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왓치맨'의 로어셰크.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존 랫클리프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최근 방송에 출연해 지금까지 공개된 것보다 훨씬 많은 UFO 기록을 미국 정부가 갖고 있다며 오는 6월 발간될 보고서에 그 내용들이 담길 것이라고 밝혔다. 과연 외계 생명체는 존재할까? 만약 그렇다면 혹시 그들은 인류가 신이라고 믿어온 존재자가 아닐까?

아니면 최소한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동안 다양하게 제기돼온 고대 문명의 미스터리에 대한 해답을 그들이 쥐고 있는 것일까? 하나의 은하엔 1000억 개의 별이 있다. 그런데 우주엔 최소한 1000억 개의 은하가 있다. 물론 천문학 등 과학이 더 발달한다면 더 많은 은하가 보고될 것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인류가 멸절하기 전까지 우주의 크기를 확실하게 규정짓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그건 삶의 철학과 사후세계의 비밀을 푸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계 생명체는 존재하는 것일까? 외계 생명체와 만났거나 UFO를 목격했다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그 존재가 증명된 사례는 아직까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스모스’의 칼 세이건의 주장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생명체가, 그리고 인간처럼 ‘고등한 동물’이 지구에만 있으리란 생각은 분명히 착각이다. 이 광활한 우주에 산재한 수없이 많은 별 중에 보잘것없이 작은 먼지 같은 존재인 지구에만 생명체가 있으리란 자만은 허망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외계 생명체를 발견해내지 못하는 것일까? 먼저 지금까지의 과학에 의하면 일단 태양계 안에는 지구와 유사한 행성이 없다. 하지만 우리 은하계 혹은 다른 은하계에 존재할 가능성은 가능성이 아니라 확실성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우리의 과학이 그곳을 관찰하거나 탐험할 수준까지 이르지 못했기에 포착 못 했을 따름이다.

또한 외계 생명체가 ‘에이리언’이나 ‘ET’ 등 숱한 SF 영화에서 묘사한 모습과 유사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다른 형상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라고 세이건은 썼다. 즉, 형상이 아닌 현상으로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 그러면 신을 상정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이집트와 마야의 피라미드에 대한 외계인 문명 전파론자의 추리력이 추앙될 것이다.

▲ '그린 랜턴'.

인류가 항해를 시작한 시기를 학자들은 기원전 70만 년쯤으로 본다. 이집트 고대 유적에선 우주선 같은 그림이, 중남미 유적에선 외계인 같은 그림이 각각 보인다. 어쩌면 인류와는 차원이 다른 문명과 과학을 가진 외계의 ‘고등한 생명체’가 아주 오래전에 지구를 방문해 인류의 개화에 스승 노릇을 했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랬다면 그들이 왜 홀연히 떠났고, 왜 다시 오지 않는지, 아니면 왜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지 설명은 쉽다. 그들은 인간의 천박한 본성에 실망했을 것이다. 우상 숭배에 경악했을 것이다. 인류에게서 절망을 봤을 것이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에서 ‘설계자’가 인류를 몰살시키려던 것처럼.

신의 변호사 라이프니츠는 우리의 삶, 환경, 운명 등은 신에 의해 조화롭게 미리 짜인 각본이라며 낙관론을 설파했지만 후배 철학자 포이어바흐는 종교의 기원을 밝히며 신의 실체를 까발리는 주관적 확신을 주창했다. 또한 현대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아예 ‘만들어진 신’(원제 ‘신에 대한 망상’)으로 조목조목 신의 허상에 대해 진술했다.

포이어바흐에 따르면 종교란 끝없는 욕망을 갖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자기 투사에 시원이 있다. 왜 신은 꼭 사람의 모습으로 현전하는지 의문을 품는다면 포이어바흐에 쉽게 동조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동물의 머리를 한 이집트의 신이나 바람둥이(제우스) 등 결핍투성이인 그리스의 신에게서는 신비주의와 인간적 속성이 잘 결합된 유머가 보이긴 한다.

영화가 슈퍼히어로를 사람(혹은 닮은 존재)으로, 안타고니스트를 괴물로 상정하는 건 그런 인간의 종교적 신앙 심리를 꿰뚫는 상술이다. ‘그린 랜턴: 반지의 선택’이 실패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주인공을 제외한 그린 랜턴 멤버들의 외형이 괴물 같기 때문이다. 만약 타노스와 그의 부하들이 캡틴 아메리카나 토니 스타크처럼 미남이었다면 ‘어벤져스’가 그토록 크게 흥행할 수 있었을까?

이쯤 되면 결론은 어느 정도 자명해진다. 신은 ‘있다, 없다’를 논할 존재가 아니라 ‘뭣이 신인가?’가 중요하다. 범신론적 유물론자 스피노자는 아예 명쾌하게 ‘자연이 곧 신’이라고 명토 박았다. 신은 관념론과 인식론의 문제지, 유물론의 차원이 아니다. 그토록 신성하고 전지전능한 존재라면 하나의 물질은 아닌 게 확정 판명이 아닐까?

▲ '프로메테우스'.

종교는 물론 신화와 전설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유물론자는 인간이 신을 창작했다고 본다. 과연 신에 대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하이데거는 인간이란 존재를 시간성으로 해석(‘존재와 시간’)해 죽음에 대한 공포를 해결했다. 존재란 ‘본래적 존재(본질)에서 퇴락한 현존재(현재의 나)는 결국 본래적 존재로 되돌아가는 도래적 존재(미래의 영혼)로 발전해 영생한다’는 논리다.

역시 실존주의자인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즉자존재(본질적 존재)와 대자존재(밖으로 나와 즉자존재를 보는 또 다른 나, 無)를 상정해 존재자란 특별한 의미 없이 그저 우연히 존재하는 현상일 뿐이라는 현상일원론으로 모든 이원론을 초월했다. 현대의 민주주의 사상은 모든 인권은 동등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격도 동등할까? 인권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고, 인격은 인간의 품격, 즉 인간성의 수준이다. 인권평등의 논리와는 좀 다르다는 것은 굳이 아동학대 교사나 성범죄자 등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삼척동자도 알 수 있다. 신이 인간을 만들었든, 인간이 신을 만들었든 인간이 신을 롤 모델로 삼는 것만큼은 동일하다.

인간은 종국엔 플라톤의 불멸의 영혼이 되든, 하이데거의 도래적 존재가 되든, 사르트르의 주장대로 無化 하든 육체는 생기를 잃어 썩을 것이고,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는 영혼이 천국이든, 지옥이든 전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거나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영화 ‘왓치맨’의 자경단 중 닥터 맨해튼은 유일하게 신적인 존재자다.

자경단의 히어로 중 가장 전투력이 강하고, 엄청난 갑부인 오지만디아스(람세스 2세)는 제3차 세계대전으로부터 60억 명을 구하기 위해 수천만 명을 희생시킨다. 닥터 맨해튼 및 다른 동료들은 그의 인식론을 인정하고 눈감아 주려 하지만 로어셰크만은 진실을 밝히겠다고 나선다. 로어셰크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닥터 맨해튼이 어떻게 할지 알면서도 고집을 꺾지 않아 결국 희생된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생존 기간도 그리 길지 않다. 삶이 마냥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된 소크라테스는 돈 많은 친구가 간수를 매수해 탈옥시키려 하자 “내가 아스클레피오스(의술의 신)에게 빚진 닭 한 마리나 갚아주게”라며 독배를 들었다. 만약 플라톤이나 사르트르나 신이 우리에게 말할 수 있다면 ‘품격 있게 살다 가라. 그게 신처럼 사는 길이니’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슈퍼히어로 영화라도 단순한 상품이 아닌 다른 시점에서 즐길 수 있다. ‘왓치맨’은 특히.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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