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삶의 지혜를 전달해 주는 영화는 무수하게 많은데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로브 라이너 감독, 2007)은 그중 필독서로 손꼽기에 손색이 없을 듯하다. 자동차 정비사 카터(모건 프리먼)는 대학 때 연인 버지니아가 임신하는 바람에 중퇴하고 지금까지 아내와 3남매를 위해 헌신해 왔다.

에드워드(잭 니콜슨)는 자수성가한 백만장자 사업가이지만 성격이 괴팍해 친구도 없고 4번의 이혼 끝에 얻은 유일한 딸 에밀리와는 연을 끊고 혼자 살고 있다. 주로 병원 사업을 하는 에드워드는 암 선고를 받는데 자신이 정한 ‘1실 2인’ 원칙 때문에 비슷한 병으로 입원한 카터와 한 병실에 입원한다.

두 사람은 백인과 흑인, 부자와 서민, 독불장군과 가정적인 성향, 코피 루왁과 인스턴트커피 기호 등 모든 게 다르지만 길어야 1년 시한부 인생이라는 처지와 한 방을 쓴다는 이유로 급격하게 친해진다. 어느 날 에드워드는 카터의 메모지를 발견하고 그게 죽기 전에 해 보고픈 버킷리스트인 걸 알자 제안을 한다.

자신은 엄청난 부자이니 각자의 버킷리스트를 다 적은 뒤 그걸 함께 해내자는 것. 그렇게 그들은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스카이다이빙 등 지금껏 살면서 바쁘거나 두렵거나 유치해서 피했던 경험들을 과감하게 섭렵해 나간다. 그런데 히말라야 등반을 앞두고 폭풍이 밀려오는 바람에 정상 등반을 포기한다.

3달간 동행하며 카터는 에드워드가 4번 결혼했고, 딸 에밀리가 있음을 알게 되자 에드워드의 비서 톰과 짜고 귀국할 때 차를 에밀리의 집으로 향하게 만든다. 그러자 에드워드는 격하게 분노하며 카터와 톰을 밀쳐 낸 뒤 혼자 집으로 가는데. 두 주연배우의 연기력이 보증수표인 데다 라이너 감독이 백전노장이므로 퀄리티는 보장된다.

애초부터 목표를 정하고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흔히 어릴 때 커서 뭐가 되고 싶다고 희망을 말하지만 그건 자신의 능력, 취향, 환경 등을 고려하지 않은 막연한 동경심의 발로이기 십상이다. 대학에 입학해서야 비로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진로가 정해지고 사회에 진출하고부터는 대개 관성적으로 생계를 위해 뛰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자식을 독립시키고 배우자와 단둘이 된, 혹은 홀로 남은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때에도 여생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어떻게 죽을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 노후 대책 마련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생은 한 번밖에 없다. 지난날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아니라 남은 날을 어떻게 살 것인지가 중요하다.

100보, 1000보 양보해 불교의 윤회설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별 의미가 없다. 왜냐면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윤회설은 존재론적 문제다. 현존재는 전생에 호랑이였을 수도, 달팽이였을 수도 있지만 기억을 못 한다. 플라톤의 영혼불멸론에 따라 육체는 썩어도 영혼은 존재한다면 하이데거에 대입하면 현존재인 내가 죽으면 영혼은 호랑이였던 시절의 영혼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그러다 그 영혼은 언젠가 어떤 신생아의 육체에, 혹은 새로 태어난 강아지의 몸에 들어갈 것이지만, 전생은 여전히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의 인격체로 태어난 현재의 삶에 열중하는 게 중요하다. 인간의 개체로 태어난 이 삶에 대한 충분한 즐김과 만족감과 행복감만이 지상 최대의 목표다.

감독은 대척점에 선 에드워드와 카터라는 두 인물을 통해 인생무상과 삶의 진정한 보람과 성취감을 웅변한다. 카터는 신을 믿지만 에드워드는 믿음 자체가 없다. 신도, 인간도 안 믿는다. 그의 인식론은 모든 게 돈으로 귀결되니까. 카터는 이집트의 신 아누비스의 입을 빌려 사자의 천국행을 결정하는 질문 두 가지는 ‘삶의 즐거움을 찾았나?’와 ‘자신의 삶이 타인에게도 즐거움을 주었나?’라고 말한다.

그리고 에드워드에게 쓴 편지에서 ‘삶의 기쁨을 찾게’와 마지막 버킷리스트 ‘모르는 사람 돕기’를 웅변한다. 12세기 유대교 철학자 마이모니데스는 8단계로 자선의 등급을 설명한 바 있다. 가장 허접한 1단계는 ‘억지로 베푼 자선’이고 제일 높은 8단계는 ‘불우한 사람이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자존심을 회복하며, 그가 다른 사람에게도 자선을 베풀게 만드는 자선’이다.

에드워드는 사업 수완이 좋고, 자본주의 기준으로는 합리적인 사람이다. 비록 정도 없고, 친절하지도 않으며, 유머 감각도 없지만 경제적으로 승승장구하며 세상의 모든 풍요를 누리므로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별로 불만을 갖지 않을 만한 사람이다. 그가 고집하는 최고급 커피 코피 루왁은 사실 고양이의 배설물이다.

인식론에 따라 다르겠지만 후반에 그는 카터로부터 그 진실을 듣고 박장대소한다. 그렇다. 아무리 자본주의 체제인지라 황금만능주의 사상이 대다수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인간의 삶과 행복의 가치는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점은 많은 사람들이 주지하고 있기는 하다.

코피 루왁은 바로 그걸 직각적으로 알려 주는 장치다. 에드워드가 코피 루왁을 마시는 건 자부심이지만, 카터가 인스턴트커피를 마시는 건 자신감이다. 비록 값은 싸지만 내 기호에 맞고, 게다가 내 지갑에 큰 위협을 안 주니 일석이조인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란 명제는 남에게 도움을 받으란 뜻인 동시에 남에게 도움을 주란 뜻이다.

카터가 ‘자신의 삶이 타인에게 기쁨을 줬냐?’라는 신의 질문을 빌린 건 그런 사회적 동물로서의 책임감과 성취감을 말한다. 자신은 물론 남에게 솔직할 줄 알고, 감정을 외면하지 말며, 내게 많은 것을 남에게 나눠줄 줄 아는 자선! 그렇게 산다면 눈을 감을 무렵 후회도 회한도 없을 것이니! 에드워드가 카터에게 베푼 자선은 4~5단계 정도였는데 카터의 8단계의 자선으로 깨달음을 얻은 후 자신도 8단계에 이른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