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니키타’(뤽 베송 감독, 1990)는 ‘레옹’(1994)보다는 덜 세련되긴 했지만 그걸 예고하는 서곡으로서 소외와 사랑에 대해 담고 있는 메시지와 표현하는 방식만큼은 매우 강한 진동을 지녔다. 19살 니키타(안느 파릴로드)는 부랑자 친구들과 강도질을 하다 경찰을 총으로 쏴 죽이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재판정에서도 난동을 부린 그녀가 깨어난 곳은 감옥이 아닌 정부가 만든 킬러 양성소. 담당 요원 밥(체키 카료)은 그녀는 공식적으로 죽었다며 일정한 교육을 수료한 뒤 킬러로서 활동을 하든가, 아니면 묘지에 묻히든가 결정하라고 선택지를 던진다. 니키타는 밥의 권총을 빼앗아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하자 훈련을 시작한다.

그녀는 교관의 귀를 물어뜯는 등 갖은 말썽을 부리며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지만 상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밥은 그녀에겐 가능성이 있다며 커리큘럼을 강행군한 끝에 드디어 4년 뒤 그녀를 완벽한 킬러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23살 생일 선물로 고급 레스토랑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에게 맡겨진 첫 임무. 밥은 레스토랑에 보디가드들을 끌고 온 중국계 마피아 두목을 처치하라며 도주로를 가르쳐 준다. 니키타는 임무를 완수하고 밥의 지시대로 움직이지만 도주로는 막혀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마피아들과의 총격전을 치르고 본부로 돌아온 니키타는 분노한다.

하지만 밥은 임기응변 역시 교육 과정 중의 하나였다며 드디어 내일 바깥세상으로 독립시켜 준다고 말한다. 다음날 니키타에겐 마리라는 간호사 신분과, 월급과, 숙소가 제공된다. 들뜬 그녀는 마트에서 음식을 잔뜩 산 뒤 계산원 마르코(장 위그 앙글라드)에게 다짜고짜 데이트를 신청하고 둘은 연인이 된다.

니키타는 마르코의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약혼을 하고 마르코의 눈을 피해 국가가 내리는 임무를 잘 수행한다. 어느 날 마르코는 왜 집에 가족이나 친구를 초대하지 않느냐고 묻고, 니키타는 밥을 삼촌으로 위장시켜 저녁 식사에 초대한다. 밥은 약혼 선물이라며 베니스행 티켓을 내미는데.

일단 여성 킬러 영화의 전범으로서 영화계에 남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의 가치의 눈부심은 입증된다. 정병길 감독의 ‘악녀’(2017)가 오마주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부랑자 생활 때의 니키타는 보편적인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될 캐릭터다. 상점을 털 때 동료의 권총을 줍더니 아무 죄가 없는 경찰에게 쏜다.

살인죄로 조사를 받을 땐 연필로 경찰의 손등을 찍는다. 이토록 광기에 가득 찬 이유는 소외됐기 때문이다. 가족에게 버림받았을 것이다. 그러니 철저하게 사회로부터 유리될 수밖에. 도저히 여자라고 볼 수 없는 거친 더벅머리와 조롱하는 듯한 말투는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녀만의 위장막이었을 것이다.

처음에 밥이 나라를 위해 일하지 않겠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대답하기 전에 잠깐 자면 안 돼요?”라며 잠든다. 지금까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 주는 시퀀스다. 처음 마트에 갔을 때 그녀는 뭘 사야 할지 몰라 한 부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녀가 집는 걸 닥치는 대로 주워 담는다.

절도나 강도 외에 지금까지 쇼핑을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토록 그녀가 사회 부적응자인 것은 소외됐기 때문인데 이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류의 유배생활을 말한다. 초반의 니키타와 마르코를 만난 이후의 그녀는 완전히 다르다. 당연히 그녀의 본래적 자아는 중반 이후의 감성적인 인물이다.

그녀가 초반에 럭비공 같은 캐릭터를 보인 것은 사회에서 유리됐기 때문에 자신에게마저 소외돼 자아가 낯설어졌기 때문이다. 프랑스인인 베송은 “광기가 이성의 결핍이 아니라 일종의 과잉인 한 결코 이성을 상실한 게 아니다”라고 말한 자국 철학자 알랭을 대입해 니키타를 창조한 듯하다.

광기에 대한 배척을 반대한 미셸 푸코도, 인간 내면의 인간성을 옹호한 장 자크 루소도 역시 프랑스 철학자이다. 똘레랑스라는 관용과 포용의 정신을 지닌 프랑스인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영화다. 특히 밥이 그렇고, 니키타나 마르코 역시 마찬가지. 밥이 그녀를 사회적 구조 안으로 들어오게끔 변화시킨다면 여자로 바꾸는 인물은 기관 내 미용실의 할머니 아만드다.

그녀는 “여성에겐 여성다움과 그걸 이용하는 두 가지 특권이 있지”라며 선머슴 같은 니키타의 머리에 가발을 씌워 준 뒤 원래의 헤어스타일을 가지런하고 여성스럽게 바꿔 준다. 그러자 니키타는 립스틱을 바르는 등 화장을 하고 아만드가 내준 드레스를 입고 비로소 잃어버렸던 내면의 자아를 찾는다.

알랭이 결정론을 경멸하고 개개인의 판단의 자유를 중시한 것은 유명하다. 그는 “판단의 자유야말로 권력이나 권위에 의해 발생한 인류의 부패에 대항할 수 있는 원리”라고 주창했다. 파스칼은 비록 지나치게 종교적이긴 했지만 실존주의적 측면에서 진리와 행복의 추구만큼은 설득력이 있었다.

결국 니키타가 가장 박탈당했고, 그래서 그녀에게 가장 절실했던 건 사랑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임무 때문에 그녀를 가르쳤던 밥은 변전하고 성장한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드디어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니키타는 그에게 ‘마지막 키스’를 한다. 그리고 나가자마자 만난 마르코와 판단의 자유적인 사랑에 빠진다.

초대된 식사 자리에서 밥이 마르코에게 니키타의 과거를 조작해 아름답게 꾸며 대는 이유는 그녀를 사랑하는 차원을 초월해 아끼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마르코는 어렴풋이 그녀의 정체를 눈치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야 그걸 알리는 이유는 “난 너만 사랑하니까”이기 때문이다. ‘레옹’과 유사하지만 디테일은 매우 다른 사랑을 주제로 한 킬러 장르의 수작!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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