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박수룡 원장의 부부가족이야기] 외도 배우자들의 상당수는 결혼을 깰 생각 없이, 그리고 외도 상대자와 가정을 이루고 싶다는 생각은 더더욱 없으면서, 외도가 들키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생각에서 외도를 저지른다. 그래서 외도가 발각되면 대부분 잘못을 인정하고 외도를 끝내는 것으로 원래 자리로 돌아오려 한다.
하지만 상처 배우자인 당신은 다르다. 당신은 외도 배우자의 ‘몸’만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반성과 변화를 원할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그것을 어떻게 확인하려 하는가?
대부분의 상처 배우자들은 그 수단으로 외도 배우자에게 여러가지 요구를 한다. 외도에 관련된 모든 사실들을 고백할 것, 모든 일정을 공개하고 사전 동의 없는 외출은 삼갈 것, 통화나 SNS 내역이나 금전 출납을 개방할 것 등을 각서로 만들고 이혼에 대비한 공증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는 당신의 불안감 해소나 단순한 보복 정도의 효과밖에는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 우선 외도 배우자가 당신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들일 지도 의문이지만, 설령 그렇게 한다고 해도, 당신이 상대를 믿게 되고 나아가 부부 관계까지 회복되지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상대가 당신의 말을 따르는 이유가 자발적인 변화에서 우러난 것인지, 아니면 (당장의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이혼을 피하려고자 그러는 것인지 판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한 대로, ‘가해자-피해자’ 또는 ‘죄수-감시자’ 패턴으로는 부부 관계가 근본적으로 회복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게 나을까?
당신이 원하는 것, 즉 상대의 근본적인 변화와 외도로부터의 진정한 회복되는 것을 얻으려면, 우선 당신의 '분노 분출 충동'을 억눌러야 한다. 당신의 불신과 두려움을 드러내며 요구 사항들을 늘어놓는 대신, 외도 배우자에게 어떤 실질적인 변화가 있는지를 잠자코 지켜보라는 말이다.
(위의 조언이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은 당장 어떻게 라도 결말을 봐야겠는데, ‘잠자코 지켜보라’니, 그건 외도 배우자만 편하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렇게 생각한다면, 아직도 외도의 상처와 분노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시리즈의 서두에서 말했듯이, 당신의 심리적 안정에 더 집중하기를 권한다.)
지금의 이야기는 당신이 배우자 외도의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이후의 방향을 찾으려는 경우에 해당된다. 당신이 외도의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지만, ‘외도와의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그 전쟁에서 부부가 함께 ‘회복자’가 될 지 당신 혼자 ‘극복자’가 될 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니 배우자의 정확한 의도를 알지 못한 채로 당신이 앞질러 서두르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런 결과를 피하려면, 당신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상대의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 노력과 변화의 진정성을 확인한 후에 당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 당신에게 최선의 결말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배우자의 외도를 확인한 후에 곧바로 별거 상태로 들어가는 것은 썩 좋은 방법이 아니다. 대개의 경우, 별거는 상대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혼자 살 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자신의 외도를 반성하고 가정으로 되돌아오려는 배우자들은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변화를 보인다. 외도 배우자가 (당신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일단은 그 진정성을 믿을 만하다. 물론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 이 밖에도 수없이 많은 모습이 가능할 것이다.
-외도 상대자와의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는 것은 기본이고, 외도와 관련된 사람들과의 만남도 피한다. 그 대신 당신 두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들과 가까워지려고 한다.
-자신의 외도에 대한 변명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그 이야기를 한다.
-이전에는 꺼렸던 일정 통지와 재정 상태 등에 대해서 자발적으로 이야기하고 의논한다.
-자녀나 집 안팎의 일들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며 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한다.
-당신과 더 자주 더 가까이 있고 싶어 하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
-당신이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싶어하고 거기에 맞추려고 노력한다.
-당신의 개성과 독립적인 모습을 인정하며 당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한다.
-자신의 노력에 대해서 당신이 어떻게 여기는지 궁금해하고 더 잘 하려고 노력한다.
-가끔 실수하기도 하지만, 그런 점에 대해서 사과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당신에게 바라는 점에 대해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말한다.
-당신이 과거에 했던 말들을 기억하여 당신이 놀랄 만한 일들을 한다.
-말로만 아니라 보다 만족스러운 부부 관계를 만들기 위한 방법들을 연구한다.(예를 들어, 이전에는 부부 상담을 거절했던 사람이 이제는 당신에게 제안한다.)
-당신을 대하는 눈길이나 손길에서 두려움 보다는 진심을 느낄 수 있다.
외도 배우자가 이런 변화를 보인다면, 일단은 다행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당연히 상대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공이 당신에게 넘어왔다’는 것뿐이다. 상대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은 여전히 당신에게 있다. 이는 당신들의 결혼 관계에 대해서 당신이 어떤 결정이든 내릴 수 있지만, 그 결정에 대해서는 당신도 책임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다음편에 계속...)
[박수룡 원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과 전문의 수료
미국 샌프란시스코 VAMC 부부가족 치료과정 연수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겸임교수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부부가족상담센터 라온 원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