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20년 전 축구 스타 펑(우멍다-오맹달)은 돈에 눈이 멀어 동료 선수 훙의 승부조작 제안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한쪽 다리에 장애를 입고 축구계를 떠난 뒤 현재 훙의 허드렛일을 해주며 감독을 꿈꾸고 있지만 지난 5년간 슈퍼컵 우승을 차지한 악마팀 구단주로서 거물이 된 훙은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거리를 헤매던 펑은 우연히 남루한 옷차림으로 소림 쿵후를 홍보하는 씽씽(저우싱즈-주성치)을 만나고 그의 엄청난 쿵후 실력이 축구에 접목될 경우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팀 창단을 제안한다. 소림 쿵후의 효과적인 홍보는 물론 먹고살 수 있는 묘책이라 생각한 씽씽은 소림사에서 함께 수련했던 옛 동료들을 찾아간다.

클럽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첫째 사형 무쇠머리, 백수인 넷째 번개손, 사업가인 셋째 틴,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 막내 공포의 뱃살, 식당에서 일하는 둘째 대머리, 그리고 다섯째 씽씽은 펑으로부터 기초를 배운 뒤 한 아마추어 팀과 친선 경기를 한다. 그러나 폭행을 일삼는 상대팀에게 전반전에 치욕을 당한다.

심기일전한 소림팀은 후반전에 정신력으로 옛 실력을 되찾은 뒤 보란 듯이 상대팀을 격파한다. 그러자 패배한 팀 멤버들이 팀원으로 받아달라고 요청한다. 드디어 성원을 이룬 소림팀은 펑이 훙에게 아부한 끝에 슈퍼컵 예선전에 출전할 수 있게 된다. 한편 씽씽은 기가 막힌 맛의 만둣집 주방장인 태극권 고수 무이(자오웨이-조미)와 친구가 된다.

무이는 다 떨어진 씽씽의 운동화를 수선해 줘 경기에 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소림팀은 돌풍을 일으키며 승승장구를 하는 가운데 만두 가게에서 회식을 한다. 무이는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씽씽은 친구 이상이 될 수 없다고 외면하는데. 저우가 각본, 감독, 주연을 맡은 영화 ‘소림축구’(2002)는 일단 재미있다.

저우는 홍콩 코미디 영화의 대가다. 클리셰, 신파, 과장으로 버무리지만 결코 식상하거나 유치하지 않으면서도 나름의 메시지를 내포했기에 그는 만만치 않은 마니아층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 영화는 그중에서도 상업영화로서 ‘쿵푸 허슬’과 더불어 양대 산맥이라고 볼 수 있다.

먼저 이 영화는 리샤오룽(이소룡)에 대한 존경심에서 시작된다. 초반에 씽씽은 “리는 최고의 발차기를 발명했다"라고 떠든다. 경기에서 골키퍼인 번개손은 대놓고 ‘사망유희’의 리의 노란색 트레이닝과 선글라스로 꾸미고 리 특유의 제스처를 노골적으로 흉내낸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결핍과 그것의 극복이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아니 현명한 사람일수록 자신에겐 잘난 면보다 못난 면이 더 많다는 걸 깨닫는다. 오죽하면 서양 최고의 현자로 손꼽히는 소크라테스조차 “내가 아는 유일한 건 내가 아는 게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을까? 씽씽은 허풍쟁이고, 무이의 만두를 무전취식할 정도로 도덕적으로도 결여돼 있다.

펑은 탐욕 때문에 탄탄대로였던 인생을 망쳤다. 지금은 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성공을 위해 원수인 훙에게 복수심을 감추고 아부할 정도로 가식적인 면도 있다. 한쪽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오래전에 축구장을 떠났다. 나머지 소림 제자들도 결정적인 핸디캡을 갖고 있다. 무쇠머리와 틴은 극도의 현실주의자다.

가난한 무쇠머리는 가족을 먹여 살리는 생계가 최우선이고, 틴은 ‘시간은 돈’이란 지론을 갖고 있다. 번개손은 무기력하고, 대머리는 “왜 내 아버지는 돈이 없을까?”라는 비관론자다. 공포의 뱃살은 오직 식탐 하나로 사는 ‘돼지’ 같은 무뇌아다. 무이는 아예 심한 피부병으로 보기 흉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서 항상 앞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살며, 태극권의 고수임에도 불구하고 위력적인 사장에게 항상 주눅 들어 고분고분하다 못해 굽실거리며 살고 있다. 이들은 그런 결핍과 상실을 ‘정신과 두 다리의 합일을 이뤄야 능력이 극대화된다’는 유물론과 관념론의 통일적 사상으로 극복해 나간다.

씽씽이 무이에게 미인이라며 머리로 얼굴을 가리지 말라고 자신감을 심어 주자 갑자기 미장원에 가서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과장되게 화장을 하며, 어깨에 마치 로봇처럼 과하게 뽕을 넣은 의상을 입고 나타난다. 만두 가게 사장은 비웃지만 씽씽은 그런 자신감과 자아실현을 순수한 마음으로 칭찬한다.

승승장구하던 소림팀은 결승전에서 만난 악마팀에게 악전고투한다. 특수 훈련과 미국산 특수 약물 복용으로 강화인간이 됐기 때문이다. 중화권은 예전부터 계속 미국이 불편했다. 과연 소림팀은 악마팀에게 이대로 패배할 것인가? 아니면 극적인 승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인가? 부드러운 게 진짜 강한 것이란 쿵후의 곡선의 미학이 해답이다.

소림팀이 파죽지세로 승수를 쌓자 유명 스포츠용품 회사에서 협찬이 쇄도하고 씽씽은 무이가 수선해 준 운동화를 외면한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교훈이다. 결승전을 앞두고 만둣집을 찾은 씽씽은 사장으로부터 만두 맛이 변해 무이를 해고했다는 말을 듣고 버려진 만두의 맛을 본다.

짜다. 그런 신파와 유치한 개그마저도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재주가 바로 저우만의 전매특허다. ‘쿵후는 완벽한 삶의 기술이지 싸움의 기술이 아냐’와 ‘축구는 전쟁이야. 인생도 전쟁’이라는 상치된 대사가 무도와 기예, 순수와 상업, 이상과 현실의 이원론을 대놓고 화두로 던져 놓곤 전자의 우위로 결론낸다.

저우의 영화에서 패러디나 유머는 필수. 처음 씽씽이 만둣집을 찾았을 때 그는 주변 사람들과 함께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한 군무를 펼친다. 소림팀이 준결승전에서 만난 팀은 외모가 특이하다. 여배우들이 수염을 붙이고 레게 헤어스타일로 남장을 한 것. 딱 한 시퀀스에 나오는 그녀들은 바로 장바이쯔(장백지)와 저우의 옛 연인 모원웨이(막문위)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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