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다큐멘터리 영화 ‘밥정’(박혜령 감독, 2020)은 사전엔 없지만 식구라는 단어와 유사한 개념의 밥情이란 제목을 통해 셰프 임지호(65)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그가 자연에서 채집한 온갖 재료들로 예술 작품에 가까운 요리를 정성 들여 만들어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과정과 더불어 대한민국의 수려한 풍광과 함께 보여 준다.

임지호가 태어났을 때 4명의 누나가 있었고, 아버지는 한의사였다. 세상 물정을 어느 정도 알 나이가 됐을 때 친엄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아내가 아들을 낳지 못하자 첩을 들였는데 그녀는 임신한 사실을 모른 채 아버지와 헤어져 임지호를 낳고 그가 2살 때 아버지에게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서자라고 손가락질을 받은 그는 11살에 가출했다 허기를 못 이기고 귀가했는데 키워 준 엄마가 자신을 보고 우는 모습에 키운 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요리를 배워 호텔에 취업하는 등 조리사로서 꽤 명성을 날렸지만 ‘방랑식객’이란 별명대로 사표를 던진 뒤 오늘에 이른다.

결혼을 했지만 나중에 서자 출신임을 숨긴 것이 드러나 결국 파경을 맞았다. 그의 가슴속엔 항상 얼굴도 모르는 생모와 자신을 가슴으로 낳고 길러 준 양모가 동시에 존재했다. 일찍 자립했기에 미처 양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생모에 대한 안타까움은 손톱 밑의 가시였다.

그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건 ‘혹시라도 생모와 인연이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생모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기대감과 그리움 때문이었다. 아니, 어쩌면 자아에 대한 연민이 들볶아 대는 허무의 숨바꼭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탄생과 존재의 근거를 찾아 헤맨 것이든지.

그는 두 명의 엄마 때문에 길에서 만난 노파에게 특히 정을 베풀었다. 그러던 중 만난 할머니가 지리산에 사는 김순규 씨. 이 영화가 완성된 2018년 즈음에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까지 10년간 ‘엄마’로 모시며 살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그가 전국 각지를 떠돌며 자연에서 식재료를 구하고 그걸로 처음 만나는 노인들에게 정성스레 요리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크린에 담긴 청각 초밥, 솔방울 국수 등 기발하되 건강하고 맛깔난 그의 요리는 직접 맛볼 수는 없지만 비주얼만으로도 침샘과 눈물샘이 동시에 요동친다. 그건 훌륭한 건강식인 동시에 정이니까. 구질구질하게 비가 내리는 어느 날 임지호는 예외 없이 산속을 헤매며 식재료를 구하다 제작진의 방문을 받고 김 씨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그는 김 씨의 집에서 혼자 1박2일 동안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제사상을 차리고는 고인의 가족과 지인 등을 초대한다. 그 제사상은 비단 김 씨만을 위한 차림이 아니라 생모와 양모 모두를 향한 임지호의 그리움이다. 그뿐만 아니라 생래적 결핍을 지닌 세상 모든 ‘사생아’들을 위무하는 만찬이다.

외형적으론 임지호의 따뜻한 마음으로 지은 한 끼 밥상과 시골 노인들의 훈훈한 인심이 이어지는 인생사의 휴머니즘인 듯하지만 그 내막엔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사계절과 임지호의 개인적인 공허함이란 양극단의 감정이 오월동주를 한다. 인트로는 삭풍이 거세게 몰아치는 한겨울의 황량한 들판을 임지호가 홀로 걷는 장면이다.

그의 인생 여정이 순탄치 않았음을 대놓고 웅변하는 시퀀스. 그리고 바다 인서트가 살짝살짝 삽입된 후론 시종일관 산이다. 대한민국은 산이 많은 나라다. 그만큼 산세도 수려하다. 임지호가 산채를 캐서 조리하려 하자 식사에 초대된 한 동네 노파가 특정 풀을 가리켜 그건 못 먹는 것이라고 거부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임지호는 고집을 꺾지 않고 조리해 내놓았고, 그걸 먹어본 노파는 입안 가득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임지호는 한의사인 부친으로부터 각종 약재에 대해 많이 배웠다며 외려 그 산채는 몸에 좋다고 설명한다. 그가 선택한 재료는 저마다의 약용 효과가 있고, 완성한 요리는 비주얼까지 훌륭했다.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알려진 임지호의 인생 스토리를 이 영화에 대입하면 운명론(결정론)이 엿보인다. 한의사 아버지의 아들로 태어난 점, 젊어서부터 방랑벽이 있었던 점, 일찍 요리사로 진로를 정한 점 등을 비롯해 가정환경 등은 지명도 높은 오너 셰프로서 큰돈을 벌 수도 있을 법한데 강화도에 소박한 식당 하나 차려 놓고 전국을 떠돌며 재능기부를 하는 그의 운명을 예고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스크린에 구현되는 그의 요리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결코 화려하게 포장되진 않는다. 외려 마지막에 등장하는 제사 요리는 익히 눈에 익어서 평범할 정도다. 그런데 감독은 유려한 연출 솜씨로 관객들의 눈물을 쥐어짜는 재주를 부린다.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 데도 눈물이 난다. 자연 풍광이 아름다워서일까, 한국인 특유의 정서 때문일까?

만약 임지호가 방송 출연으로 스타덤에 올라 사업에서 승승장구하는 몇몇 유명 셰프들처럼 서울 도심에 대형 식당을 운영 중이거나 프랜차이즈까지 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가식일 것이다. 하지만 시종일관 허름한 옷차림으로 80대 노파에게 “곱다”라고 말하며 묵묵히 대가 없는 봉사를 하는 영화 속 모습이 실제 우리에게 알려진 그이기에 이 영화는 심장의 감동인 동시에 혈관의 통증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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