 북베트남에 대대적인 공세를 가했지만 패전함으로써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었다. 결국 존슨 대통령은 재선에 실패했다.

그 후 베트남은 다시 내전을 거치긴 했지만 결국 통일을 이뤘다. 이런 역사를 담진 않았지만 베트남 사령관의 “이건 비극”이란 대사와 미군 부인들의 눈물에서 국가와 정치인이 왜 전쟁을 피해야 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실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사실적 연출 솜씨와 깁슨의 연기력은 보증수표!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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