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출처=픽사베이

[미디어파인 칼럼=박병규 변호사의 법(法)이야기] 코로나19의 여파로 가게 매출이 급감하여 폐업하거나 폐업을 고려하는 상인들이 많습니다.

폐업을 하더라도 임대차계약이 살아있는 경우, 상인은 임대차계약 기간 동안의 차임을 지급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코로나19의 여파로 가게 매출이 급감한 경우, 임대차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까요?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가게 매출이 90%이상 급감했다면 사정변경 원칙을 적용, 상가 임차인이 임대인을 상대로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와, 이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2011년경 부터 악세사리 도·소매 프랜차이즈 사업을 해오던 A사는 2019년 5월 B사로부터 서울 명동 소재 상가건물 1층 점포(20평 규모)를 임대해 직영점을 운영해왔습니다. 임대기간 3년, 보증금 2억 3,000만원, 월세 2,200만원을 주는 조건이었습니다.

손님들은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많았는데, 2020년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매출이 급감했습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 7월부터 같은해 12월까지 5,700여만원~8,900여만원에 이르던 월 매출이 2020년 1월 3,000만원대로, 한달 뒤인 2월에는 2,000만원대로 추락하더니 같은해 3~5월에는 100~200만원대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결국 A사는 2020년 5월 중순 점포를 휴점했습니다. A사는 더 이상 가게 운영이 어렵다고 보고, 2020년 6월 임대인인 B사에 내용증명우편을 3차례 보내 '코로나19 사태라는 불가항력적인 외부사유가 발생해 임대차계약 제13조 4항에 따라 2020년 7월 2일자로 임대차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 사진 출처=픽사베이

임대차계약서 제13조 4항에는 '당사자 중 일방이 법령의 개폐, 도시계획, 화재, 홍수, 폭동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90일 영업을 계속할 수 없을 경우, 상대방에 대해 30일 전에 서면통지를 한 후 본 계약을 해제 또는 해지할 수 있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습니다.

하지만 B사는 "홍수나 태풍, 화재 등 천재지변으로 건물이 망가진 게 아니라 영업장에서 영업을 하는 데 지장이 없는 상태이기에 코로나19는 임대차계약서 제13조 4항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에 A사는 "임대차계약이 1차 해지통보서의 수령일로부터 30일이 경과한 2020년 7월 4일자로 해지되었음을 확인해달라"는 취지로 B사를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6단독은 A사가 B사를 상대로 낸 임대차보증금소송에서 "양측이 2019년 5월 체결한 임대차계약은 2020년 7월 4자로 해지됐음을 확인한다"는 취지의 원고승소 판결을 했습니다(2020가단5261441).

재판부는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 또는 계약해지는 물론 민법 제628조 또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1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차임증감청구권은 민법의 일반원칙인 계약준수 원칙에서 벗어나 계약의 내용을 바꿀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이는 구체적 타당성을 위해 법적 안정성을 일부 훼손하는 것이므로, 그 해석과 적용을 엄격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한 후,

"사정변경을 이유로 한 계약해제·해지 또는 차임증감청구권은 ① 계약 성립의 기초가 된 객관적 사정이 현저히 변경되고 ② 당사자가 계약의 성립 당시 이를 예견하지 않았고 예견할 수도 없었으며 ③ 그 사정변경이 계약의 구속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당사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생긴 것으로서 ④ 당초의 계약 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공평의 원칙에 현저히 반하는 부당한 결과가 생기거나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기는 경우에, 비로소 계약준수 원칙의 예외로서 인정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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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는 "A사가 임차한 점포는 명동에 위치한 매장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통한 매출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곳인데, 코로나19로 외국인들의 입국이 제한되고 모든 해외입국자들에게 2주간 격리를 의무화하는 정책이 시행되면서 해외여행객의 국내 입국자 수가 99% 이상 감소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 장기화됨에 따라 매출이 90% 이상 감소해 영업을 계속하는 경우 적자를 볼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됐다.

코로나19가 발생되고 장기적으로 지속하며 매출이 90% 이상 감소될 것이라는 사정은 원고(A사)와 피고(B사)는 물론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 그와 같은 현저한 사정변경의 발생과 관련해 원고(A사)에게 어떠한 책임 있는 사유가 있다고 할 수도 없다"고 판단한 후,

"코로나19 사태로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이 제한되면서 점포의 매출이 90% 이상 감소한 것은 임대차계약 제13조 4항에서 정한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90일 이상 자신의 영업을 계속할 수 없을 경우'에 해당한다.

설령 이러한 계약해지 조항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은 계약 성립 당시 당사자가 예견할 수 없었던 현저한 사정의 변경이 발생했고 그러한 사정의 변경이 해제권을 취득하는 당사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생긴 것으로서 계약 내용대로의 구속력을 인정한다면 신의칙에 현저히 반하는 결과가 생기는 경우로서 사정변경의 원칙에 따라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위 판결의 주요한 의미는 법 개정 없이도 코로나19로 심각한 영업상 피해를 입은 상인들에게 임대차계약 해지권을 인정해 주었다는 점입니다.

법원은 법적 안정성 측면을 중시하여 사정변경 원칙에 따른 계약 해지를 거의 인정하지 않는 추세였는데, 위 판결은 코로나19로 생긴 사정변경에 기한 계약해지를 인정한 첫 하급심 판결이라 할 것입니다.

참고로 법무부는 최근 코로나19로 3개월 이상 집합금지 또는 집합제한 조치를 받고 폐업한 상가임차인에게 사정변경에 의한 계약 해지권을 인정하는 내용의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 박병규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박병규 변호사]
서울대학교 졸업
제47회 사법시험 합격, 제37기 사법연수원 수료
굿옥션 고문변호사
현대해상화재보험 고문변호사
대한자산관리실무학회 부회장
대한행정사협회 고문변호사
서울법률학원 대표
현) 법무법인 이로(박병규&Partners) 대표변호사, 변리사, 세무사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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