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기예르모 델 토로의 걸작 ‘셰이프 오브 워터’(2017)와 흡사한 포스터를 한 ‘파리의 인어’(마티아스 말지우 감독, 2020)는 그 작품과의 상대평가가 좀 곤란한 동화 같은 판타지 로맨스이다. 40살 독신 가스파르(니콜라스 뒤보셸)는 일과가 끝난 저녁엔 아버지가 운영하는 선박 카페 플라워 베르제에서 노래한다.

어느 날 카페 옆 강둑에서 상처를 입고 쓰러진 인어 롤라(마릴린 리마)를 발견해 병원에 데려가지만 접수대 직원은 의료보험증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다. 빅토르와 미레나는 그 병원에 근무하는 부부 의사이다. 빅토르는 바람 쐬러 나왔다가 툭툭(삼륜차)에 실린 롤라를 보고 첫눈에 반한 뒤 쓰러진다.

병원에서 퇴짜를 맞은 가스파르는 할 수 없이 롤라를 집에 데려와 욕조에 눕힌 뒤 상처를 치료해 준다. 바로 옆집에 사는 중년의 독신녀 로시는 가스파르의 친구지만 때론 스토킹 수준의 관심을 보인다. 가스파르와 롤라의 대화를 엿들은 그녀는 다음날 가스파르가 출근하자 몰래 들어와 롤라와 친구가 된다.

로시는 실수로 담배와 라이터를 두고 나가고 호기심을 느낀 롤라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가 화재를 내고 만다. 퇴근한 가스파르는 집안이 홀랑 다 타는 바람에 아끼는 물건들이 소실됐음에도 롤라가 소방대원에게 안 들키고 잘 숨은 데 안도하며 그녀를 로시 집의 욕조로 옮긴다. 빅토르는 끝내 숨진다.

남편의 죽음에 의문을 느낀 미레나는 병원 앞에서 파란 피와 커다란 비늘을 발견한다. 이를 조사한 끝에 롤라의 존재를 알게 된 그녀는 가스파르의 집에 침입해 페이퍼 커팅 그림책을 가져온다. 가스파르는 하루빨리 롤라의 상처를 낫게 해 바다로 돌려보내려 하고, 미레나는 롤라를 잡고자 하는데.

꿈과 사랑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동화이다. 꿈과 사랑은 이음동의어고, 곧 낭만과 상상력과도 같다. 플라워 베르제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가스파르의 할머니가 개업했다. 레지스탕스가 주 손님이었고, 시인들이 모임도 가졌다. ‘노아의 방주’인 동시에 암울한 전시에 예술가들의 유일한 살롱이었던 것이다.

이는 사람들의 꿈과 낭만을 의미한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동화적 상상력과 희망의 나래를 잃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 지 오래고, 가스파르의 아버지는 상처까지 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가스파르가 가장 아끼는 녹음 부스만 남긴 뒤 나머지 골동품들과 함께 플라워 베르제를 매도하려 한다.

세월의 무게에 눌린 고난의 더께가 어깨에 내려앉은 아버지에게 있어서 삶은 무참한 현실이다. 꿈은 그저 무의식 세계 속에서나 펼쳐지는 허황된 망상일 뿐 눈을 뜨고 걸어가는 이 현실 세계에서는 냉정한 계산만이 살 길이다. 그러나 가스파르는 꿈을 잃지 않았다. 롤러스케이트로 출퇴근을 하고 피곤을 잊고 퇴근 후 노래를 부르는 근거이다.

그 이유는 여러 번 사랑에 실패를 했기 때문이다. 실연의 이유는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조건이 한참 모자랐던 데 있다. 이 시대의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시작될 수 있지만 결국 중간 과정 이후는 ‘조건’이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조건이 담보이다. 가스파르는 그 조건을 맞출 자신도,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매번 실패했던 것이다.

롤라는 마지막 인어이다. 어부는 그물에 걸린 인어를 풀어 주기는커녕 해치려 들었고, 그래서 인어는 자신이 가진 아름다운 노래를 어부를 죽이는 무기로 바꿨다. 하지만 이기적이고 잔혹한 인간의 폭력성을 그 어떤 종이 이겨낼 수 있을까? 그녀가 센강변까지 흘러온 것도 그 공격을 피해서였다.

인어는 사랑을 모른다. 아니 인간 때문에 생존의 문제에 급급해 이제는 잊었다. 대신 인간의 사랑의 감정을 이용해 살해하는 방법을 배웠다. 빅토르는 롤라의 노래를 듣고, 그녀의 눈동자에 빠져 죽었다. 그런데 가스파르는 멀쩡하다. 그동안의 수십 차례의 실연으로 심장이 터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의 집은 각종 피규어, 장난감, 골동품, 그리고 음악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고양이 이름이 조니 캐쉬(미국의 유명 컨트리 가수)이다. 그는 롤라를 바다로 돌려보내기 전 듀엣으로 녹음을 한다. 여기엔 사람들이 라이브가 아닌 레코드로 그녀의 노래를 들을 경우 죽지 않는다는 설명이 감춰져 있다.

저우싱즈의 ‘미인어’의 자연보호의 캐치프레이즈가 슬며시 녹아 있는 것. 플라워 베르제는 유령이고, 유령은 곧 추억이다. 사람이 롤라의 노래를 들으면 죽는다는 설정은 그리스 신화의 시렌과 일맥상통한다. 바다(자연)를 노하게(훼손하는) 하는 인간에게 내리는 신과 자연의 섭리적 징벌을 말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에 경도되고 과학적 증명 외엔 믿지 못하게 된 순간부터 인간에게선 상상력이 고갈됐고, 인간미와 순정은 산업 쓰레기 더미에 깔렸다. 어느 순간부터 가스파르는 가슴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사랑하면 어때요?”라고 묻던 롤라도 가슴에서 쓴맛을 느끼게 된다.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아서 기뻐요”라고 반어법으로 얘기하던 그녀였다. 미레나와 그녀의 병원, 그리고 의료보험증은 과학과 물질문명 그리고 이성과 형식을 뜻한다. 롤라의 눈물이 금과 다이아몬드가 박힌 진주라는 건 보물은 현대인이 추구하는 천박한 물질만능주의가 아니라 다른 데 있으며 정작 찾으려 하거나 지키려고 집착하지 않을 때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애니메이션과 페이퍼 커팅 예술이 가미된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운 동화이다. 고전 ‘인어공주’와 현대 프랑스 예술 영화의 격을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총성 없는 경제 전쟁이 인성과 인격을 황폐화시키는 이 시대에 과연 사랑은 불필요한 것일까? 오직 물질적이고, 욕구적인 욕망의 추구만이 최고일까? 이 영화는 진주 눈물을 돌 같이 여기며 묻는다. 보석보다 소중한 게 인간의 눈물이라며.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