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천문학자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칼 세이건은 자신의 시그너처 저서인 ‘코스모스’와 더불어 그의 저작 중 유일한 소설 ‘콘택트’로 유명하다. ‘콘택트’(1997)는 그것을 원작으로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스크린에 옮긴 수작 SF다. 물론 드니 빌뇌브 감독의 ‘컨택트’와는 전혀 다르다.

천문학 박사 엘리(조디 포스터)는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고 홀아버지와 살았지만 그마저도 9살 때 잃었다. 어릴 때부터 무선통신을 하고 별을 보며 꿈을 키워 온 그녀는 외계 지적 생명체 탐구 프로젝트에 참여했다가 신학자 팔머(매튜 맥커너히)와 인연을 맺는다. 그러나 정부가 예산을 끊자 의도치 않게 팔머와 멀어진다.

엘리는 우여곡절 끝에 정체불명의 갑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내는 데 성공해 켄트 등 팀원들을 데리고 국가 소유의 전파 망원경으로 연구를 계속한 끝에 드디어 외계에서 보낸 메시지를 포착하는 데 성공한다. 그건 26광년 떨어진 거문고자리의 중앙에 위치한 베가 성에서 보낸 것이었다.

메시지 중 동영상을 분석해 보니 1936년 나치가 베를린 올림픽 때의 히틀러 연설 영상을 우주로 보냈던 것을 되돌려 보낸 것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기성 정교가 더욱 득세하고, 사이비 종교가 판을 치는가 하면, 나치주의가 부활하는 가운데 히틀러 생존설까지 대두되는 등 종교, 미신, 과학이 광분하게 된다.

정작 메시지의 핵심을 못 풀어 답보상태에 빠져 있을 때 미지의 존재가 엘리를 호출한다. 그는 바로 엘리의 연구를 후원해 준 갑부 헤든. 그는 메시지가 2차원이 아닌 3차원이라고 자신의 분석 결과를 건네준다. 그건 바로 먼 우주로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우주선을 만들 수 있는 설계도인데.

세이건은 스티븐 호킹과 함께 현대 과학계의 양대 산맥으로 불릴 만큼 과학의 전도사로서 유명하고 그만큼 큰 영향을 끼쳤다. 이 영화는 원작이 그의 소설이기는 하지만 뛰어난 변주적 각색에도 불구하고 그의 철학과 사상을 그대로 녹여 냈다는 점에서 압도적인 지성을 뽐내는 가운데 심오한 사색을 유도한다.

우여곡절 끝에 엘리는 결국 이동 기구에 승선해 아름다운 우주의 황홀경을 경험한 후 베가 성에 도착한다. 외계인은 그녀의 아버지의 형상으로 등장한다. ‘코스모스’에서 세이건은 외계인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고 만들어 낸 ‘ET’나 ‘에이리언’ 같은 형상이 아닌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자일 가능성을 강하게 주장한 바 있다.

이 영화가 딱 그렇다. 베가인이 엘리의 아버지의 형상으로 현현한 것은 그녀의 의식을 추출한 결과다. 즉 과학과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외계의 고등 생명체는 3차원을 초월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연락은 네가 했고, 우린 그저 듣기만 했다. 인간은 양면성을 지닌 참 재미있는 종족.”이라고 말한다.

또 “이건 수십억 년 동안 반복된 일이다. 인간이 공허함을 메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타인의 온기.”라고 충고한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 시절부터 이 최첨단 과학의 존재자들은 어딘가에 있을 ‘외계인들’에게 메시지와 함께 운송 수단 설계도를 보냈고, 이미 인류의 조상 중 누군가가 그들과 만났었다는 얘기이다.

그러면서 베가인은 이 혼란스러운 지구에서 인류가 유일하게 찾을 희망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이해와 사랑이라고, 원칙적이고 원론적이지만 대부분 지키지 않는 이론을 설파한다. 세이건은 ‘만들어진 신’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와 함께 현대 천재 중 대표적인 무신론자로 손꼽힌다. 더불어 불가지론자이다.

엘리는 무신론자이고 팔머는 신부가 될 뻔했던 신학자이다. 작가가 이 두 사람을 연인으로 묶은 건 과학과 종교는 서로 적대시할 게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는 한편 스스로의 결점을 시인함으로써 참된 지식으로 나아갈 공동의 목표의식을 잃지 말라는 뜻이다. 칸트 이후 이 얼마나 흐뭇한 이항대립의 해결 방법인가?

엘리의 아버지는 생전에 “이 넓은 우주에 생명체가 우리밖에 없다면 그건 너무 큰 공간의 낭비가 아닐까?”라고 외계 생명체 존재 가능성에 대한 엘리의 질문에 답한 바 있다. 프로타고라스 이래 인류는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오만한 인본주의에 경도되어 마치 사람이 지구의, 더 나아가 우주의 주인인 양 우쭐대 왔다.

그런 면에서 종교는 겸손한, 과학은 합리적인 장점으로 각자의 권력의 권역을 넓혀 나아갈 수 있었다. 이 작품엔 공간낭비론과 더불어 ‘오컴의 면도날’이 자주 등장한다. 논리적으로 가장 단순한 것이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원칙론이다. 이는 외견상 매우 과학적인 논리이지만 한편으로는 종교적이기도 하다.

과학은 증명으로 많은 궁금증을 해명하지만 종교는 무조건적 믿음을 강요함으로써 모든 걸 해결한다. 가뭄이 들면 종교는 이상기후의 원인을 기계로써 분석하지만 종교는 ‘신의 뜻’으로 간단하게 해결한다. 둘 다 ‘오컴의 면도날’이 아닐까? 엘리는 베가 성에 다녀왔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증거가 없다며 청문회를 연다.

여기서 과학자인 엘리는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청문회 직후 팔머는 기자들을 향해 “신앙인으로서 엘리와 다른 견해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목적은 다르지 않다.”라고 말한다. 신앙인도 과학자도 탄착점은 진리의 추구이다. 세이건은 그 앞에 ‘겸손’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이 영화의 주제이다.

세이건은 유작 ‘에필로그’에서 “나는 부활해 영생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이 강렬한 만큼 그것이 헛된 바람이라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증거도 없이 예쁘게 포장된 사후 세계의 이야기로 자신을 속일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약자 편에서 죽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생이 제공하는 짧지만 강렬한 기회에 매일 감사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다시 한번 진리의 희구!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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