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사랑의 블랙홀’(해롤드 래미스 감독, 1993)은 얼핏 보면 멜로 영화이지만 사실 무척 재미있고, 꽤 심오한 내용을 담은 삶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방송사 기상 통보관 필(빌 머레이)은 내일 성촉절(2월 2일)을 앞두고 4년째 취재에 나서기 위해 PD 리타(앤디 맥도웰), 카메라맨 래리와 함께 펜실베니아 펑수토니 마을로 간다.

다음날 길거리에서 우연히 고교 동창 네드를 만나지만 퉁명스럽게 물리친 뒤 취재를 마친다. 그리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거센 눈 폭풍으로 도로가 봉쇄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숙소에서 하루 더 묵는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똑같은 일이 매일 반복되니 자고 일어나면 성촉절이다.

평소 독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었던 그는 매일 똑같은 삶에 짜증과 낙담을 거듭하더니 결국 자포자기 상태가 된다. 평소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교통사고를 내며 일탈을 일삼는 것. 그런 반복적인 패턴 속에서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리타의 매력을 발견하고는 사랑을 고백하지만 딱지 맞는다.

그러자 그는 매일 다른 방법으로 자살을 한다. 그것도 지치자 매일의 경험을 통해 리타라는 사람을 공부하고,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둘씩 상식을 쌓게 된다. 그리고 그 정보를 이용해 그녀의 마음을 점점 사로잡아 간다. 더불어 그는 매일 마을 사람들을 도와줌으로써 마을의 슈퍼히어로로 부상한다.

그는 필사적으로 피아노와 얼음 조각을 배운다. 드디어 마을 파티에 리타와 함께 참석한 그는 놀라운 피아노 솜씨와 마을 사람들이 오로지 자신 한 사람에게 환호하는 걸 보여 줌으로써 그녀와의 사랑을 완성하는 데 성공하는데.

아기 예수의 봉헌과 성모 마리아의 정결례를 기념하는 가톨릭 축일인 성촉절은 미래의 수확에 대해 축복을 비는 날이다. 2월 2일은 봄이 시작되는 시기. 이 영화의 원제는 ‘Groundhog Day’이다. 그라운드호그 펑수토니 필(우드척 다람쥐)은 매년 펑수토니에서 봄을 알려 주는 기상 통보관 역할을 한다.

주인공의 이름이 필인 이유이다. 펜실베니아에 이주한 독일인들은 매년 그라운드호그의 움직임으로 봄을 확인했다. 즉 그라운드호그가 착각을 하든, 적확한 판단을 하든 그 동물 한 마리에 1년 삶의 패턴을 정한 것. 첨단 현대의 시각으로 볼 때는 우습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일기예보는 매번 맞는가?

이 영화의 외형은 시니컬한 필이 지나친 우월의식으로 주변을 우습게 보며 잘난 척하던 그릇된 자세에서 어떻게 변화하며 리타라는 진정한 사랑을 찾는가를 보여 준다. 그런데 의외로 그 속에는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의 테제부터 전지전능한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 그리고 정형화된 질서에 대한 비판, 그리고 회의주의와 낙천주의의 비교가 녹아 있다.

필은 딱딱한 준거틀에 얽매여 사는 사람이었다. 지역 스타인 그는 대형 방송사로 옮겨 전 미국적 스타가 되는 게 꿈이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정해진 질서에 완벽하게 적응하는 가운데 출세를 위한 전형적인 계단을 밟아 올라가야만 한다는 걸 신조로 살아왔다.

그래서 그에게 겨울은 휴지기였다. 의지와 달리 도약을 일시 정지해야만 하는 암흑기였다. 과연 그럴까? 인생의 목적은 오로지 돈과 출세일까? 중년의 나이에 결혼은커녕 연애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 없는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규준틀의 사나이. 그도 사랑할 마음이 없지만 다른 여자 역시 그에게 사랑을 줄 마음이 없었다.

리타는 그가 변하기 전까지 오로지 그를 방송인으로서만 봐 온 게 그런 배경 때문이었다. 그런데 필은 타임 루프 안에 갇힌다. 그에게 과거는 있었을지언정 내일은 없다. 오늘은 오늘이면서 과거이자 내일이다. 하이데거의 시간성은 현재의 뒤를 이을 미래를 도래하는 본래로 본다.

어제 죽었지만 오늘 아침에 어제와 다름없이 똑같은 침대에서 일어나는 필은 어제의 필이자 미래의 필이다. 현존재가 마주할 미래의 도래적 존재자는 바로 그의 원래의 존재인 본래적 존재자인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하이데거처럼 비겁하게 죽음을 그런 말장난으로 외면하려 하지 않는다. 과거의 필은 회의주의자였다. 다른 사람들의 모든 일에 딴죽을 걸고 못마땅하게 여겼다. 하지만 타임 루프의 반복 경험 후 긍정적 낙천주의자로 변모한다. 그래서 전과 다르게 모든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다.

변화 뒤의 그에게 모든 게 소중하다. 아침의 커피 한 잔조차.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운 그는 “겨울 역시 인생의 일부.”라며 그토록 지긋지긋하게 싫어하던 겨울을 즐긴다. 눈과 얼음 공예로. 그래서 그는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라도 내 여생은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왜? “리타를 사랑하니까.”

그는 “규칙에 얽매여 살지 않겠다. 내일이 없다면 책임질 일이 없으니 마음대로 해도 된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염세주의자, 회의주의자 등에게 인생 수레바퀴에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잠시 생각할 시간을 가지라고 팁을 주는 듯하다.

남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형식과 관습에 얽매이거나 남의 시선에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다. 오늘을 열심히 살자. 그러다 보면 희망찬 내일의 해가 뜬다는 식이다. 오늘을 고민하면 내일도 없으니 차라리 오늘을 ‘깨뜨리자!’라는.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선택을 했으면 그대로 살아야지. 나는 하느님은 아니지만 신이다.”라고. 신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 필은 유쾌한 스크루지 영감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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