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케이퍼 무비 ‘퍼펙트 케어’(J. 블레이크슨 감독)는 번뜩이는 기획과 탄탄한 시나리오가 바탕이 되면 재미와 완성도가 보장된다는 것을 새삼스레 입증한다. 30대 후반의 말라(로자먼드 파이크)는 케어 비즈니스 회사를 운영한다. 말은 보호가 필요한 노약자를 돌봐 준다지만 사실 비열한 사업이다.

병원 의사 캐런, 요양원 원장 샘과 짜고 ‘호갱’을 골라 과장된 소견서로 ‘환자’를 요양원에 보낸 뒤 그의 전 재산을 탈탈 털어먹는 게 실상이다. 중년 남자 필드스트롬이 요양원에 들이닥쳐 어머니를 내놓으라고 행패를 벌인 뒤 후견인 결정을 재고해 달라는 후견인 취소 신청 소송을 하지만 말라에게 패소한다.

요양원 VIP실에 머물던 피보호자 중 한 명이 사망하자 말라의 ‘호갱’ 하나를 알려달라고 부탁에 캐런은 제니퍼(다이앤 위스트)라는 노파를 추천한다. 대출금 없는 번듯한 부촌 단독주택을 소유한 데다 현금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뭣보다 구미가 당기는 점은 가족 하나 없이 혈혈단신이라는 것이다.

매끄럽게 제니퍼를 요양원에 입원시킨 뒤 말라의 동성 연인이자 회사 이인자인 프랜(에이사 곤살레스)은 제니퍼의 집을 매물로 내놓고는 내부 수리를 한다. 그런데 갑자기 택시 기사 알렉시가 나타나 제니퍼를 찾고 허탕 치고 돌아간다. 사실 그는 제니퍼의 아들인 마피아 보스(피터 딘클리지)의 부하였다.

말라는 제니퍼의 은행 개인 금고에서 장물이 확실한 고가의 다이아몬드를 발견하고 빼돌린다. 매달 정해진 시각에 엄마와 만나는 게 삶의 기쁨이었던 보스는 알렉시에게 어떻게든 제니퍼를 찾으라고 닦달하고, 알렉시는 조사 후 자초지종을 보고한다. 그러자 보스는 고문 변호사 딘을 부르는데.

세트장이 아닌 실재 로케이션에 주인공들의 연기력이 워낙 뛰어나 현실감이 생생하게 넘쳐난다. 보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고, 시나리오 작가와의 두뇌 싸움이 흥미진진해 지루할 겨를이 없다. 게다가 훌륭한 BGM은 작품의 감흥과 풍취를 한껏 고조시켜 준다. 로튼토마토 지수 93%는 과장이 아니었다.

이 영화의 출발점은 자본주의와 밀그램 실험이다. 현대 사회는 왕족과 귀족이 사라짐에 따라 만인이 평등한 자유를 민주적으로 누리고 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권력을 쥔 사람이 국가와 민생을 움직이고, 돈 많은 사람이 권력자들을 조종한다. 결국 현대 자본주의에선 부자가 귀족이고 지배자다.

말라는 철저하게 자본주의에 경도된 물질만능주의의 황금 추종자다. 자신의 피보호자가 죽은 게 불쌍해서가 아니라 제 수입이 줄었기에 안타까워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대놓고 “열심히 일하면 성공한다고?(그런 건 없다)”라며 정직과 도덕은 돈이나 성공과 전혀 다른 진로를 내놓는다고 외친다.

“좋은 사람 같은 건 없다”는 그녀는 애초부터 성선설 따위는 햄버거랑 바꿔 먹은 지 오래고, 세상엔 오직 두 종류의 사람만 있을 뿐이라는 신념을 갖고 생활한다. 빼앗는 자와 빼앗기는 자, 포식자와 피식자, 사자와 양이 그 이원론의 존재다. 남이 가진 걸 빼앗는 게 생존의 유일한 방식이라는 일방통행이 신조다.

그녀에겐 이성이나 이타심, 혹은 동정심 같은 건 없다. 양파 같은 제니퍼의 신분이 드러나고, 거대 마피아 조직의 추적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프랜은 도망가자고 하지만 말라는 의외의 용기를 보인다. 보스에게 잡혀서도 의연한 태도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거액의 돈을 요구하며 흥정을 벌일 정도로 대담하다.

그건 용기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풍부한 돈이 없으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자신만의 아집 같은 이념에 근거한 만용 혹은 착각의 도그마다. 그녀는 제니퍼에게 승리를 자신하며 “나를 이기려면 법정에서 이겨 봐라”고 대담하게 도전장을 던진다. 그건 ‘권력의 지시가 불법적일지라도 대다수는 항거하지 못한다’는 밀그램 실험 결과에 대한 신봉이다.

판사는 말라의 대척점에 선 사람들에 대한 고뇌 없이 매우 형식적이고 피상적으로 판결을 내린다. 법(관)이 갖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예리한 우의다. 국가는 개인이 스스로 돌볼 능력이 없으면 국가가 도움을 준다고 법으로 정했지만 자신을 지킬 능력의 판단 기준은 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관객의 예상을 깨는 몇 번의 반전을 거치는 동안 끝났다 싶을 듯한 반전은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팡파르처럼 보인다. 깔끔한 듯하면서도 뭔가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 매조짐인 듯한 시퀀스가 지나가면 감독이 웅변하고자 하는 진의가 뭣인지 드러나는 충격적인 결말에서는 희망과 공포가 동시에 엄습할 것이다.

나약한 한 명의 여자에 불과한 말라가 마피아 조직의 살벌한 공격과 위협에 굴하지 않고 어떻게 맞서는지 결코 과장되지 않게 펼쳐가는 시퀀스는 딘클리지 캐스팅에 대한 이유다. 서로 죽이지 못해 안달복달했던 두 사람의 “서로 부자로 만들어 주면 신뢰는 저절로 따라와”라는 대사는 자본주의가 얼마나 무서운지 처연하게 설명한다. 19일 개봉.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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