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최철호의 한양도성 옛길]

▲ 사소문 중 가장 오래된 성문_창의문

창의문에서 시작하는 순성(巡城) 놀이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악산을 잇는 성문이다. 인왕산의 끝이요, 백악산의 시작을 알리는 문이다. 한양도성 사소문 중 북쪽의 소문이지만 북대문인 숙정문이 닫혀 있어 북대문 역할을 하였다. 창의문은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사소문 중 유일한 문이다. 임진왜란 때 문루가 소실되었고, 1623년 인조반정 때 능양군이 창의문을 부수고, 창덕궁에 있는 광해군을 폐위시켰던 역사 속 성문이다. 역사의 현장인 창의문을 인조의 고손자인 영조가 120년 후 창의문 문루를 세웠다. 인조반정군이 창의문을 통해 궁에 주인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공신들의 이름을 새겨 현판을 문루에 걸었다.

사소문 중 가장 오래된 성문, 창의문(彰義門)

창의문 현판은 영조의 어필이다. 1741년(영조 17) 문루를 짓고, 공신들의 이름을 나열하고, 창의문(彰義門) 글씨를 한 글자 한 글자 힘있게 써 내려갔다. 영조는 창의문을 통해 반정에 성공한 인조의 직계 후손이다. 창의문에 얽힌 이야기를 잘 다듬어야만 조선이 살고, 영조의 정통성이 튼튼해진다. 또한 아버지 숙종이 한양도성 외 성곽-탕춘대성과 북한산성-을 쌓는데 집중하였다면, 아들 영조는 한양도성을 지키고, 도성민을 방어하는데 체계를 세웠다. 영조에 의해 1746년(영조 22) ‘수성절목(守城節目)’을 구체적으로 만들고, 1751년(영조 27) ‘수성윤음(守城綸音)’을 통해 한양도성의 수성에 대한 구체적인 말씀과 명령을 내린다. 영조가 순성하며 도성민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곳이 바로 창의문이다.

창의문은 보물 제1881호다. 역사 속 현장에 성문이 있고, 영조의 진심이 담긴 소중한 창의문 현판 글씨와 문루 속 1등 공신뿐 아니라 2등, 3등 공신들의 이름까지 나열한 현판이 있다. 그러나 창의문에 이르는 길은 울퉁불퉁한 바위와 돌들로 이루어진 험한 산골짜기다. 마치 지네가 구불구불 지나가듯 지세가 험하다. 숲이 우거지고 물소리와 새소리가 들리는 이곳은 청계천의 원류이자, 홍제천의 시작점이다. 성문에 이르자 천정 위 그림이 봉황인지 닭이지 구분하기 어렵다. 홍예 앞부분에 새들의 왕인 봉황이 조각되어 있어 천정에도 닭의 머리를 닮은 봉황일거라 생각하며 백악산으로 오른다.

백악마루에 오르는 길, 백악산(白嶽山)

▲ 창의문에서 백악산 백악마루 오르는 길_ 5월의 전통 꽃_ 함박꽃

창의문에서 시작하여 백악마루, 백악산 정상을 오르는 길은 언제나 힘들다. 백악구간은 직벽으로 성곽길이 45도 경사로 이루어져 있다. 내사산(백악_낙타_목멱_인왕산) 중 가장 높은 산 백악산이 쉽게 열리지 않는 이유다.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왼편에 삼각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족두리봉에서 향로봉과 비봉 그리고 보현봉까지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있다. 그 뒤로 삼각산의 최고봉인 백운대와 만경대 그리고 인수봉까지 뿔 같은 봉우리들이 연달아 보인다. 초록이 물든 5월 백악산을 오르는 길은 아카시아 향 가득한 행복한 순성길의 시작이다. 지친 몸을 잠시 성벽에 기댄 후 뒤를 보는 순간 숨이 멈춘 듯 인왕산 기차바위와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을 누가 서울 안에 있는 산이라 하겠는가?

한양도성 안 가장 높은 산, 백악산에 오르니 바람이 세차다. 구름이 거치고 백악마루 정상에 우뚝 서니 600여 년 전 태조 이성계와 삼봉 정도전의 모습이 잠시 겹치는 순간 발아래 경복궁과 광화문 지나 숭례문까지 일직선상에 들어온다. 남면에 산이 있으니 봉수대 5개가 줄지어 있는 목멱산이다. 좌청룡 낙타산과 우백호 인왕산도 내 손안에 있다. 이곳이 342m 정상 백악마루, 백악산(白嶽山)이다. 그 옛날 조선의 왕과 신하들 누가 올랐을까?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듯 한양도성 성곽길 따라 함께한 사람들을 바람 속에서 잠시 생각해 본다.

영조의 손자 정조는 한양도성 안과 밖에 걸쳐 있는 승경지를 여덟가지 주제로 묘사하였다. 계절마다 절기마다 바뀌는 한양도성 순성길을 주위의 풍경 따라 눈 속에 담았다. 사계절을 각 2수씩 읊어 ‘국도팔영(國都八詠)’ 8수로 노래했다. ‘필운대의 꽃버들’, ‘압구정의 뱃놀이’,‘삼청동의 녹음’,‘자하각의 등구경’,‘청풍계의 단풍놀이’,‘반지의 연꽃 감상’,‘세검정의 얼음폭포’,‘광통교의 개인 달’ 여덟 수 중 다섯 수가 모두 한양도성 안과 밖 풍경을 노래하였다. 그 옛날 정조가 걸으며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듯이, 도성 안과 밖 풍경을 감상할 차례다. 과연 자연 풍광만 눈에 담았을까? 백악산 정상에 앉아 한양도성 한 바퀴 걸어볼 채비를 한다.

한양도성 순성놀이의 출발점, 백악마루

▲ 백악산 백사실계곡에 비오는 날_백석동천 가는 길

순성(巡城)이란 한양도성을 한 바퀴 도는 것을 말한다. 한양의 치안유지를 위한 왕명에서 시작하였으나 점점 풍류의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한양도성은 삶의 공간으로 도성민들이 성곽을 따라 돌며 봄에 꽃놀이와 여름에 풍광을 즐기고, 가을에 단풍놀이하며 소원을 빌기 시작하였다.

도성 안과 도성 밖 성곽길 따라 소원을 빌고, 꿈을 이야기하고, 계획을 세웠던 공간이다. 누구나 다가갈 수 있는 곳, 시간이 아쉬울 따름이다. 꿈을 간직한 유생들이 과거급제를 위해 한강을 건너며 가장 먼저 찾은 곳이 한양도성이었다. 도성을 돌고 도성 안 궁과 궐을 보며 그곳에서 일할 생각으로 순성을 하였다. 사적 제10호인 한양도성 성곽길 18.627km를 하루에 돌기보다 구간을 나누어 시나브로 느릿느릿 걸으며 생각해 보자. 연인과 함께, 가족과 함께 그리고 직장 동료와 함께 걷는다면 또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순성하는 모두에게 사색의 길이 되고, 인생의 전환점을 찾을 수 있는 순례길이 되길 바란다.

한양도성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 청운대

▲ 홍지문에서 창의문으로 가는 길_석파정별당의 5월 풍경

하늘은 높고 바람이 멈추니 구름 한점 없는 빼어난 산이 백악산이다. 백악마루에서 볼 수 없는 사방의 풍경이 이곳에 이르니 도성 안 궁과 궐이 모두 다 보인다. 백악산 아래 경복궁과 창덕궁 그리고 창경궁 따라 종묘까지 사방이 탁 트인 풍경이다. 청운대(靑雲臺)는 한양도성 성곽길 18.627km에서 가장 조망이 좋은 공간이다. 눈앞에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과 정문인 광화문이 궁담길 따라 이어져 있다.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을 지나 명례문을 나오면 육조거리인 광화문 광장도 보인다. 뒤를 돌아보니 삼각산 세 봉우리인 백운대와 만경대, 인수봉까지 눈 앞에 있다. 백악산에서 가장 평평한 언덕이 있는 서울의 명소이자, 한양도성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 옛날 과거급제와 새로운 사업 성공등 개인을 위해 순성길에서 빌었다면, 오늘날 전세계 코로나19 팬데믹 극복을 기원하며 코로나 블루로부터 답답한 마음을 치유하는 힐링의 시간으로 순성길에 빌어 보면 어떨까? 5월에 한양도성 순성길 그곳을 걷고 싶다. 함께 걸어 보실까요...

▲ 성곽길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 (저서) ‘한양도성 성곽길 시간여행’

[최철호 소장]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한양도성에 얽힌 인문학’ 강연 전문가
한국생산성본부 지도교수
지리산관광아카데미 지도교수
남서울예술실용전문학교 외래교수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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