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길상사] 으리으리한 솟을대문의 일주문뿐... 사천왕문도 불이문도 없는 서울 도심의 절집 하나... 애틋한 창건의 사연이 전설처럼 남아있는 곳...

성북동 고급 주택가 사이, 백운, 인수, 만경, 북한산의 세 봉우리를 이루는 삼각산 자락에 자리 잡은 절집 길상사는 입구부터 여느 절집과는 다른 분위기이다. 계곡과 산비탈을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돼있는 전각들이 사찰이라기보다는 왕족의 별장이나 명망 있는 사대부 집안의 종택에 가까워 보인다.

1997년 시민들의 선방(禪房)으로 거듭난 길상사는, 아이러니하게도 1970년대 밀실 정치의 대명사이자 향락의 상징이었던 고급 요정이었다. 이례적이라고 할만한 변화에는,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던 연인을 평생 그리워한 한 여인의 폭풍 같은 삶이 있었다. 

열여섯의 나이에 기생이 된 진향(본명 김영한 1916~1999)은 22세 때 평생의 연인이 된 천재 시인 백석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몇 년 간 열애를 나누었지만 기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인정받지 못하고 시인 백석은 해방과 분단으로 인해 북한에 건너가 생을 마감하게 된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일부 (백석 1938)

이후 두 사람은 살아생전 다시는 만날 수 없었고, 홀로 남은 그녀는 공부에 매진하다 1950년대 성북동 인근의 배밭골을 사들여 대원각이라는 한식당을 열었고 대원각은 1970년대 밀실 정치가 극에 달하던 시절, 삼청각, 청운각과 함께 3대 요정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1987년, <무소유> 철학을 접하고 대원각을 법정스님에게 시주하기로 결심하게 된 김영한은 10년간의 간청 끝에 대원각을 송광사의 말사에서 ‘맑고 향기롭게 길상사’로 개산하게 된다.

천억 원대에 이르는 대원각이 길상사로 태어나던 1997년 12월, 법정스님은 김영한에게 길상화라는 법명과 가사의 표시로 염주 한 벌을 건넸다. 그날 김영한의 소원은 단 하나, 요정의 여인들이 옷을 갈아입던 팔각정에 부처님의 소리를 모시는 것이었다.

기생 진향 그리고 백석의 연인 자야, 김영한.
천억 재산도 백석의 시 한 줄에 비길 수 없다며 평생의 그리움을 세상에 알렸던 그녀의 영혼은 눈이 많이 오던 날 길상사 경내에 뿌려졌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녀에게 남겨진 유일한 이름은 길상사 창건 공덕주 길상화였다... 

<길상사 편> 프로그램 다시보기 : http://tvcast.naver.com/v/101924

tbs TV에서는 서울 일대에 남았거나 변형된 근현대문화유산을 주제로 서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네이버 TV(http://tv.naver.com/seoultime), 유튜브(검색어: 영상기록 시간을 품다) 또는 tbs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 tbs 백남우 영상콘텐츠부장

[수상 약력]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2015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지역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2016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기획부문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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