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 칼럼= 백남우의 근현대문화유산이야기 : 해방촌]

빈 도시락마저 들지 않은 손이 홀가분해 좋긴 하였지만
해방촌 고개를 추어 오르기에는 뱃속이 너무 허전했다.
산비탈을 도려내고 무질서하게 주워 붙인 판잣집들이었다.
철호는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레이션 곽을 뜯어 덮은 처마가 어깨를 스칠 만큼 비좁은 골목이었다.
부엌에서 아무 데나 마구 버린 뜨물이, 미끄러운 길에는
구공탄 재가 군데군데 헌데 더뎅이 모양 깔렸다...
/ 소설 <오발탄> 中

950~60년대 궁핍한 서민의 삶을 그린 소설과 영화의 배경이 됐던 용산구 판자촌 일대. 용산구 용산동 2가의 대부분과 용산동 1가의 일부가 포함되는 지역으로 용산고등학교의 동쪽, 남산타워의 남쪽, 곧 남산 밑의 언덕에 형성된 마을이다.

용산구 용산동 2가라는 행정동보다 해방촌으로 더 잘 알려진 남산 자락의 비탈 마을.

▲ 해방촌 108계단(1943년 완공된 남산의 경성호국신사로 연결되던 표참도[신사나 절로 이어지는 주도로])

이름 그대로 해방 후 북쪽에서 내려온 월남민이 정착하고 한국전쟁 후 피난민이 가세하면서 형성된 동네다. 판자촌이 군락을 이루며 가난의 상징이었던 이곳이 최근엔 이태원에 이은 핫 플레이스로 떠올라 다국적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명소가 됐다.

▲ “호국의 영령을 봉사하기 위하야 총독부를 위시하야 관계유지 사이에 협의 중이던 바 드디어 경성과 나남에 호국신사를 창립하기로 되어...”, 동아일보 1939.4.22.(좌) / 경성호국신사 완공(1943.11.26.)_중일전쟁 후 전사자가 급증하자 일제가 남산 22,000평을 헐어 만든 일본 신사(우)

특히 해방촌 초입, 예쁜 정원이 조성된 108계단은 드라마의 배경이 될 만큼 유명한 장소지만 그 배경은 일제강점기 일본 신사에서 시작됐다.

▲ 동아일보 1975.8.28

해방이 되고, 수풀만 우거진 남산 자락엔 38선을 넘어온 이들이 판잣집을 짓기 시작했다. 미군 보급품 상자를 이어 만든, 속칭 하꼬방도 이때 생겨난 표현이다.

사실 해방촌은 용산과 서울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서 어떠한 형태든 일거리를 찾기에 굉장히 좋았던 곳이다. 또한 해방 이후에 인접한 미군부대에서 일거리와 먹거리 등이 나오기 좋은 곳이기도 했다. 운 좋게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진 사람은 사대문 안에 도심으로 걸어서

▲ 국유림 일부를 대지로 용산동 전재민에 대부(동아일보 1948.9.30.)

출퇴근할 수 있는 거리이다 보니 당시 주인 없는 땅이었던, 국유지였던 야트막한 구릉의 해방촌은 빈민가가 형성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무허가 판자촌이었던 해방촌은 정부의 국유림 대부로 정식 주택지가 됐고, 1960~70년대엔 스웨터 가내수공업으로 번창했다.

▲ 1960~70년대 해방촌 상권을 장악했던 일명 ‘요코’(스웨터 가내수공업) 거리

해방촌 제일 높은 곳에 세워져 해방촌 사람들을 하나로 뭉치게 했던 교회.
스웨터 공장이 성업할 당시 덩달아 번성했던 재래시장.
새로운 삶을 찾아온 이들이 억척스럽게 일궈낸 남산 자락의 이야기, 바로 해방촌의 역사이다.

- <해방촌 편> 프로그램 다시보기 -

☞ 네이버TV : https://tv.naver.com/v/858634
☞ 유튜브 : https://youtu.be/MWR6xGhl85k

tbs TV에서는 서울 일대에 남았거나 변형된 근현대문화유산을 주제로 서울의 역사․문화적 의미와 가치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 제작하고 있으며, 프로그램은 네이버 TV(http://tv.naver.com/seoultime), 유튜브(검색어: 영상기록 시간을 품다) 또는 tbs 홈페이지에서 다시 볼 수 있다.

▲ tbs 백남우 영상콘텐츠부장

[수상 약력]
2013 미디어어워드 유료방송콘텐츠 다큐멘터리 부문 우수상 수상
2014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PP작품상 수상
2015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지역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2016 케이블TV협회 방송대상 기획부문 대상 수상
2019 한국방송촬영감독연합회 그리메상 다큐멘터리부문 우수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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