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2001년 9월 11일 대폭발 테러 사건이 일어나자 미국은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함으로써 자국민 보호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명분으로 동맹국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2003년 3월 20일 오전 바그다드 남동부 등에 미사일 폭격을 가함으로써 전쟁을 개시했다.

하지만 속셈은 이라크의 원유를 확보하고, 중동 지역에서 친미 블록을 형성함으로써 정치구도를 재편하며, 미국 경기 회복의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데 있었다. 이후 현지에 미군을 주둔시킨 2004년의 바그다드. 폭발물 제거팀장 톰슨(가이 피어스) 중사가 임무 중 사망하자 후임으로 귀국 38일을 남긴 제임스(제레미 레너) 중사가 온다.

그는 팀원 샌본(앤써니 마키) 하사, 엘드리지 상병을 이끌고 폭발물 제거에 나서는데 전임자와 달리 규칙을 무시하는 등 굉장히 무모해 샌본과 갈등을 빚는다. 제임스는 미군부대 앞의 즐비한 노점상 중 DVD를 파는 12살 베컴과 친하게 지낸다. 그런데 임무 수행 중 인간 폭탄이 된 한 소년의 주검을 발견한다.

제임스는 베컴이라고 확신해 목숨 걸고 폭탄을 분리한 뒤 현지 경찰에게 사체를 인도한다. 그는 퇴근하는 DVD 판매상의 차에 올라탄 뒤 그를 협박해 베컴의 집을 알아낸 뒤 침투하지만 거짓이었다. 유조차 폭발 사건 현장에 출동한 제임스는 어디선가 폭탄을 원격조종한 반군들을 잡겠다며 샌본과 엘드리지를 이끌고 작전 지역을 벗어난다.

잠시 흩어졌다 합류한 제임스와 샌본은 엘드리지가 사라진 걸 알고 추적하는데 반군 두 명에게 끌려가는 걸 목격하고 총을 쏴 엘드리지를 구하지만 그만 그의 다리를 쏘는 실수를 범하는데. 오는 11일 재개봉되는 영화 ‘허트 로커’(캐서린 비글로우 감독, 2010)다.

영화는 인트로부터 대놓고 ‘전쟁은 마약’이라고 부르댄다. 아카데미를 비롯해 많은 상을 타고 평단, 언론, 관객 등의 고른 호평을 받았다는 걸 차치하더라도 극도의 긴장감과 몰입감을 선사하는 전쟁 영화로서의 상업적 값어치도 매우 훌륭하다. 그건 핸드헬드와 줌인 등을 자주 사용한 다큐멘터리적 기법과 배우들의 명연기 등 감독의 연출력에 흠잡을 데가 없기 때문이다.

제 목숨 안 아까운 사람이 있을까마는 제임스는 목숨이 여러 개나 되는 양, 혹은 영웅이 되고 싶어 안달이 난 양 제 안전에 무관심하다. 이는 전쟁의 광기와 마약 같은 중독성을 명토 박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감독의 의중이 극도로 반영된 설정. 이 작품은 중동 버전의 ‘지옥의 묵시록’이다.

제목은 ‘제 마음의 고통과 괴로움의 보관함’ 정도 되겠다. ‘지옥의 묵시록’의 윌러드 대위와 커츠 대령은 서로가 서로의 허트 로커였다. ‘허트 로커’는 전쟁의 광기는 인류의 탄생 이래 계속됐고, 앞으로도 어떠한 형태로든 현재진행형이라는 지옥의 묵시록의 신탁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제임스는 국가라는 리바이어던이 만든 또 다른 괴물이다. 샌본이 제임스의 사물에서 갓난아이 사진을 보고 혼인관계를 묻는다. “난 이혼했는데 아내가 집에 있네”라는 게 제임스의 답. 하지만 그는 이혼하지 않았다. 스스로 자신을 가정에서 밀어내 전쟁터로 보냈을 뿐이다.

어느 날 아내에게 전화를 걸지만 그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끊는다.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게 아니라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알고 관심있는 건 전쟁뿐이니. 그는 폭발물을 해체하고 나면 주요 부속을 모아 박스에 담아 침대 밑에 두고 잔다. 그걸 “날 죽일 뻔했던 물건들”이라고 가리키는데 결혼반지도 있다. 제임스 캐머런과 이혼한 감독의 속내일 수도.

제임스는 침대에서조차 헬멧을 쓴다. 수색대에게 넘겨야 마땅할 임무를 목숨 걸고 이행하려는 이유가 어디선가 자신을 비웃고 있을 반군을 잡기 위해서다. 샌본은 “중사님은 도박하는 기분으로 목숨을 건다"라고 지적한다. 제임스는 인정하면서도 “하지만 이유는 모른다"라고 응수한다.

모를 수밖에. 그는 미국이란 리바이어던이 만든 괴물일 따름이니까. 전쟁에 중독된 불나방이니까.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는 나치즘에 활용될 만큼 자기 생존의 유지를 위해 투쟁을 통해 남을 지배하려는 의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니체가 ‘가치전도’와 ‘위버멘시’를 동시에 외친 걸 보면 그 의지는 니힐리즘에서 벗어난 자기초극일 가능성도 있다.

감독은 후자를 택한다. 제임스는 귀국해 아내와 마트에서 장을 본다. 아내가 시리얼 하나 가져오라고 주문하자 수많은 종류의 시리얼 앞에서 당황한다. 그는 전쟁광이었을 뿐 사회 부적응자이기 때문이다. 아내에겐 군대 얘기를 하고 아내는 한쪽 귀로 흘린다.

“나이 들수록 좋아하는 것이 적어지지. 내 경우엔 딱 하나야”라고 말한 그가 전쟁터로 되돌아와 미소 짓는 신은 정말 소름 끼친다. 동물은 동종 개체와 딱 두 가지로 싸운다. 먹이와 교미다. 가끔 집도 있긴 하다. 하지만 인간은 탐욕과 종교 때문에 전쟁을 한다. 종교적 이유도 결국 과욕이 기저에 깔린 핑계일 따름이다. ‘지옥의 묵시록’과 대등한 걸작인데 재미까지 보장하다니!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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