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일루셔니스트’(닐 버거 감독, 2007)는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프레스티지’와 비교가 되지만 확실히 그보다 저평가된다. 다소 일방적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재미도, 교훈도 담았다. 19세기 비엔나. 홀연히 나타난 마술사 아이젠하임(에드워드 노튼)이 환상적인 마술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초자연적인 마술을 펼치는 아이젠하임에 대한 소문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자 황태자 레오폴드(루퍼스 스웰)가 약혼녀 소피(제시카 비엘)를 대동하고 공연장을 찾는다. 사실 아이젠하임과 소피는 오래전 신분 차이 때문에 헤어진 옛 연인 사이. 그들의 위험천만한 로맨스가 속개된다.

이를 눈치챈 레오폴드는 울 경감에게 아이젠하임을 사기꾼으로 몰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그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팬들은 점점 늘어난다. 레오폴드가 필사적으로 허점을 파헤치려 애쓰는 사이 아이젠하임은 무대 위로 죽은 자의 영혼을 부르는 일생일대의 마술을 펼칠 준비를 시작하는데.

시대 배경은 신성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의 독일제국(프로이센) 때다. 제국의 힘은 자꾸 쇠락하고 있고, 레오폴드는 그게 나약한 아버지 탓이라고 생각한다. 기다리면 황제 자리에 등극하겠지만 그걸 기다리기에 그는 조급하다. 그래서 헝가리 공녀인 소피와 정략결혼해 헝가리를 차지한 뒤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내려는 음모를 꾸민다.

소피는 황태자비가 되기엔 다소 나이가 많다. 게다가 레오폴드의 속셈과 그가 폭력성향이 강하다는 걸 알고 고민하던 중에 아이젠하임과 재회했다. 이제 그녀는 귀족 신분도, 더 높은 황후 자리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진정으로 사랑하는 아이젠하임과 멀리 도망쳐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

구도는 아이젠하임과 소피 대 레오폴드의 대립, 레오폴드의 오른팔로서 총경 승진과 향후 재상까지의 출세가도가 보장된 울의 포지셔닝이다. 제국의 황태자와 비교할 때 도저히 상대가 안 되는 아이젠하임은 그러나 절대 굴하려 하지 않는다. 울은 레오폴드의 사냥개 노릇을 하지만 만만한 인물은 아니다.

그는 아이젠하임에게 “백정 자식이 황태자와 얼마나 친해질 수 있을까?”라고 자신 역시 신분의 한계가 있음을 숨기지 않는 한편 “저들은 권모술수의 달인이다. 이 세상에 저들을 속여 넘길 트릭은 없다. 도전할 생각 마라”며 충고한다. 마술을 믿지 않던 그는 점점 “환상에도 진실은 있다”며 아이젠하임에게 빠져든다.

가장 큰 주제는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이다. 아예 한 관객의 “과학적 유물론에 밀려났던 관념론이 부활했다”라는 대사를 통해 대놓고 관념론의 승리를 선언한다. 레오폴드는 울에게 “세상에 설명 못 할 미스터리는 없다”며 “민심을 교란한 사기꾼 아이젠하임을 체포하라”고 명령한다. 과학적 유물론.

울은 결국 아이젠하임을 체포한다. 그런데 수많은 시민들이 경찰서 앞에 모여 그를 석방하라고 시위를 벌인다. 폭동이 일어날 일촉즉발의 순간 아이젠하임은 창문을 열고 대중에게 자신의 마술은 눈속임일 따름이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솔직하게 말함으로써 풀려난다. 그런데 레오폴드에게 이별을 선언한 소피가 타살된 채 발견된다.

아이젠하임은 울에게 범인이 황태자임을 강력하게 어필하고 울 역시 그런 의심을 지우지 못하지만 그의 능력으로 차기 황제를 수사할 순 없다. 그런 데다 진범이 잡힌다. 아이젠하임은 울에게 조작이라며 황태자 범인의 주장을 굽히지 않더니 먹히지 않자 영혼을 불러내는 마술을 펼친다.

그의 영험함에 놀란 대중의 그를 향한 추종은 더욱 넓고 강해지는 가운데 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레오폴드가 극장에 나타난다. 그곳에서 아이젠하임이 불러낸 영혼은 소피. 그는 추종세력 앞에서 자신의 마술이 트릭이라고 고백했지만 극장 공연 땐 설명 없이 초능력을 보여준다.

이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 ‘물질적이거나 실재적인 것보다 관념 또는 관념적인 걸 우선시하는’ 철저한 관념론의 입장이다. 그는 공연 중 대놓고 ‘삶과 죽음, 시간과 공간’을 거론하며 “위대한 종교는 영혼 불멸을 주장한다”는 식으로 플라톤의 이데아론까지 끌어들여 관념론 찬가를 부른다.

‘프레스티지’와 달리 마술의 트릭에 대한 설명이 거의 전무한 수준이라 관객 입장에선 세정제 없이 세면한 기분이 들 듯하다. 아이젠하임이 펼치는 마술은 당시의 과학과 기술로 볼 때 모두 미스터리다. 유령은 홀로그램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는데 당시 그런 수준의 기술은 없었다.

물론 영화의 모든 시퀀스에 과학적 근거와 논리적 논거를 따지는 것 자체가 관념론과 대치하는 과한 유물론적 관점이라는 걸 감독은 영특하게 미리 전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평소 순하고 여려 보이지만 의외의 광기와 사악성을 보여주는 노튼의 연기력이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어 줬다.

아이젠하임이 혹세무민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는 시퀀스는 젊은이들에게 옳지 못한 연설을 해 사회를 혼란케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사형선고를 받는 소크라테스를 연상케 한다. 특히 신분 격차에 대한 날선 비판적 시선은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런 스타일의 영화가 그렇듯 마지막 반전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데 흐름은 관념론이지만 결론은 유물론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