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친구=쏘스뮤직 제공.

[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최근 6인조 걸 그룹 여자친구가 데뷔 7년 만에 해체를 알렸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K팝의 대다수의 아이돌 그룹은 10년 혹은 7년 징크스라는 ‘공식’을 남기며 두 자릿수 해의 활동 기간을 채 채우지 못하는 형국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7년’이라는 ‘공식’은 우선 2009년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제8조 제1항에 의거해 문화체육관광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 등의 자문을 얻어 작성한 연예인표준계약서에 근거한다. 이전에는 연예인과 연예 기획사 사이에서 전속 계약 분쟁이 빈번했기 때문에 국가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

그래서 연예인 혹은 연예인 지망생이 기획사와 전속 계약을 체결할 경우 최소한 7년의 전속 기한을 유지하라는, 일종의 ‘법’적인 구속력 같은 결과를 도출해 낸 것이다. 물론 이 전속 기간이라는 것은 양날의 검이다. 때로는 기획사에 유리할 수도, 경우에 따라서 연예인에게 유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 7년이라는 시간은 10대 중후반에 데뷔하는 아이돌 그룹 멤버들에겐 일종의 ‘공식적’인 유통기한이 되어 버렸다. 첫 번째 이유는 아이돌이라는 정체성 때문이다. 아이돌로서의 전성기는 10대 후반~20대 중후반이다. 지금은 ‘삼촌팬’과 ‘이모팬’이 보편화되었기는 하지만 아이돌을 주로 소비하는 계층은 10대 청소년이다.

아이돌의 가사는 10대들의 언어 패턴과 궤를 같이 한다. 그들의 정서에 깊게 파고들기 위한 기본 전략이다. 그러나 팬이 20대에 접어들면 어느 순간 그 가사를 따라 하는 자신의 손발이 오그라드는 걸 경험한다. 그런 가사를 외쳐 대는 당사자 역시 피부에 닭살이 돋기는 마찬가지이다.

아이돌이 살짝 나이가 많기는 하지만 아이돌과 팬은 함께 나이를 먹어 간다. 아이돌이 20대 후반이 됐을 때 그 팬 역시 20대 초중반으로 성장한다. 그 나이 즈음이면 소비의 성향이 바뀌기 마련이다. 물론 아이돌 역시 전성기의 귀여움보다는 성숙함이 더 돋보이게 변한다. 아이돌, 즉 우상이라는 정체성에 변화가 올 수밖에 없다.

▲ 방탄소년단=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멜로디 역시 같은 차원이다. K팝의 대부분이 후크송이다. 따라 부르기 쉬운 짧은 멜로디의 반복 패턴으로 강한 중독성을 띠는 게 대다수 K팝의 특징이다. 이 후킹 멜로디는 대중의 뇌리에 쉽게 각인되지만 그리 감동적이지는 못하다는 단점 역시 동전의 양면으로 지니고 있다. 20대가 되면 좀 진지한 멜로디에 반응하게 된다.

기획사의 정체성도 이유이다. 애초부터 각 기획사는 아이돌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고자 하는 것이지 대중을 위한 문화 사업에 자원봉사를 한다든가, 멤버들을 위대한 인격체로 성장시키고자 하는 교육적 목적을 지니지 아니한다. 아이돌을 활용하는 방법은 일종의 매뉴얼처럼 정해져 있기 마련.

기획사는 일단 한 그룹으로서 스타덤에 올리면 그때부터는 멤버들의 활용도를 다양한 유닛 혹은 각자 솔로로서의 활동 영역으로 확장해 나간다. 영화, 드라마, 뮤지컬, 1인 미디어 등 가능한 모든 분야로 지평을 넓혀 최소한의 기간 내에 최대한의 수익으로 극대화하는 게 지상 목표다.

물론 각 멤버들의 자각도 아이돌 그룹 지탱의 명분을 희석시킨다. 그들 스스로가 회사의 수익 구조에 따라 프로듀서들이 짜 놓듯 만든 전략적 음악과 활동 계획 등에 더 이상 마리오네트처럼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데서 명분과 이유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성장해 버렸다. 혼자 하더라도 지금만큼 벌 명성과 조건도 갖췄다.기획사 입장에선 10대의 푸릇푸릇 한 연습생에게 투자는 곧 가능성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미 다 성장해 용처가 분명해진 스타에게 투자는 과소비다. 그저 계약서대로 그를 지원해 주고 벌어 오는 수익을 배분하면 그뿐이다. 그런데 7년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 멤버들은 기획사의 시각에서 볼 때에는 얼토당토않은 조건을 제시한다. 기획사 입장에서는 재계약보다는 새 그룹 양성이 낫다는 손익계산서가 나온다.

▲ 신화=신화컴퍼니 제공.

게다가 7년쯤 지나면 멤버 각자의 생각이 절대 합일될 수가 없다. 데뷔 초기에야 성공을 위해 회사가 하라는 대로 뭐든지 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기에 서로의 생각이나 이해타산이 달라도 억누르며 참아 내지만 7년이 흘러 저마다 유명세를 누릴 즈음엔 그런 인내의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없게 된다.

이는 연예 산업 구조상의 현실일 뿐 기획사, 아이돌 그룹, 팬 등 그 어느 누구에게도 잘못은 없다. 굳이 찾자면 기획사의 ‘장삿속’에 따른 대차대조표이다. 방탄소년단에게 있어서 가장 명예로운 건 아마 그동안의 모든 성과가 응집된 ‘제2의 비틀스’란 별명일 것이다. 그만큼 비틀스는 영국이 낳은 가장 세계적으로 높은 인기와 부를 누린 록그룹이었다.

그런데 1960년대 초중반 전 세계의 젊은이들을 열광케 할 당시만 해도 그들의 음악은 쉽게 표현해 아이돌 그룹의 음악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1966년 앨범 ‘Revolver’에서 확연하게 깊어진 음악성을 보이더니 이듬해 발표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부터는 예전의 ‘I wanna hold your hand’ 같은 말랑말랑한 슈거 팝 성향의 록을 부르던 모습과는 완연하게 달라졌다.

그리고 그 앨범과 더불어 ‘화이트 앨범’으로 록의 모든 하위 장르를 제시하는 기념비적인 록의 역사를 쓰면서 오늘날까지 최고봉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비틀스 역시 사실상 출범 7년 만인 1970년부터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했고, 4년 후 법정을 통해 공식 해체를 알렸다.

그렇다면 방탄소년단은 8년째에도 변함이 없으며 어떻게 세계 정상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 방탄소년단의 가장 큰 강점은 스스로 음악을 만드는 데다 그 가사와 음악의 깊이가 웬만한 아이돌 그룹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데 있다. 그들은 기존 K팝 아이돌과는 차원이 다른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전 세계의 팬들과 소통한 매우 명민한 그룹이다.

전 세계의 그룹을 통틀어 단 한 번의 멤버 교체 없이 10년 이상 장수하는 그룹은 없다. 전술한 여러 가지 여건상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배경은 멤버 각자의 동상이몽 탓이다. 국내에 딱 한 팀 예외가 있다. 신화이다. 그들은 공동의 회사와 각자의 소속사를 병행하며 자유로운 솔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명분상, 혹은 의도상 가끔씩 신화라는 한 깃발 아래 뭉치곤 한다. 그런데 그런 신화조차 최근 불화설이 불거지고 있다. 사공이 여럿인 것도 때론 문제이다. 그게 인간이란 존재자의 한계일지도.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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