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인=유진모의 무비&철학] ‘공동경비구역 JSA’(2000)는 박찬욱 감독 개인에게는 계속 영화를 할 수 있게 해 준 계기가 되어 준 출세작이자 관객과 한국 영화계에는 남북 관계를 재조명하도록 만들어 준 전환점 측면의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공동경비구역 내 북측 초소에서 한밤중 총격이 벌어진다.

북측 최만수(김명수) 상위와 정우진(신하균) 전사가 사망하고, 오경필(송강호) 중사가 한쪽 어깨에 총상을 입는다. 남측 이수혁(이병헌) 병장은 한쪽 다리에 총상을 입은 채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대한다. 북측은 수혁이 공격했다고, 남측은 강제 납치된 수혁이 탈출한 사건이라고 각각 다른 주장을 내놓는다.

그러자 남북은 합의에 의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중립국 감독위원회에 의뢰하고, 한국계 스위스인 소피 장(이영애) 소령이 파견된다. 소피는 경필과 수혁을 번갈아 신문하고,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총알 한 발이 사라진 사실을 발견한다. 수혁의 장전 버릇을 확인한 뒤 뭔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그녀는 그림에 남다른 재질이 있던 우진이 그린 한 여인의 초상화를 눈여겨본다. 또 수혁이 수정이라는 한 여자를 만나고 있으며, 그녀의 오빠가 수혁의 직계 부하 남성식(김태우) 일병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신문한다. 그런데 조사를 받던 성식이 돌연 창밖으로 뛰어내려 혼수상태에 빠진다.

소피는 드디어 경필과 수혁을 한자리에 불러 대질 신문을 시작한다. 거기서 소피가 성식이 투신자살을 시도하는 CCTV 동영상을 보여 주자 수혁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 뭔가를 말하려 한다. 그러자 침착하던 경필이 갑자기 흥분해 거칠게 수혁을 폭행한 후 북측 체제를 찬양하는 표제를 외친다.

과연 그날의 북측 공동경비구역 초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박상연의 소설 ‘DMZ’를 원작으로 하면서 1998년 발생한 김훈 중위 ‘자살’ 사건도 참조했다고 알려져 있다. 공동경비구역에서 실제 심심찮게 벌어진다는 남북 군인들의 접촉을 소재로 분단의 아픔과 정치의 속성을 주인공들의 비극을 통해 풀어내는 솜씨가 혀를 내두르게 만든다.

이 작품의 작품성이나 세련미는 이후의 박 감독의 작품들에 비해 다소 뒤질지 몰라도 상업성과 감동의 크기 등은 그의 작품 중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건의 진실은 이렇다. 남측 대원들이 수색 훈련 중 실수로 북측 지역을 밟았다가 황급히 철수하지만 때마침 홀로 볼일을 보던 상병 수혁이 낙오된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부비트랩을 건드린다. 때마침 개를 찾던 북측 우진과 경필이 그를 발견한다. ‘살려 달라.’는 수혁의 애원에 노련한 경필이 지뢰를 제거해 준다. 이후 그들은 근무 중 자주 마주치고 서신과 담배 등을 교환한다. 그러던 어느 날 경필과 우진이 야간 근무 중이던 초소에 수혁이 등장한다.

우진이 쪽지에 한번 놀러오라고 썼는데 그걸 곧이곧대로 믿었던 것. 그렇게 수혁이 병장 진급할 때까지 만남은 이어진다. 홀로 비밀을 간직하던 수혁은 친한 직속 부사수 성식까지 이끌고 북측 초소로 간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긴장 상태로 가자 그들은 더 이상 선을 넘지 않기로 결심하고 북측 초소에서 마지막 석별의 잔을 나눈다.

그때 출세에 눈이 먼 만수가 나타나고 결국 총격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 이 영화는 세계 유일의 분단 민족인 한민족의 비극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 주는 JSA를 무대로 한다. 여기서 관객으로 하여금 도대체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이란 무엇인지, 그 경계는 어떤 의미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만든다.

유럽의 어원은 페니키아의 공주이자 크레타의 왕비인 에우로페이다.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이다. 그만큼 유럽의 문명과 문화의 중심은 그리스였고, 그 문화를 이어받은 로마 제국을 축으로 해서 ‘유럽은 하나’라는 정서가 형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역사화 현실에서 알 수 있듯 유럽은 절대 하나가 아니고 다시 합쳐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프랑스와 독일만 해도 베르됭 조약(843년)을 계기로 3형제가 유럽의 중심부를 나눠 가지면서 영원히 갈라서게 된다. 양차 세계대전을 보면 형제가 아니라 ‘웬수’이다. 물론 프랑크 왕국과 대한 제국은 다르다. 갈리아족, 프랑크족, 고트족, 반달족 등이 뒤섞인 유럽과 달리 우리는 한민족, 단일 민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열강들의 제국주의에 희생되어 중세에는 중국의 간섭을 감내해야 했고, 일제 강점기를 거쳐 미국과 소련(중국까지)의 전초 기지 다툼에 희생되어 반 토막이 나야 했다. 물론 여기에는 양측 정치 지도자들의 권력욕이 개입되어 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진실이 감추어야 평화가 유지되는 곳이 공동경비구역.’이라는 대사 하나에 함축되어 있다. 전쟁 당시 거제도에는 76만 명의 북한군 포로가 수용되어 있었다. 휴전 후 그들에게 북측, 남측, 제3세계 등의 선택지가 주어졌는데 76명이 3번을 골랐다. 그건 무슨 뜻일까?

그들은 권력자의 정치 구호에 희생된 것이지 그들 자체가 특별한 이념을 지녔기에 총을 든 게 아니었다. 소피는 바로 그 상징성이다. 나머지 4명, 아니 수많은 남측과 북측의 군인 및 민간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보수는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폭력만 빼면, 비현실적이지만 이론적으로는 매우 이상적인 유토피아를 그린다-습관적으로 치를 떤다. 폭력적인 진보 진영 역시 극단적이기는 오십보백보이다.

이념이든 종교이든 사람이 만든 것이고, 역사적으로 그게 체제 혹은 권력 유지의 첨병이었다는 것 역시 입증되었음에도 관습적으로 프로파간다와 주술에 마취되는 게 다수의 광신도들이다. 스피노자는 “참된 행복은 돈과 권력이 아닌, 자아 회복에 있다. 내면적 성찰을 통하여 허황되고 전도된 의식 세계로부터 해방됨으로써 행복을 느낄 수 있다.”라고 했다. 그깟 이념이 뭐라고 개개인의 행복과 우정과 인간성까지 말살할 수 있을까? 이 영화의 질문인 동시에 거의 모든 현자들이 외친 인간의 자유론과 행복론이다.

▲ 유진모 칼럼니스트

[유진모 칼럼니스트]

전) 스포츠서울 연예부 기자, TV리포트 편집국장
미디어파인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미디어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