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한의사 홍무석의 일사일침(一事一針)] 한의학에서 말하는 양기(陽氣)·음기(陰氣)를 성적(性的)으로 연상하는 경우가 많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기(氣)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다른 것을 움직이는 힘이다. 어떤 사물이 다른 사물에 미치는 영향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기를 음양으로 나누면 남자는 양, 여자는 음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남자도, 여자도 다시 음과 양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적 표현으로 양기는 에너지, 음기는 모양이나 물질적 기초로 설명하고 있다.

우주 만물이 음양의 관계를 갖고 있다는 음양이론에 기반을 둔 한의학에서는 기가 한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음에는 양, 양에는 음이 있어야 하고 음이 부족하면 보음제를, 양이 부족하면 보양제를 처방하게 된다.

음양의 기운은 하루 중에도 바뀐다. 밤이 되면 양기가 떨어지고 음기가 올라오게 된다. 아침이 되면 음기가 내려가고 다시 양기가 올라오면서 심장이 빨라지고 혈액이 돌게 된다. 그런데 밤이 됐는데도 양기가 떨어지지 않으면 잠을 못 자게 된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의학서로 꼽히는 황제내경(黃帝內經)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양기쇠 음기성(陽氣衰 陰氣盛)하면 잠들고, 양기성 음기쇠(陽氣盛 陰氣衰)하면 깬다”는 것이다. 밤에 우리 몸에 양기가 성하고 음기가 허하면(陽盛陰虛) 잠을 못 잔다는 의미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밤에 실내를 비추는 장비나 장치가 없던 아주 오랜 옛날을 생각해보자. 수 천 년, 수 만 년 전에는 어둠이 찾아오면 잠자리에 들었을 테고, 그 사이클이 우리 몸에 유전자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걸 밤에 양기가 떨어지고 음기가 성하는 것으로 한의학에서는 관찰하고 기록해 놓았다.

그런데 전기·전자 기술의 발달로 밤에 양기를 성하게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밤늦게까지 TV나 휴대폰을 보면서 성해야 할 음기를 말리면 피부가 건조해지고 화와 열이 생기게 된다. 성격도 급해져 신경질적으로 변하게 된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양기·음기를 믿을 게 못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정말 그럴까? 한의학도 오랜 임상결과를 지켜보고 기록한 학문이다. 한의학의 이론이 현대과학으로도 실증되고 있다.

현대과학은 우리 몸을 ‘생체시계’에 비유해 밤에 잠을 자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의 몸에는 지구 자전에 맞춰 하루를 기준으로 수면, 호르몬, 심박수 등 생체 리듬이 시간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뇌가 생체시계를 조절한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잠잘 시간을 알려주는 것은 멜라토닌을 분비하면서다. 성인은 저녁 8시쯤 분비되기 시작해 10시쯤 양이 늘어나고 새벽 2~3시쯤에는 양이 가장 많아 깊은 잠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한의학 관점에서 음기가 성하는 시점으로 볼 수 있다.

옛말에 ‘잠이 보약’이라고 했는데 밤에 음기대신 양기가 성하면 수면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수면이 부족하면 뇌 발달에 악영향을 미치고 신체건강에도 문제가 생긴다. 미국의 피츠버그대 연구팀은 수면 시간이 6시간 이하면 생체 조직이 손상되고 염증이 생겨 질병에 걸리기 쉽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국내 연구에서도 7시간 이하로 자는 청소년은 더 많이 자는 청소년보다 우울한 감정이 1.4배 높고, 수면이 부족하면 비만 위험도가 2배 이상 증가한다는 결과가 있다. 그런데 꼭 숫자가 있어야 믿게 되는 걸까.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는 성경구절도 있다.

▲ 한의사 홍무석

[홍무석 한의사]
원광대학교 한의과 대학 졸업
로담한의원 강남점 대표원장
대한한방피부 미용학과 정회원
대한약침학회 정회원
대한통증제형학회 정회원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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