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일찍이 한국 가톨릭 수도회 창설을 염원했던 방유룡 신부(1900~1986). 수도회를 창설하려는 뜻을 세우고 1946년 개성성당에서 한국순교복자수녀회를 창립하였다. 그리고 한국전쟁 직후 3명의 수사와 함께 한국 최초의 남자 수도회를 창설하였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서울 성북동의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옛 본원. 한국가톨릭 최초의 남자수도회로 출발해 지금은 수도자 양성과 신자들의 피정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전형적인 라틴십자형 평면으로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존슨탕]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져 구석구석 특별한 볼거리가 많은 용산의 이태원 거리. 지금은 세계와 한국이 만나는 퓨전의 메카이지만 일찍이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시절엔 일본군이 주둔했고 한국전쟁을 계기로 미군이 정착한 곳. 용산 일대는 그렇게 오랫동안 외국군의 땅이었다. 그러다 보니 국경을 넘나드는 정체불명의 음식 하나쯤, 이태원의 맛으로 남을 법 하다.이태원 거리를 걷다보면 80년대 경양식집을 연상시키는 메뉴판, 그중에서도 존슨탕이라고 하는 생소한 이름이 눈길을 끈다.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운현궁 양관] 19세기 말 최고의 기술력을 동원해 건립된 고종의 사가이자 흥선대원군의 대저택 운현궁.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이 씨 왕가의 상징 운현궁은 축소되고, 그 너머 운현궁에서마저 떨어져 나간 곳에 마지막 왕조의 흔적이 남아있다. 종로구 운니동의 덕성여대 종로캠퍼스. 해방 후 운현궁의 일부를 사들여 대학캠퍼스로 사용하다 쌍문동으로 이전, 지금은 기타 교육 시설이 남아있다. 운현궁 일대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던 양관 역시 캠퍼스의 일부가 됐다.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청량리역] 추억의 경춘선으로 상징되는 청량리역. 1911년, 서울과 원산을 잇던 경원선의 중간 정착지로 영업을 개시한 청량리역은 내륙철도였던 중앙선의 종착역이기도 하다.청량리를 중심으로 한반도 주요 철도가 움직이게 된 배경엔 청량리가 근대의 새로운 교통수단이었던 전차가 처음 운행된 곳이기 때문이다. 1899년 고종이 명성황후의 홍릉을 찾는 능행길이 잦아지면서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부설된 전차는 경성 시민들의 일상에도 상당한 변화와 영향을 가져왔다. 청량리역이 경성 동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구의정수장] “여기는 서울 워커힐쪽 구의동의 대단위 수원지입니다.이곳 수원지의 1차분 공사가 끝나 수돗물을 내보내기 시작했습니다.이번 수돗물 증산으로 하루 30만톤의 물을 더 공급하게 됐으며...”- 구의정수장 30만톤 증산 / 대한뉴스 1974년 워커힐 쪽 구의동의 대단위 수원지. 이곳 수원지의 1차분 공사가 끝나 수돗물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수돗물 증산으로 하루 30만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세운상가] 일제 강점기, 종묘 앞에서 퇴계로까지 1km 넘게 이어졌던 공습대비용 소개공지(疏開空地). 한국전쟁 후엔 무허가 판잣집촌으로, 1960년대까지는 사창가로 전락했던 곳. 개발 시대, 그곳엔 근대 서울의 랜드마크가 들어섰다. 1967년 11월, 박정희 대통령과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이 참석한 가운데 세운상가 A, B 지구 네 개 상가의 준공식이 열렸다. 이듬해인 1968년엔 네 개 지구 여덟 동의 건물이 모두 완공돼 서울 도심을 남북으로 가르는 거대한 상가 단지가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경성방직] 국내 최대 복합 쇼핑몰 영등포 타임스퀘어 한편에 90여 년 전 근대산업의 시초를 간직한 곳이 있다. 거대한 공업지대였던 영등포의 대표적인 면방업체 ‘舊 경성방직 사무동’이 그것이다. 이곳에 일제 강점기, 진정한 독립을 추구했던 기업인들의 숨결이 스며있다. 1919년 일본인 소유의 피혁 공장이며 벽돌 공장만 두 엇 있던 영등포 일대에 민족 기업 경성방직이 들어섰다. 훗날 동아일보를 창립한 인촌 김성수가 조선인들이 세운 경성직뉴(京城織紐)를 인수 확대해 현재의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장면 총리 가옥] 한옥이 유난히 많았던 명륜동 일대. 그곳에 일찍이 1930년대 중반 한양(韓洋)절충형으로 들어선 가옥 한 채가 있다. 제2공화국의 내각 수반이었던 장면 총리가 1966년 서거할 때까지 30년을 살았던 근현대 정치사의 역사적 장소이다. 운석(雲石) 장면은 1946년 정계에 투신하여 민주의원.과도정부 입법의원을 거쳐 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48년 제3차 유엔총회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국제 사회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승인을 받아냈으며, 대통령 바티칸 특사를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대오서점] 경복궁의 서쪽 마을 서촌,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서쪽 사이 청운효자동과 사직동을 일컫는 이 동네를 찾아 길을 걷다 보면 실핏줄처럼 이어진 골목길과 세월을 그대로 녹여낸 듯 개량한옥, 그리고 과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아씨고전 의상실’, ‘효자동 이발소’, ‘영화루’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골목길 사이사이를 누비다 보면 어느덧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온 느낌으로 추억 속에 사로잡혀 모든 것들이 친숙하게 느껴진다. 그 가운데 이곳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성공회 서울성당] ‘로마적(的)’이라는 뜻의 로마네스크 양식은 11~12세기 신성로마제국 때 서유럽 등지에서 유행했던 건축 양식이다. 두꺼운 벽으로 장중한 느낌을 주고 비잔틴 미술의 영향으로 반원과 로마스타일의 아치로 동양적 느낌을 가미한 것이 독특하다. 성공회 서울성당은 제3대 마크 트롤로프(M.N. Trollope) 주교의 주도로 교회 건립을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하여 어느 정도 자금을 모은 뒤, 건축가인 아더 딕슨(Arthur Dixon)에게 설계를 의뢰하여 1922년 착공에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홍난파 가옥]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1924년 학교 글짓기 시간 15살의 어린 학생이 고목나무 아래 꽃 피고 새 울던 시골집이 그리워 쓴 시 한편... 어린 학생이었던 이원수의 시에 후일 홍난파가 곡을 붙여 방송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고... 이후 한 세기 가까이 남녀노소, 도시와 농어촌, 국경을 넘어 한민족이라면 누구나 한 소절쯤은 불렀던 민족 동요 ‘고향의 봄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중명전] 한 여론조사기관에 따르면 서울시민들이 꼽은 가장 걷고 싶은 길은 ‘덕수궁 돌담길’이라고 한다. 도심의 낭만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덕수궁과 정동 거리, 그러나 불과 100년 전 정동일대는 프랑스, 러시아, 미국, 영국공사관 등이 들어서 있는 열강들의 각축장이었다. 그 구석진 정동 안쪽 격변의 역사를 말없이 품고 있는 곳 ‘대한제국의 운명이 갈린 곳’ 중명전이 있다. 1905년 11월 10일 덕수궁 중명전에 나타난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국왕의 친서를 전달하고,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동대문 생선구이 골목] 고등어, 갈치, 삼치, 꽁치 조기, 임연수 등등 초벌구이를 거쳐 손님들을 기다리는 다양한 생선들... 그리고 지난 40년, 좁다란 동대문 골목길을 이어온 진풍경 이곳의 소문난 불맛을 아시나요? 종로 5가 4거리에서 동대문 방향으로, 종로대로와 청계천 사이에 위치한 종로 40가 길. 백반집과 함께 10곳이 넘는 생선구이집이 몰려있어 동대문 생선구이 골목으로 소문난 맛 골목이다. 평화시장을 비롯한 인근 도소매시장 상인들은 물론 이젠 외국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서울역] 서울임을 알리는 한강철교를 지나 그리고 낯선 도심에 모여든 사람들... 운명과도 같은 가난을 피해 출세를 꿈꾸던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 서울역.경인선을 시작으로 일제는 조선 전역에 대륙 침략과 민족 수탈을 위한 기간시설을 치밀하게 건설해 나갔다. 그리고 1925년 경성역이 준공하게 된다. 대리석이 깔린 넓은 대합실과 붉은 벽돌, 둥근 둠이 올려진 경성역. 당시 일본의 도쿄역 다음으로 웅장하고 화려한 동양 제2의 규모였다. 경성역은 애초에 염천교 부근에 있었던 남대문역에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충정각]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2길 8번지 골목. 길을 걷다 보면 낯선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겨나는 서양식 건축물을 만나볼 수 있다. 레스토랑과 갤러리를 겸한 대안공간 충정각. 도심 속 빌딩 숲 사이로 가려져 골목길을 접어들지 않고서는 외부에서 그 모습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 공간. 자세히 살펴보면 붉은색 벽돌 외벽에 9각형의 첨탑이 솟아 있는가 하면 넓은 마당이 감싸 안고 있는 형상이 제법 운치가 있다. 충정각은 191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서양식 건축물이다.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경교장] 경교장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이던 백범 김구선생이 1945년 11월 중국에서 환국한 이래 서거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생활하던 사저이다. 일제강점기 1938년 금광으로 돈을 번 금광업자 최창학이 소유하다가 해방 후 친일 행위에 대한 속죄 차원으로 임시정부 관저로 제공했는데 원래 이름은 일본식 마을 이름을 딴 죽첨장(竹添莊) 혹은 죽첨정(竹添町)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김구 선생이 근처에 있던 경교[京橋: 경구교(京口橋)의 약칭]라는 다리 이름을 따서 경교장이라 개명하였다.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남대문로 한국전력사옥] 1887년 3월 6일 저녁, 어스름할 무렵 경복궁 내 건청궁.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이 점화되었다. 그리고 1900년 4월 10일 종로에 가로등이 설치가 된다. 이후 세월을 훌쩍 넘어 한국 근대화의 불을 밝히며 남대문통에 세워진 건물 남대문로 한국전력사옥(대한민국 등록문화재 1호)에는 어떤 역사가 숨어있는 것일까? 1898년 최초의 전기회사인 한성전기 회사, 고종은 전기 사업을 통해 근대화를 꿈꾸었다. 한성전기는 인력거와 자전거만 다니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영화초등학교] 1884년 12월 우리나라 최초의 우편 행정관서였던 우정국 개국 축하연이 있던 날 당시 개화파의 주요인물인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등은 수구세력을 제거하려 갑신정변을 일으키고 그 과정에 명성황후의 조카인 민영익도 중상을 입게 되는데 생명이 위독했던 민영익을 정성껏 치료해 완쾌시킨 이는 미국인 선교사 호레이스 알렌.이렇게 1884년 미국 북 장로교 선교사였던 알렌은 미국공사관 의사로 일하던 중 그 해 갑신정변을 만났다. 알렌은 우정국 사건에서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명치좌] 1936년 건립된 명치좌(현 명동예술극장: 명동 1가 안 네거리 부분에 위치)는 건축주 이시바시(石 橋良祐)에 의해 다마타(玉田橘治)라는 건축가에 의해 극장 전용 건축물로 설계되었다. 국도극장과 같은 해 착공(1935.11.9.)하여 같은 해(1936.10.7)에 준공되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쇼치쿠(松竹株式會社, Shochiku)제작사의 일본 영화가 주로 상영되었으므로 일본인들을 위한 위락시설이었다고 한다.화려한 르네상스 양식, 수용 관객은 1,178명으로 1층은 664명
[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영화초등학교] 개항기, 우리나라에서 근대 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온 인천. 단 한 명의 학생으로 시작해 교회 예배당 방 한 칸에서 싹 틔운 근대 초등교육의 씨앗... 바로 영화초등학교다.인천 내리교회 방 한 칸에서 존스 선교사 부부가 교회 아이들을 대상으로 근대교육을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영화학당에 점차 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과목이 신설되었고, 새로운 교사가 건축됐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39호로 지정된 영화초등학교는 지상 3층, 반지하 1층으로 구성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