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미인어’(2016)는 유명한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모티프로 한 건 맞지만 디즈니의 애니메이션과는 완전히 다른 저우싱즈(주성치) 감독 특유의 B급 코미디의 외피로 치장한 참된 사랑과 자연 보호에 관한 영화다. 인어들은 아직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청정지역 칭뤄만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돈밖에 모르는 젊은 부동산 재벌 류 사장(덩차오)이 이곳을 사들여 소음으로 특정 어종을 쫓아낼 뿐만 아니라 생존에 심각한 피해를 끼치는 소나라는 기계를 설치하고 무분별하게 개발하려 한다. 바다에서 생존할 수 없는 인어들은 소나를 피해 해안의 한 폐선에서 살아간다.

이 생존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어들의 리더 문어오빠(뤄지지앙)는 그들 중 가장 예쁜 산산(린윤)을 류에게 접근시켜 미인계로 홀린 뒤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산산은 류의 집에 무단 침입해 전화번호를 주고 유혹하지만 여자들이 많은 류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류는 미모의 자산가 리 사장(장유기)에게 투자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녀와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류는 리의 콧대를 꺾기 위해 산산을 불러들인 뒤 이용만 하고 돌려보내려 하지만 그녀와의 시간이 쌓일수록 힘들었던 과거가 떠오르는 한편 그녀의 순수함에 이끌리게 된다. 산산 역시 류에게서 외로움을 읽고 어느덧 그를 죽여야 할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점점 빠져들며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류가 갑자기 산산의 집으로 찾아오고 문어오빠 등은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를 생포한 뒤 죽이려 한다. 절체절명의 위기 때 산산이 문어오빠의 다리를 잘라 류를 구해 주는데. 저우가 얘기하고자 하는 건 명확하게 환경 보호와 진정한 사랑에 대한 테제, 그리고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고다.

인트로에서 인류가 얼마나 환경을 파괴하고 있으며 다른 종을 궤멸시키고 있는지 다큐멘터리 화면을 빌려 보여준다. 그러고는 세계희귀동물박물관이라는 얼토당토않은 걸 차린 한 사기꾼을 통해 인간의 이기적인 호기심과 그걸 이용해 돈을 벌고자 생태계를 파괴하는 장사꾼들을 조롱한다.

인어족의 정신적 지주인 장로는 인간의 조상은 물고기라며 다윈의 ‘진화론’을 인용한다. 그런데 지구의 지형이 변하면서 그중 일부 유인원들이 바다에 정착할 수밖에 없었고, 세월이 흐를수록 물속에서 필요 없는 다리가 지느러미로 변화했다고 ‘진화론’ 속의 환경적응 이론으로 인어족의 역사를 설명한다.

또 인간은 지식을 쌓고 과학이 발달할수록 더욱 포악해졌다고 설명한다. 인어족이 인류를 피해 바닷속 깊은 곳으로 숨어야 했던 이유. 류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워낙 빈한했기에 길거리의 쓰레기통을 뒤져 취식을 할 정도였다. 어느 날 평소라면 먹을 수도 없을 닭다리 하나를 아버지가 가져왔다.

역시 길에서 주운 것. 그러나 굶주린 소년에게 그보다 큰 사치는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소년은 커서 꼭 억만장자가 되고자 결심했고 성취했다. 그는 “난 놀고먹는 재벌 2세와 달라”라고 주장한다. 그는 손님에게 3000만 원짜리 로마네 콩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놓는 갑부다. 그런데 길거리 통닭에 감격한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과거가 떠오른 것이다. 올챙이적 생각 못 하고 잘난 체에 심취해있던 그는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비뚤어진 인식론의 재점검이다. 음식은 비싼 게 맛있는 게 아니다. 순수한 영혼의 산산과 함께 먹는 싸구려 통닭, 하지만 과거의 추억이 있고, 부자가 되고자 이를 악문 동인(動因)이라는 걸 새삼스레 깨닫고 가족이 생각난 것이다.

류는 자신의 목적대로 리를 자극하는 데 이용한 산산에게 수고비로 100만 위안짜리 수표를 준다. 하지만 그녀는 그대로 통닭구이통에 던진다. 그녀는 청뤼안을 왜 개발하려 하느냐고 묻고 류는 돈이 최고라고 답한다. 그러자 산산은 “깨끗한 물과 공기가 없다면 돈이 많아도 죽을 수밖에 없다”라는 명언을 남긴다.

1억 7000만 원짜리 수표를 휴지 취급하는 산산에게 류는 “너 누구야? 목적이 뭐야?”라고 묻는다. 그녀의 답은 “당신 좋아하는 평범한 여자”다. 그녀는 ‘천하무적은 외로워’라고 노래 부르며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듯하지만 사실 진정한 친구 단 한 명도 없는 류의 외로움을 알아보고 달래준다.

류가 가짜 수염을 붙이고 다닌다는 건 그런 그의 정체성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그에게 꼬리치는 여자들이나 아부하는 남자들 모두 오직 목적은 돈 하나다. 그런 살벌한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류 역시 강한 척할 수밖에 없다. 내면에 도사린 과거의 자격지심과 외로움이라는 콤플렉스를 감추기 위해 근엄하고 강한 척 가짜 수염을 붙인 것.

문 뒤에서 류를 죽이기 위해 인어들이 포진한 집 앞에서 산산은 묻는다. “만약 1분밖에 살지 못한다면 뭘 할래요?”라고. 그러자 류는 “당신만 바라볼 거예요”라고 답한다. “사랑은 포용과 인내다. 규칙과 한계를 초월한다”라는 확고한 명제로 사랑에 대해 정의를 내리는 저우의 영원한 표제는 여전하다.

다소 잔인한 장면도 있지만 저우 특유의 ‘병맛 코미디’가 전편에 걸쳐 넘실댄다. 류를 암살하기 위해 셰프로 변장한 문어오빠가 자신의 다리를 자르고 구워 요리를 하는 시퀀스라든가, 인어들에게서 도망친 류가 경찰서에 달려가 피해 사실을 밝히자 경찰들이 엉뚱하게 인어의 몽타주를 그리는 식이다.

그 몽타주 시퀀스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조소다. 리 사장이 의외의 반전을 담당해 액션의 재미를 주고, 산산에 의해 변모한 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최소한의 양심을 부르대는 교훈을 던진다. 류는 젊은 해양생물학자에게 “과학자는 객관적이어야 한다”라는 반어적 표현으로 인간이 동물과 차별화될 수 있는, 중요한 감성을 강조한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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