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1954년. 연방보안관 테디(리어너도 디캐프리오)는 방화광 래디스가 불을 지르는 바람에 아내를 잃은 데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파트너 보안관 척(마크 러팔로)과 함께 중범죄자 수용 정신병원 셔터 아일랜드에 간다. 감쪽같이 탈출한 여성 레이첼을 찾는 게 임무.

고립된 이 섬은 선착장을 통해 배를 타는 게 유일한 탈출 수단인데 항구와 배는 철저하게 병원이 통제하고 있다. 인터뷰한 환자 컨스 부인은 뭔가 숨기는 듯하더니 은밀하게 그의 수첩에 ‘도망쳐’라고 쓴다. 그런데 책임자인 코리 박사가 레이첼이 나타났다고 한다. 테디는 등대 안에서 불법적인 시술이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해 그곳에 가려다 외진 절벽 아래 은밀한 동굴에서 레이첼 의사라는 여자를 만난다.

그는 반미활동조사위원회가 이 병원의 돈줄이고 불법 수술이 자행됨으로써 비록 범죄자이긴 하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아야 할 환자들이 희생되고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런데 갑자기 척이 사라지고 코리는 ‘4의 규칙’과 67번째 환자는 바로 테디 자신이고, 사실은 테디가 아니라 래디스라고 주장하는데.

거장 마틴 스코시즈 감독이 인기 하드보일드 작가 데니스 루헤인의 소설 ‘살인자들의 섬’을 영화화한 ‘셔터 아일랜드’(2010)는 꽤 탄탄한 미스터리 스릴러이자 심리 드라마다. 감독은 관객을 속인 뒤 결말의 반전으로 뒤통수를 치려 들기보다는 주인공의 심리 상태에 집중해 현대인의 정신질환을 해부하는 데 집중한다.

테디는 사실 래디스가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다. 래디스는 참전 후 연방보안관으로 근무했지만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해 알코올중독이었다. 그런 그를 참지 못한 정신이 나약한 아내 돌로레스는 심한 조울증 끝에 세 아이를 익사시켰다. 퇴근 후 이를 발견한 테디는 특유의 폭력성으로 아내를 총살한 뒤 셔터아일랜드에서 2년간 치료를 받아왔다.

척은 사실 그의 주치의 시한이었다. 당시 정신의학계는 심한 정신병자를 뇌엽절리술로 간단하게 치료하자는 세력과 그 비인간성을 문제 삼아 인내를 갖고 약물치료로써 치료하자는 반대 세력이 대립 중이었는데 코리와 시한은 후자였다. 래디스의 폭력성과 환상이 나아지지 않자 그에게 자아를 깨우쳐 주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이런 연극을 꾸미게 된 것.

테디는 아내를 죽인 래디스가 이 병원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번 수사를 자원했다. 래디스가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그는 아이들을 지켜 주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아내를 죽인 죄악감을 이겨낼 수 없어서 테디를 만들었다. 준법정신 강하고 정의감 넘치는 가상의 인물.

그런데 그 테디는 자주 아내의 환영을 보고, 셔터 아일랜드에서 나치의 실험실을 본다. 참전 당시 나치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잔인한 뇌수술을 진행했는데 그 수용소를 점령한 테디의 군대는 독일군을 잔인하게 집단 사살했고, 테디는 자살하는 독일군 수용소장을 두 눈으로 바라봤다. 이 병원을 수용소와 동일시한다.

사실 테디의 수용소 기억은 래디스가 만든 테디의 환상일 뿐이다. 래디스는 참전은 했지만 일반적인 전쟁의 참혹함에서 발생한 트라우마와 직업적 스트레스에 시달려 알코올중독이 됐다. 이는 전쟁의 후유증과 더불어 미국이 세계의 헤게모니를 잡게 됨으로써 파생된 자본주의 승리의 어두운 이면에 의해 파괴된 인간의 자아분열을 의미한다.

영화는 대놓고 방어기제란 용어를 사용한다. 이는 ‘자아가 위협을 받을 경우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속이거나 상황을 다르게 해석함으로써 감정적 상처로부터 스스로 보호하는 심리 의식이나 행위’를 뜻하는데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논문 ‘방어의 신경정신학’에서 처음으로 사용했다.

방어기제는 자아와 외부의 조건 사이의 갈등을 극복할 때 심리적, 정신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긍정성과 지나치게 자신을 속일 경우 반사회적으로 된다는 부정성이 동시에 존재한다. 래디스는 당연히 후자. 래디스와 테디는 프로이트의 용어 부정, 억압, 합리화, 투사, 승화 등의 용어로 쉽게 설명된다.

래디스와 돌로레스는 서로를, 그리고 아이들을 무척 사랑했다. 하지만 양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미국은 부유한 강대국이 됐을지언정 서민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부부가 도심이 아닌 외진 연못 앞의 소박한 집에서 살았던 게 증거다. 래디스는 과거의 충격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괴로워 알코올중독이 됐다.

남편의 내면을 치료해 줄 수도, 경제적인 보탬이 될 수도 없는 돌로레스는 벙어리 냉가슴 앓다 자신이 먼저 미쳐버렸다. 전쟁을 통해 자신의 폭력성을 깨닫고 괴로웠던 래디스는 순간적으로 그 악마가 돌출해 돌로레스를 사살했고, 그런 현실을 인정할 수 없어 래디스를 방화범으로 만들고 자신은 테디가 됐다.

그는 자신의 본성을 억압함으로써 테디로 가공했고, 그 결과 풍선효과처럼 반대편에서 새로운 캐릭터의 래디스가 탄생된 것이다. 억압 과정을 거친 부정이다. 이제 남은 건 합리화다. 코리가 딸 레이첼의 사진을 보여주자 테디는 자신은 자식이 없다고, 딸은 더욱더 없다고 강력하게 부정하는 시퀀스다.

그가 병원 내 환자들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공격성을 보이면서 병원이 자신에게 뭔가 음모를 꾸민다고 믿는 건 자신의 자아에 대한 증오심을 타인에게 떠넘김으로써 일종의 공황장애를 겪게 되는 투사고, 그렇게 그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승화로 매조진다. 마지막에 그는 매디스로 돌아오고 시한은 마지막 시험을 한다.

그러자 갑자기 매디스는 테디로 돌아가 시한을 척이라고 부른다. 그는 마치 햄릿처럼 ‘괴물로 평생 사느냐, 선량한 사람으로 죽느냐’를 생각한 끝에 후자를 택했다. 그는 ‘상처는 사람을 괴물로 만든다. 날 해방시켜 줘’라고 말한 바 있다. 코리는 ‘고통은 육체 아닌 뇌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감독은 제정신으로 살기 힘든 이 세상을 향해 장엄한 염세주의적 진혼곡을 연주하는 듯하다. 어차피 다수의 현대인이 이중인격자 아닌가?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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